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미줄 때문에 지팡이를 들었습니다

- 매일 아침 함박산을 넘으며 발견한 오동나무 지팡이의 매력

by웅토닌

요즘 저는 지팡이의 매력에 푹 빠졌습니다.

매일 아침 함박산 줄기의 성황당고개를 넘어 출근합니다. 남들은 자동차나 대중교통을 이용하지만, 저에게 출근길은 매일 한 시간 넘게 이어지는 산행입니다.

이 길에서는 때때로 고라니와 담비를 만나고, 운이 좋은 것인지 나쁜 것인지 멧돼지와 마주치기도 합니다. 줄딸기와 가시덩굴은 바짓가랑이와 발목을 붙잡으며 그냥 보내 주지 않습니다. 그러나 무엇보다 곤혹스러운 것은 산길을 가로질러 쳐 놓은 거미줄입니다.

아침 산길의 거미줄은 이상하리만큼 정확하게 제 얼굴 높이에 걸려 있습니다. 제가 길을 걷는 것인지, 얼굴로 거미줄을 걷어 내는 것인지 모를 때가 많습니다. 모자와 얼굴에 거미줄을 뒤집어쓰고 나면 저도 모르게 팔을 휘저으며 혼자 춤을 추게 됩니다. 그 모습을 누군가 보았다면 숲 속에서 기이한 의식을 치르는 사람으로 생각했을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지팡이를 들고 다니기 시작했습니다.
처음에는 일반적인 등산지팡이를 사용했습니다. 그러다가 산림치유 프로그램에 활용하려고 잘라 두었던 오동나무를 다듬어 보았습니다. 껍질을 벗겨 충분히 말린 오동나무를 손에 쥐는 순간, 느낌이 아주 좋았습니다. 손에 착 감기는 그립감도 좋았지만 무엇보다 놀라운 것은 무게였습니다.


“이렇게 가벼워도 되는 건가?”
오동나무줄기의 속을 들여다보니 중심부가 비어 있었습니다. 마치 자연이 처음부터 가볍게 들고 다니라고 만들어 놓은 것 같았습니다.


출퇴근 임도길에 큰 오동나무

오동나무 지팡이

- 웅토닌


아직 아무도 지나지 않은 새벽,

거미가 엮어 놓은 은빛 문장을

얼굴로 스치며

나는 함박산을 넘는다.


고라니는 숨고

담비는 먼저 길을 건넌다.

줄딸기와 가시덩굴은 발목을 붙잡고

거미줄은 얼굴 높이에서 기다린다.


산길인지

얼굴로 길을 여는지 모를 때마다

나는 두 팔을 휘저으며

이름 모를 춤을 추었다.


그날부터 지팡이를 들었다.

껍질을 벗겨 말린

오동나무 한 토막,

새의 뼈처럼 가볍고

손처럼 익숙했다.


속이 비어 가벼운 나무,

비운 자리로 걸음을 받아 주는

오동나무는

내 손과 산길 사이에 섰다.


나는 끝에 나사를 박아

발을 만들고

웅토닌 ‘W’를 새겼다.

내 거라는 거다


강하고 무거워야만

힘이 되는 것은 아니다.

비워진 존재가

더 오래 곁을 지키기도 한다.


내일도 나는

오동나무 지팡이를 들고

성황당고개를 넘을 것이다.


거미의 은빛 집을

내 얼굴보다 먼저

지팡이가 만나게 하면서.

치유의 숲 진입로에 오동나무가 자라기 시작했습니다.

오동나무는 하루가 다르게 빠르게 자랍니다. 옛날에 딸을 낳으면 집 앞에 오동나무를 심었다가 딸이 시집갈 때 그 나무로 장롱을 만들어 주었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직접 오동나무를 만져 보니 그 말이 이해되었습니다. 빨리 자라고, 가벼우며, 가공하기도 쉬우니 가구를 만드는 재료로 귀하게 사용되었을 것입니다.
지팡이에 관심이 생기자 다른 재료로 만든 지팡이도 궁금해졌습니다.

가장 이름난 것은 명아주 지팡이인 청려장입니다. 명아주는 나무가 아니라 한해살이풀입니다. 그러나 좋은 환경에서는 줄기가 곧고 굵게 자라며, 잘 말리면 가볍고 비교적 단단해집니다.


명아주 줄기로 만든 지팡이를 ‘청려장(靑藜杖)’이라고 합니다. ‘청(靑)’은 푸르다는 뜻이고, ‘려(藜)’는 명아주를 가리키며, ‘장(杖)’은 지팡이라는 뜻입니다. 곧 ‘푸른 명아주로 만든 지팡이’라는 의미입니다.
봄에 작은 싹으로 돋아난 명아주는 한 해 동안 힘껏 자란 뒤 자신의 줄기를 사람의 걸음을 돕는 지팡이로 내어 줍니다. 나무도 아닌 풀 한 포기가 사람의 몸을 의지하게 해 주는 지팡이가 된다는 사실이 참 신기합니다.

청려장은 줄기에 형성된 마디와 굴곡 때문에 소박하면서도 고풍스러운 멋을 지니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는 통일신라 때부터 조선시대까지 임금이 연로한 신하나 어르신에게 청려장을 하사한 전통이 이어져 온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오늘날에도 정부에서는 노인의 날을 맞아 그해 100세가 되신 어르신들에게 대통령 명의의 청려장을 증정합니다.

청려장은 단순한 보행 도구가 아닙니다. 오랜 세월을 살아오신 어르신의 연륜과 지혜를 존중하고, 앞으로도 건강하게 오래 사시기를 기원하는 효와 장수의 상징입니다.

