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식거리

by박종희


꽃씨를 뿌렸다. 지인이 선물로 주었는데 서랍 속에 넣어두고 잊었던 봉선화 꽃씨다. 거름과 흙을 고루 섞어 씨앗을 심고 치자 화분 옆에 나란히 놓아두었다. 며칠이 지나고 치자 꽃이 쏟아내는 수다로 꽃향기가 가득하던 날, 시샘이 났던지 봉선화 화분에서도 싹이 올라오기 시작했다. 갓난아기의 발가락처럼 꼬물거리며 잎을 틔우더니 며칠 사이에 큰 화분이 수북해졌다.

생전 처음 씨앗을 뿌리고 싹이 올라오는 걸 보니 가슴 뿌듯했다. 남편은 화분 가득하게 올라온 어린 싹을 솎아주어야 튼튼하게 자란다고 했지만, 아까운 마음에 몇 포기만 뽑아냈다. 볕이 좋아서인지 하루가 다르게 쑥쑥 자라더니, 어느 날 인가부터 화분에서 다툼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다닥다닥 붙어 자라던 싹이 구부러지고 넘어졌다. 남편의 말을 흘려듣고 솎아주지 않아 영양가 없이 키만 웃자란 줄기가 얽히고설킨 것이다.

농작물을 심을 때 식물 간의 거리, 포기 사이의 거리를 유지해주는 것을 재식거리라고 한다. 아무리 품종이 좋은 씨앗이라도 식물 사이의 거리가 지켜지지 않으면 작물이 부실해진다고 한다. 그 때문에 농사짓는 사람들은 심는 거리를 꼭 지켜야 한다고 한다. 이제 생각하니, 어릴 때 집 앞 텃밭에 남새가 자라면 어머니가 일삼아 솎아 주던 것이 다 이유가 있었던 것이다.

솎아주어 듬성듬성하게 남은 봉선화 줄기가 통통하게 살이 올랐다. 그 모습을 보니 친하게 지내던 친구 때문에 마음고생 했던 일이 생각났다. 10여 년이 지나 이젠 다 잊었다고 생각했던 그녀의 얼굴이 봉선화 줄기 사이로 언뜻언뜻 스쳐 지나갔다.


15년 전 청주로 이사와 우연히 고향 친구를 만났다. 중·고등학교를 같이 다녔지만, 친하게 지낸 것은 아닌데 타지에서 동창을 만나니 반가웠다. 남편의 고향이긴 해도 모든 것이 낯설고 서먹서먹하기만 한 나한테, 고교를 졸업하고 청주에서 터를 잡았다는 그녀는 유난히 친절하게 다가왔다. 기억에도 없는 학창시절 이야기를 들추며 그녀는 나를 아주 친한 친구처럼 챙겨주었다.

낯선 도시에서 나를 아는 사람이 한 명 있다는 것만도 위로가 되어 우린 자주 만났다. 어렵게 생활하면서 7년 동안이나 시아버님 병간호까지 했다는 그녀는 너울가지가 있어 주변에 사람이 많았다. 늘 우울해하다가 친구를 만나 활기를 찾아가니 남편도 그 친구를 고맙게 여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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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의 품격과 향기는 글쓴이의 심성에서 나온다고 생각한다. 겸손한 언어로 누구나 공감하는 수필, 구들장 같이 온기 있는 언어로 따뜻한 수필을 쓰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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