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의 시계는 내 배 속에서부터 째깍이고 있었다

존재를 인정하는 3살과, 스스로 살아낸 만 1세라는 기록에 대하여

by옫아

아이의 나이를 가만히 짚어보다 보면,

이상하게 마음이 몽글몽글해지는 순간이 있습니다.


2024년 11월에 태어난 아이, 포포.

세상에 나온 날짜를 손가락으로 가만히 세어보면 ‘만 1세’가 맞는데,

함께 맞이한 계절과 연도를 떠올려보면 ‘3살’이라는 숫자가 불쑥 튀어나오곤 하지요.


처음엔 그저 ‘숫자의 혼선’인가 싶다가도,

문득 이 두 가지 나이 계산법 모두 아이와 나의 삶을 온전히 담아내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세상이 아이를 기록하는 시간: 만 1세


‘만 나이’는 철저히 아이가 세상에 나와 홀로 숨을 쉬고, 눈을 맞추고, 온전히 살아낸 시간의 기록입니다.


엄마의 품을 떠나 이 넓고 생경한 세상에 뚝 떨어진 날.

그 피어나는 순간을 ‘0’이라는 깨끗한 출발선에 두고, 지구가 태양을 한 바퀴 돌아 아이가 세상의 사계절을 온전히 한 번 다 겪어냈을 때 비로소 ‘1년’이라는 훈장을 달아주는 방식이지요.


아이가 세상의 무게를 견디며 스스로 단단해져 간 시간,

그 무수한 ‘처음’들의 누적을 인정해 주는 차갑지만 명확하고 객관적인 응원 같기도 합니다.

세상은 그렇게 아이가 혼자 걸어온 실제적인 시간을 다정하게 기록해 줍니다.





우리가 함께 견디고 누린 시간: 3살


반면 ‘세는 나이’에는 숫자로 다 담을 수 없는 온기 같은 것이 깃들어 있습니다.

아이가 2024년 11월에 태어났지만,

그보다 훨씬 전 엄마 배 속에서 작은 심장을 쿵쾅거리며 숨 쉬던 약 10개월의 시간.

그 시간을 외면하지 않고 ‘이미 한 살의 삶을 살아냈다’며 인정해 주는 마음.


생명이 시작된 그 위대한 순간부터 이미 하나의 온전한 인격체로 대해주던 옛사람들의 따뜻한 시선이 그 안에 녹아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11월에 태어나 불과 두 달 만에 새해를 맞이하며 2살이 되고,

다시 해가 바뀌어 3살이 되는 과정 속에는 ‘함께 보낸 햇수’라는 서사가 존재합니다.


"너와 내가 같은 하늘 아래, 같은 해를 함께 맞이한 게 벌써 세 번째 해구나."


배 속에서 숨죽여 서로를 느끼던 첫해,

세상에 나와 눈부신 봄과 여름을 함께 통과한 두 번째 해,

그리고 조금 더 자란 모습으로 오늘을 살아가는 세 번째 해.


세상의 시계로는 짧은 일 년 남짓이지만,

아이와 내가 나누어 가진 계절의 무게는 이미 세 해의 깊이를 품고 있는 셈입니다.




두 가지 나이가 모두 다정한 이유


그래서 가끔 아이의 나이가 헷갈릴 때면,

이제는 그냥 둘 다 가만히 안아주기로 합니다.


아이가 이 세상에 뿌리를 내리고 홀로 장하게 살아낸 시간들을 격려할 때는 ‘만 1세’의 대견함을, 엄마의 배 속에서부터 시작해 세상 밖으로 나와 지금까지 우리가 함께 흘려보낸 사계절과 그 모든 존재의 시작을 축복할 때는 ‘3살’의 다정함을 떠올리면서요.


숫자는 조금 달라도 괜찮습니다.

세상이 아이를 인정하는 정직한 시간도,

우리가 함께 스쳐 온 따뜻한 햇수도 모두 아이가 우리에게 와서 만들어낸 소중한 역사일 테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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