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바꼭질의 완성은 발각되는 기쁨에 있다

도망이라는 이름의 초대장, 기어이 나를 붙잡고야 말 너라는 확신

by옫아

21살 무렵의 나는 모든 것에서 로그아웃하고 싶었다.


세상이 버거워질 때마다 짐을 싸서 도망가는 상상을 했다.

과제와 관계, 알 수 없는 미래에 지쳐 본가로 내려가고 싶다거나 휴대폰 번호를 바꾸고 아무도 모르는 곳으로 숨어버리고 싶다는 말들을 입에 달고 살았다.

비명에 가까운 말이었으나, 또 어쩌면 가장 간절한 예고장이었던 것 같다.


제발 나를 찾아내 줘.

내가 어디에 숨든, 어떤 어둠 속에 처박혀 있든 너만은 나를 포기하지 말아줘, 같은.


그리하여 도망치겠다는 말은 역설적이게도 '붙잡아달라'는 가장 강렬한 구애일지도.

나는 너에게 수차례 도망의 경로를 노출했다.

번호를 바꾸겠다느니, 연고도 없는 곳으로 숨어버리겠다느니 하는 유치한 협박들을 즐비하게 늘어놓았다.

그것은 다정한 술래인 너에게 보내는 헨젤과 그레텔의 빵조각 같은 것이었다.


"그러기만 해. 내가 끝까지 가서 너 잡아 올 거니까."


그 오만한 다정함 앞에서 나는 속절없이 무장해제되었다.


너에게 내뱉은 "나 숨어버릴 거야"라는 말은

사실 "나를 들여다봐 줘"라는 문장의 다른 이름이었음을, 너는 내 서툰 연극을 단번에 간파해 버린 것이다.


나의 가장 밝은 모습 뒤에 숨겨진 외롭고 나약한 그림자.

누구에게도 들키고 싶지 않았던 그 밑바닥까지

기꺼이 찾아와 "이제 그만 나가자"라고 말해줄 단 한 사람을 기다리고 있었던 걸까.


어쩌면 나는 숨고 싶었던 게 아니라, 너에게 발견되고 싶었던 것뿐이었나보다.


숨바꼭질은 술래가 나를 찾아냈을 때 비로소 완성된다는 것을,

나는 네가 건넨 그 든든한 확신을 통해 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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