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발로 기어 나가던 지하 아지트, 그리고 뜻밖의 인연

by옫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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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4월은 내 인생을 통틀어 가장 찬란하게 행복했던 한 달이었다.

학부 시절 교직이수를 했던 내가 4학년 1학기의 일환으로 교생실습을 떠났던 시기.


사실 실습을 나가기 전까지만 해도 나는 가지 않겠다며 꽤 많이 눈물을 훔쳤었다. 복수전공 중이던 터라 한 달 동안 그토록 좋아하는 미디어 커뮤니케이션 학과 수업을 듣지 못하는 게 억울했고, 실습으로 인한 수업 결손과 중간고사 대체 등으로 학점 관리에 불리해지는 것도 속상했다. 무엇보다 난생처음 마주하는 아이들 앞에 서서 수업을 이끌어가야 한다는 중압감이 온몸을 긴장하게 만들었다. 다이어트라도 열심히 해서 가장 예쁜 모습으로 서고 싶었지만, 매번 새로운 사람들을 만날 때마다 내 눈의 '오드아이'에 대해 길게 설명해야 하는 피로감도 마음을 짓눌렀다.


그러나 걱정이 무색하게도, 교생실습을 시작한 지 단 며칠 만에 나는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이 되어 있었다. 아이들이 아낌없이 쏟아부어 주는 순수한 사랑에 매일같이 취해 있었고, 함께 동고동락하는 동료 선생님들과의 시간도 더할 나위 없이 즐거웠다. 50여 명의 교생 중 가장 먼저 교단에 서고 가장 많은 수업을 소화한 사람도 나였지만, 힘든 줄도 모를 만큼 매 순간이 벅차고 뿌듯했다. 실습이 끝날 무렵에는 "꼭 임용고시를 보겠다"라고 스스로 다짐하며 합격 수기까지 프린트해 읽을 정도로 열정이 가득했으니 말이다.


그렇게 꿈만 같던 실습의 마지막 날, 담당 반 아이들과 눈물 가득한 이별의 순간을 나누고 있을 때였다.

한 학생이 슬그머니 다가와 내게 나직하게 말을 건넸다.


"선생님, 저는 사실 선생님을 아주 잘 알고 있었는데... 혹시 부끄러워하실까 봐 이제야 말씀드려요."


이게 무슨 뜬금없는 소리인가 싶어 눈을 동그랗게 떴다. 알고 보니 그 아이는 내가 대학 시절 닳도록 드나들던 학교 앞 단골 술집 사장님의 조카였다. 하교 후 고모 가게 한편에서 숙제를 하고 있으면, 해가 채 떨어지기도 전부터 술을 마시겠다고 당당하게 출석 도장을 찍으러 오던 나를 아주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었던 것이다. 대체 내가 얼마나 자주 그곳에 발걸음을 들였으면 초등학생 아이의 눈에까지 선명하게 박혀 있었던 걸까. ?


그 비밀스러운(?) 폭로 덕분에, 교생실습이 끝난 후에도 나의 출석 도장은 계속되었다. 다만 달라진 점이 있다면, 문을 열고 들어가며 외치는 호칭이 "사장님~"에서 정겨운 "고모님!"으로 바뀌었다는 것뿐이었다.


그 지하 술집은 내게 단순한 가게 그 이상, 청춘의 모든 희로애락이 응축된 특별한 아지트였다.


언제 처음 그곳의 계단을 내려갔는지는 희미하지만, 대학 시절 맞이한 모든 시련을 그곳에서 받아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동아리가 존폐 위기에 놓였을 때나 삶의 크고 작은 위기 앞에서 미친 듯이 쌓아가던 초록색 소주병들. 연애 전선이 꼬여 마음이 답답할 때면 상큼한 레몬소주 한 잔에 기대어 보냈던 시간들. 속상한 일이 있을 때마다 온갖 설움을 토해내던(실제로 화장실에서 열심히 게워내던 기억마저 이제는 소중한 추억이 되었다) 기억까지 말이다.


물론 늘 슬픈 날에만 찾은 것은 아니었다.

