멈추지 않는 호흡, 읽기의 들숨과 쓰기의 날숨
누군가에게 나를 소개할 때 흔히 내뱉는 '읽고 쓰는 사람'이라는 말은 가볍지만 결코 가벼운 수식어가 아니다. 그것은 내 삶을 가로지르고, 때로는 관통하며, 끝내 나라는 인간을 지탱하는 가장 본질적인 뼈대에 가깝기 때문이다.
나는 읽기 위해 쓰고, 쓰기 위해 읽는다. 이 순환은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를 따지는 고전적인 난제와 닮아 있다. 읽지 않으면 쓸 재료가 없고, 쓰지 않으면 읽은 것들은 내 안에서 정처 없이 떠돌다 흩어지기 때문이다. 이 굴레는 나를 가두는 감옥이 아니라, 나를 계속해서 나아가게 하는 영원한 동력원이다.
나의 일과는 '쓰는 행위'로 가득 차 있다. 업무로서의 글쓰기는 명확한 목적과 대상을 향한다. 하지만 나는 업무의 시간이 끝난 뒤에도 여전히 '그냥 쓰는 사람'이고 싶다.
생존을 위한 쓰기가 '기능'이라면, 나를 위한 쓰기는 '호흡'이다. 누군가 시켜서 하는 쓰기가 아닌, 내 안의 읽히지 않은 감각들을 문장으로 길어 올리는 행위. 나는 내 삶이 단순히 일터의 결과물로 남기를 원치 않는다. 그보다는 읽고 쓰는 행위 그 자체가 목적인 삶, 그 순수한 순환 속에 머물고 싶다.
내 자신에게 묻는다. 무엇을 읽고, 무엇을 쓰느냐고. 바카라인가, 아니면 정보인가. 글인가, 아니면 기록인가.
이에 나는 그 질문의 '목적어'를 기꺼이 비워두기로 했다. 내가 읽고 쓰는 대상은 때로는 바카라이겠지만, 때로는 타인의 마음일 것이고, 때로는 내가 마주한 세상의 이면일 것이며, 그리고 끝내 마주해야 할 나 자신일 것이기 때문이다.
목적어를 한정 짓는 순간, 나의 세계는 그 틀 안에 갇히고 만다. 바카라만 읽는 사람은 바카라 너머의 세상을 놓치고, 글만 쓰는 사람은 마음의 무늬를 읽어내지 못한다. 그래서 나는,, 그저 '읽고 쓰는 사람'이 되기로 선언한다. 무엇이든 읽어낼 준비를 갖추고, 읽어낸 것은 반드시 내 방식대로 써 내려가겠다는 다짐이다.
모두 잘 알겠지만, 사실상 닭과 달걀의 순서를 따지는 것은 무의미하다. 중요한 것은 내가 이 쉼 없는 순환의 궤도 위에 올라타 있다는 사실이다.
읽는 행위를 통해 세상을 내 안으로 받아들이고(Input), 쓰는 행위를 통해 나라는 필터를 거친 세상을 다시 내어놓는(Output) 이 과정. 이 거대한 호흡이 멈추지 않는 한, 나는 사라지지 않는다.
오늘도 나는 목적어가 비어 있는 문장 하나를 품고 바카라상을 마주한다. 무엇을 읽게 될지, 그래서 무엇을 쓰게 될지 알 수 없는 그 막연하지만 단단한 자유가 바로 내가 추구하는 '읽고 쓰는 삶'의 진짜 얼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