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추 눈을 가진 엄마와 네 컷 사진 속의 엄마

환상의 문을 열고 사진 속으로 도망치는 19개월 아이에게

by옫아

영화 코렐라인(2009년)에서 주인공 코렐라인은 현실의 무관심한 부모에게 지쳐 비밀의 문을 넘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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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곳에는 코렐라인이 원하는 모든 것을 들어주고, 늘 다정하게 웃어주는 '또 다른 엄마'가 있다. 비록 눈 대신 기괴한 검은 단추를 달고 있지만, 현실의 결핍을 완벽하게 채워주는 그 환상의 세계는 어린 코렐라인에게 거부할 수 없는 유혹이었다. 영화를 보며 나는 현실 부모의 팍팍함과 환상 속 부모의 달콤한 대비를 그저 잘 만들어진 잔혹 동화의 한 장면으로만 치부했었다.


그런데 얼마 전, 우리 집 비밀의 문 뒤에서도 작은 '코렐라인'이 살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제 겨우 19개월이 된 아이, 포포는 나에게 호되게 혼이 나고 나면 타박타박 주방 한구석으로 걸어간다. 아이가 멈춰 선 곳은 우리 세 가족이 환하게 웃으며 찍은 '인생네컷' 사진 앞이다(아일랜드 식탁 옆부분에 붙여져 있는 사진 앞으로 간다).


그리고 포포는 그 사진을 빤히 바라보며 서러운 눈물을 엉엉 쏟아낸다. 지금 눈앞에서 단호한 표정으로 훈육을 하고 있는 '실존의 엄마' 대신, 사진 속에서 세상 가장 무해하고 다정한 미소를 짓고 있는 '박제된 엄마'를 찾아가 위안을 얻는 것이다.


그 뒷모습을 보며 묘한 당황스러움과 함께 코렐라인의 한 장면이 스치듯 지나갔다.

아이에게 그 네 컷짜리 사진은 현실의 슬픔을 잠시 잊게 해주는 자신만의 다정한 환상 세계이자, 언제든 안전하게 사랑받을 수 있는 비밀의 문이었던 셈이다.


재미있는 것은 포포가 이 '사진의 마법'을 자신뿐만 아니라 타인에게도 베풀 줄 안다는 점이다.

어린이집 선생님께 전해 들은 바로는, 얼마 전 어린이집에서 한 친구가 부쩍 울적해하며 혼자 누워있었다고 한다. 그때 포포가 살금살금 다가가 그 친구의 가방이나 사물함 언저리에 있던 가족사진을 찾아내 친구의 손에 쥐여주었다는 것이다. 19개월짜리 꼬마가 슬퍼하는 친구를 위로하는 방식이 '가장 평화롭고 따뜻했던 순간의 기록'을 선물하는 것이라니.


아이들은 어른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직관적으로 이미지 속의 평화를 읽어낸다. 훈육하는 엄마의 엄한 목소리에 마음이 다쳤을 때도, 엄마가 나를 미워하는 게 아니라 '원래는 나를 이렇게 사랑하는 사람'이라는 사실을 확인하고 싶어 사진 앞으로 달려가는 것일지도 모른다. 프레임 속에 갇힌 평화로운 순간이 현실의 거친 파도를 잠재워주는 강력한 부적이 되어주는 셈이다.


코렐라인이 마주한 ‘또 다른 엄마’는 결국 아이를 집어삼키려는 허구의 괴물이었지만, 우리 집 꼬마 코렐라인이 찾아가는 사진 속 엄마는 결코 허상이 아니다.

그것은 박제된 가짜 미소가 아니라, 포포를 세상에 맞이한 이래 내가 지었던 가장 무해하고 행복했던 순간의 진짜 내 모습이다. 어쩌면 포포는 훈육하는 엄마의 엄한 얼굴 뒤에 숨겨진, 자신을 온 우주처럼 사랑해 주던 진짜 엄마의 얼굴을 그 사각형의 프레임 속에서 확인하며 스스로를 달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아이를 혼내고 돌아선 서글픈 밤, 고요해진 집안에서 그 작은 사진을 다시 바라본다.

프레임 안의 나는 참 환하게도 웃고 있다. 저토록 다정한 얼굴을 가진 내가, 왜 아이의 현실에서는 이토록 쉽게 날이 선 목소리를 내고 마는 걸까.


아이가 현실의 엄한 나에게 상처받아 자꾸만 사진 속으로 도망치지 않기를 바란다. 차가운 벽에 걸린 종이 한 장에 기대어 혼자 눈물을 닦기 전에, 사진 밖의 현실에서도 내가 먼저 더 자주, 더 다정하게 아이를 품에 안고 웃어주겠노라고 낮게 다짐해 본다.


포포가 그 어린 눈으로 알아챈 사진 속의 평화가, 찰나의 순간을 포착한 환상이 아니라 우리가 매일 살아가는 진짜 현실이 될 수 있도록. 내일 아침 눈을 뜨면, 네 컷 사진 속 그 다정한 얼굴을 고스란히 얹은 채 아이에게 먼저 사랑한다고 말해줘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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