꼭 거창한 이유가 없어도 발길이 닿던 곳이니까.


이제는 연락 한 통 나누지 않을, 혹은 스쳐 지나간 이들과 누구보다 진하게 온기를 나누었던 애틋한 공기가 여전히 그 지하 공간에 고스란히 남아있을 것만 같다. 워낙 가파른 지하에 있던 터라, 들어갈 때는 멀쩡히 두 발로 걸어 내려갔다가 퇴장할 때는 늘 네 발로 기어올라오다시피 했던 기억도 아주 선명하다.


어리숙하고 창피하지만 '그때가 아니면 또 언제 그렇게 미련하게 놀아보겠어' 싶은 흑역사가 자욱한 가게.


사장님은 원래도 나를 참 예뻐해 주셨지만, 조카 반의 교생선생님이라는 반전(?) 정체를 알게 되신 후부터는 갈 때마다 상다리가 부러질 듯 엄청난 서비스를 내어주시곤 했다.


세월이 흘러 세세한 기억들은 조금씩 흐려지고 있을지언정,

나를 살뜰하게 챙겨주셨던 사장님의 따뜻한 온기만큼은 내 마음속에 온전히 살아 숨 쉬고 있다.


대학을 졸업한 후에도 또 다른 단골인 건영이와 다시 방문해 진하게 추억을 되짚고 왔을 정도로 내 손때가 묻은 소중한 아지트.


얼마 전, 친한 언니가 오랜만에 그 술집에 방문한다는 소식을 들었다.

반가운 마음에 "가서 내 얘기 꼭 해봐! 사장님이 나 무조건 기억하실 거야"라며 신나서 떠들었는데,

다음 날 언니로부터 뜻밖의 카지노톡 메시지와 사진이 도착했다


언니가 내 사진을 보여주며 "이 친구 아세요?"라고 묻자마자,

온화하게 표정이 바뀌신 사장님은 내 이름부터 시작해

내가 타지로 내려갔다는 근황과 결혼 소식까지 싹 다 읊으셨다고 한다

심지어 언니가 내 아기 사진까지 보여드리자 너무 귀엽다며 환하게 좋아하셨다는 이야기를 전해 듣는데,

가슴 한구석이 뭉클하고 뜨거워졌다.

사장님은 긴 시간이 지났음에도 여전히 나를 잊지 않고 온전히 기억해 주고 계셨다.


사실 그 전날 밤, 언니가 술집에서 페이스톡을 걸어왔었다.

마침 아기에게 모유 수유를 하던 중이라 불가피하게 전화를 받지 못했는데,

만약 그때 전화를 받아 사장님께 직접 우리 아기의 모습을 영상으로 보여드렸다면 얼마나 깜짝 놀라며 기뻐하셨을까 하는 아쉬움과 설렘이 교차한다.


그 시절의 치기 어린 추억이 가득한 술집 이름을 이곳에 낱낱이 적어내려가고 싶지만,

나만의 소중한 비밀 기지로 간직하는 재미를 위해 마음속 서랍에 예쁘게 넣어두려 한다.


그 대신 가끔 삶이 팍팍하거나 청춘의 냄새가 그리워질 때면,

마법 주문 같은 에피소드가 담긴 이 기록을 꺼내 보며 혼자 보드라운 미소를 지어 보여야겠다.



이제는 멀찍이 걸어 나와 버려 아무리 손을 뻗어도 다시 가닿을 수 없는 시절.

다시는 소환하지 못할 그 찬란했던 나의 20대와, 여전히 나를 온전히 기억해 주는 따뜻한 고모님이 계시는 그 애틋한 공간을 깊이 그리워하며.

그리고 그 좁은 지하 아지트에서 쏟아지는 밤을 핑계 삼아

뜨거운 청춘을 함께 나누었던 그리운 이들에게도, 가만히 멀리서 다정한 안부를 전해본다.


시간의 물결에 밀려 저마다 다른 삶의 무늬를 그려가고 있을 우리,

비록 계절은 흘렀어도 그날의 우리는 여전히 그곳에서 눈부시게 반짝이고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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