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기획이 내 손을 떠나 완성되던 순간

홀로 빛나는 독백이 아니라, 함께 완성하는 완벽한 오케스트라의 지휘봉으로

by옫아

회사의 타운홀 미팅을 주관하게 되었다.


팀마다 돌아가며 맡는 정기적인 시스템이라지만, 이번에는 적당히 선례를 따르고 싶지 않았다.

고민 끝에 단순한 행사를 넘어 하나의 거대한 '세계관'을 짓기로 했다.

회사 이름에 한 단어를 결합해 익숙한 듯, 하지만 이번이 처음인 새로운 세계를 창조하고, 문을 열고 들어오는 구성원들이 관객이 아닌 그 세계를 함께 헤쳐 나갈 '탐험대원'이 되도록 정교하게 판을 짰다.


컨셉 빌딩부터 스토리라인, 그 안에서 대원들이 수행할 'oo속담 구조대'나 '회사 로고 그리기' 같은 미션들, 그리고 세부 시나리오와 경품 큐레이션까지. 시초는 내 머릿속에서 순수하게 나왔지만 AI의 도움을 받아 신나게 콘텐츠를 만들어 갔다.


행사가 시작되기 전까지는 그저 모니터 화면 속에 갇혀 있던 활자이자 나만의 상상에 불과했다. 하지만 막상 뚜껑을 열자, 내가 만든 세계관 위로 생명력이 돋아나기 시작했다.


탐험대원이 된 사람들은 기획자가 깔아놓은 서사 안으로 기꺼이 걸어 들어왔다.

빈칸을 채우기 위해 머리를 맞대고 기분 좋은 웅성거림을 만들어내고, 학창 시절로 돌아간 듯 열정적으로 손을 움직여 로고를 그렸다. 무대 뒤의 스태프들은 또 어땠나. 낯설 수도 있는 거대한 세계관 속에서, 내가 지시한 동선과 연출 룰을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순순히, 그리고 완벽하게 따라주며 든든한 동료가 되어주었다.


모두가 세계관에 완전히 몰입해 웃고 즐거워하는 모습을 실시간으로 목격하는 순간,

가슴 깊은 곳에서 알 수 없는 뜨거운 감각이 올라왔다.


예전의 나였다면 이 성공을 마주했을 때 '역시 내가 해냈어' 하는 온전한 내 몫의 성취감과 뿌듯함이 먼저였을 것이다. 내 아이디어가 증명되었다는 짜릿함이 가장 큰 보상이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달랐다.

이상하게도 나 자신에 대한 기쁨보다, 내 지시를 믿고 묵묵히 기민하게 움직여 준 스태프들과 그 낯선 세계관에 기꺼이 동참해 공간을 열기로 채워준 참여자들에 대한 감사함이 훨씬 더 크게 차올랐다.


'나도 이렇게 나이가 들고 늙어가는 건가' 싶어 혼자 훗짓 웃음이 나기도 했다. ㅎㅎ..


하지만 이내 깨달았다.

이것은 나이 듦이 아니라, 기획이라는 업(業)을 대하는 내 시선이 조금 더 깊고 넓어진 것이라고.


내가 만든 기획은 그저 뼈대이자 초대장이었을 뿐이다.

그 세계관에 살을 붙이고 숨을 불어넣어 진짜 살아 움직이는 모험으로 완성한 것은 결국 그 공간에 함께 숨 쉬던 '사람들'이었다. 내 머릿속에서 나온 기획이 하나의 생생한 경험이 되는 것을 눈으로 목격하는 기쁨. 그리고 무엇보다, 그 경험이 내 손을 떠나는 순간 많은 이들의 에너지를 통해 전혀 새로운 생명력으로 다시 한번 탄생하는 경이로움.


내 손을 떠난 불꽃이 타인들의 즐거움 속에서 더 크고 화려하게 번지는 것을 보며,

나는 비로소 진짜 기획의 맛을 알게 된 것 같다.

홀로 빛나는 독백이 아니라, 함께 완성하는 완벽한 오케스트라의 지휘봉을 잡았던 그날의 여운을 오래 간직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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