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어이, 아름답게
사전적 정의를 떠나서,
지금 삶의 무게를 온몸으로 받아내고 있는 나에게 이 세 단어는 전혀 다른 무게로 다가와.
'산다'는 건 그냥 숨을 쉬는 자연스러운 상태고,
'살아간다'는 건 흐르는 시간의 결을 따라 자연스럽게 앞으로 나아가는 완만한 걸음이지.
반면에 '살아낸다'는 건 전혀 달라.
내 앞에 거칠게 들이닥친 삶의 파도를 정면으로 버텨내면서,
기어이 '하루'라는 영토를 사수해 내는 치열한 전투에 가까우니까.
요즘의 나는 온전히 '살아낸다'는 단어 속에서 살아가고 있는 것 같아..
어린이집이라는 작은 슬롯에서 묻어온 험한 바이러스는 여린 아기의 몸을 파고들었고, 결국 입원이라는 청천벽력을 데려왔어. 겨우 퇴원을 했지만 끝이 아니었지. 마침표 없이 쉼표로 이어질 통원치료와 24시간 긴장을 놓을 수 없는 육아의 연장선.
그 폭풍 속에서 내 몸이라고 무사할 리 없었어. 고통스러웠던 다래끼가 지나가자마자, 이번에는 온몸을 짓누르는 감기몸살이 찾아왔으니까. 고관절 마디가 아려오고 당장이라도 이불 속에 파묻히고 싶은 아침이지만, 나는 또 무거운 몸을 이끌고 출근길에 올라.
'엄마의 연차'는 온전히 내 것이 아니기 때문이야. 이미 지난주 아기 입원 이슈로 이틀이나 밀어 썼기에, 내가 아프다는 이유로 쉴 수 있는 여유 따윈 사치에 가까워. 정작 내가 골골거릴 때 쓸 수 있는 카드는 남아있지 않다는 서글픈 현실을 삼키며, 오늘도 주어진 역할을 해내기 위해 머리를 쥐어짜서 기획서를 만들지
이렇게 글자로만 적어 내려가면 숨이 턱 막히는 회색빛 일상이지만,
신기하게도 '살아낸다'는 말에는 단단한 힘이 깃들어 있어.
비록 감기약 기운에 취해 비틀거리고, 회사와 병원을 오가는 걸음은 한없이 무겁지만,
나는 이 팍팍한 일상의 작은 틈새를 절대 놓치지 않으려고 해.
출근길에 마시는 시원한 아이스라떼, 퇴근길 문을 열었을 때 나를 향해 배시시 웃어주는 아이의 맑은 눈망울, "오늘 하루도 고생했다"며 건네는 남편의 사랑 어린 위로 같은.
그 아주 작고 미세한 틈 사이로 기어이 밝음과 긍정을 불어넣는 거야.
억지로 쥐어짜 내는 낙천성이 아니야.
이것은 삶에 지지 않겠다는, 내 소중한 일상과 가족을 내 힘으로 지켜내겠다는 가장 적극적인 의지니까.
"골골거리며 주어진 역할을 해내지만,
작은 틈 사이로 밝음과 긍정을 잃지 않으려 기어이 살아내려는 나."
오늘도 나는 화장실에서 손 닦으며 거울 속의 나에게 가만히 말을 건네. 비록 지금은 폭풍우 속을 지나는 중이라 '살아간다'는 여유를 누리지 못할지라도, 이 모진 계절을 '살아내고' 있는 스스로가 참 대견하다고.
진정한 단단함은 아무런 문제가 없을 때 빛나는 게 아니라,
온통 무너지기 쉬운 조건 속에서도 기어이 중심을 잡고 미소를 지어 보일 때 증명되는 걸지도 몰라.
지금의 매서운 겨울 같은 시간 역시 결국은 흐를 것이고,
이 악물고 살아낸 오늘 하루는 훗날 내 삶을 지탱하는 가장 견고한 뿌리가 되어줄 거야.
그러니 오늘도 한 걸음만 더. 나는 기어이, 아주 아름답게 이 하루를 살아낼 거야!
마침내 그럴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