잘 익었나 통통통, 너와 나의 세계가 깊어지는 소리
언어의 세계로 막 진입한 스무 달의 아이에게,
그 커다랗고 초록빛을 띤 과일은 '수박'이 아니라 '통통'입니다.
정석 단어 대신 아이만의 언어로 명명된 존재.
아이의 작은 방 한구석에는 수박 모양 스티커, 장난감, 낱말 카드와 모형까지 아이만의 '통통 콜렉션'이 소중하게 수놓아져 있습니다. 주말 마트 과일 코너에 들어서면 아이는 거대한 수박들 앞에 딱 붙어 서서 한참 동안 눈을 떼지 못합니다. 그 진지하고 귀여운 뒷모습을 가만히 보고 있노라면, 엄마의 머릿속에는 귀여운 가설들이 꼬리를 물고 이어집니다. 아이는 왜 이토록 '통통'을 사랑하는 걸까요.
가장 먼저 떠오른 건 소리와 촉각이 주는 유희입니다.
"잘 익었나 통통통" 노래에서 시작된 호기심은 아이의 작은 손끝으로 이어집니다. 손가락으로 톡톡 두드리면 돌아오는 둔탁하지만 경쾌한 울림. 아이에게 수박은 그저 먹는 과일을 넘어, 세상에서 가장 크고 재미있는 자연의 악기이자 다정한 반주였을지도 모릅니다.
두 번째는 겉과 속이 다른 반전의 매력입니다.
딱딱하고 동그란 초록색 줄무늬 공을 쪼개는 순간 나타나는 검은 씨앗과 선명하고 붉은 속살. 세상의 수많은 물건 중 이토록 확실하고 극적인 반전을 가진 오브제가 또 있을까요. 아이는 껍질 속에 숨겨진 붉은 빛을 보며, 사물이 가진 입체감과 놀라운 시각적 반전을 본능적으로 감각하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마지막 가설은 바로 함께 나누는 경험이 준 온기입니다.
얼마 전 어린이집 알림장에 올라온 사진 한 장이 떠오릅니다. 원 마당 조그만 밭에서 친구들과 손때를 묻히며 키워낸 수박을 선생님이 쪼개어주셨을 때, 같은 반 친구들과 동그랗게 모여앉아 붉은 조각을 입에 물던 아이의 표정. 혼자서는 다 먹을 수 없는 커다란 수박을 사이좋게 나누어 먹으며, 너와 내가 함께 달콤함을 맛보는 '나눔의 미학'을 아이는 그날 처음으로 깊이 체득했던 것입니다.
"수박이야" 하고 올바른 발음을 조급하게 교정해 주는 대신,
아이가 '통통'이라 부르는 그만의 유일한 세계를 가만히 존중하며 지켜봅니다.
어른들에게는 그저 여름날 흔한 계절 과일일 뿐이지만,
아이에게는 탐구 대상이자 최고의 장난감, 그리고 나눔의 기억이 담긴 우주입니다.
겉은 단단하게 자신을 지키고 속은 붉고 달콤한 온기로 가득 찬 수박처럼,
아이의 마음도 그렇게 둥글고 꽉 차게 자라나길 바라봅니다.
오늘도 "통통!"을 외치며 수박 모형을 꼭 쥐는 아이 덕분에,
엄마인 저 역시 익숙했던 세상을 다시금 새롭고 따뜻한 시선으로 관찰하고 사랑하는 법을 배워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