감태나무로 만든 지팡이도 있습니다. 감태나무 지팡이는 건강과 장수를 기원하는 의미를 담아 ‘연수목(延壽木)’이라고도 부릅니다.

감태나무줄기는 비교적 단단하면서도 어느 정도 탄성이 있습니다. 오랫동안 자란 줄기는 자연스럽게 비틀리고, 가지가 떨어져 나간 자리에는 옹이와 굴곡이 생깁니다. 그래서 특별히 조각하지 않아도 세월을 견딘 고목과 같은 멋이 풍깁니다.

청려장이 어르신의 건강과 장수를 기원하는 부드럽고 정감 어린 지팡이라면, 감태나무 연수목 지팡이는 오랜 세월을 견뎌 낸 단단한 기개를 보여 주는 지팡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감태나무는 가을에 마른 잎을 쉽게 떨어뜨리지 않습니다. 지난 계절의 잎을 가지에 매단 채 겨울을 견디다가 이듬해 봄, 새잎이 돋아날 때가 되어서야 묵은 잎을 내려놓습니다. 새것이 올 때까지 묵은 것을 지켜 주는 나무입니다. 그런 생태적 모습 또한 장수와 인내의 상징인 연수목이라는 이름과 잘 어울립니다.

등나무 줄기로 만든 지팡이도 빼놓을 수 없습니다. 등나무는 다른 나무를 감고 오르며 자라기 때문에 줄기가 나선형으로 휘고 비틀립니다. 오래되고 굵은 줄기는 속이 비기도 하며, 완전히 건조하면 비교적 가벼우면서도 질깁니다.

등나무 지팡이의 가장 큰 매력은 자연스러운 곡선입니다. 사람이 일부러 조각하지 않아도 줄기의 꼬임과 마디가 저마다 다른 표정을 만들어 냅니다. 마치 자연이 오랜 세월에 걸쳐 직접 조각한 작품 같습니다.

궁금해진 저는 인공지능에게 오동나무·명아주·감태나무·등나무를 지팡이 재료로 비교해 달라고 하였습니다.

• 무거운 순서
감태나무 > 등나무 > 명아주 > 오동나무

• 표면이 단단한 순서
감태나무 > 등나무 > 명아주 > 오동나무

• 휘어져도 쉽게 부러지지 않는 순서
등나무 > 감태나무 > 명아주 > 오동나무

• 체중을 안정적으로 지탱하는 순서
감태나무 > 등나무 > 명아주 > 오동나무

인공지능은 다음과 같이 종합하였습니다.
• 가장 가벼운 지팡이는 오동나무,
• 전통성과 상징성이 가장 큰 지팡이는 명아주 청려장,
• 체중 지지와 실제 산행에 가장 적합한 지팡이는 감태나무,
• 질김과 자연스러운 곡선이 돋보이는 지팡이는 등나무라고 하였습니다.

각각의 나무와 풀이 지닌 장점이 분명합니다. 그러나 매일 한 시간 이상 산길을 걷는 저에게는 역시 가벼운 지팡이가 최고입니다.

저는 지팡이에 몸무게를 온전히 싣기보다는 앞을 가로막는 가시덤불을 걷어 내고, 얼굴 높이에 걸린 거미줄을 미리 쳐내는 용도로 사용합니다. 혹시 모를 멧돼지와의 만남에서도 맨손보다는 지팡이 하나를 들고 있는 편이 조금은 든든합니다. 물론 멧돼지가 나타났다고 하면 나무 위로 올라갈 것입니다.

다만 오동나무는 가볍고 무른 만큼 끝부분이 쉽게 닳거나 깨질 수 있습니다. 저는 속이 빈 오동나무 끝에 굵은 암나사를 단단히 넣어 고정하고, 그 안에 수나사를 돌려 끼우는 방식으로 보강합니다. 제작이라고 하기에는 간단한 작업이지만 효과는 아주 좋습니다.

금속으로 보강한 끝부분은 땅에 반복해서 짚어도 쉽게 닳지 않습니다. 오동나무의 약점이었던 무른 끝부분은 단단해지고, 장점인 가벼움은 그대로 남습니다. 오래 들고 걸어도 팔이 피곤하지 않고, 가시덩굴과 거미줄을 걷어 내기에도 좋습니다.

지팡이에는 제 이름과 필명 ‘웅토닌(W. Tonin)’을 상징하는 W 문양을 새겼습니다.

손잡이에는 휴대하기 편하도록 끈을 달았습니다.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저만의 오동나무 지팡이가 완성된 것입니다.


유명하고 값비싼 지팡이가 반드시 자신에게 가장 좋은 지팡이는 아닙니다. 지팡이를 어디에서, 어떻게 사용할 것인지에 따라 최고의 재료는 달라집니다. 체중을 든든하게 받쳐 주어야 한다면 감태나무가 좋고, 장수와 공경의 뜻을 전하고 싶다면 명아주 청려장이 좋습니다. 단담하고 질기면서 자연의 굴곡과 멋을 즐기고 싶다면 등나무가 좋습니다.

그러나 매일 아침 거미줄을 헤치고 가시덤불을 걷어 내며 함박산을 넘어야 하는 저에게는, 직접 다듬고 보강한 가벼운 오동나무 지팡이가 최고의 동행입니다.

지팡이는 나이 든 사람만 사용하는 물건이 아닙니다. 때로는 걸음을 받쳐 주고, 때로는 앞길을 열어 주며, 때로는 숲 속에서 혼자가 아니라는 든든함을 건네는 동행입니다.

내일 아침에도 저는 오동나무 지팡이를 들고 성황당고개를 넘을 것입니다. 밤새 거미가 정성스럽게 쳐 놓은 새 거미줄을, 미안하지만 제 얼굴보다 지팡이가 먼저 만나게 하면서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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