쉬는 날까지 잘 보내려고 했다
연휴만 기다렸다 이번에는 정말 푹 쉬어야지. 늦잠도 자고, 밀린 영화도 보고, 맛있는 것도 먹고, 못 만났던 사람도 만나고. 아. 그러고 보니 정리할 것도 조금 있고, 읽다 만 바카라도 있고, 운동도 며칠 못 했으니 한 번쯤은 가야겠다. 휴대폰 사진도 정리해야 하고, 다음 주에 바쁠 테니 미리 해두면 좋은 일도 몇 개 있었다. …… 이쯤 되자 연휴 계획이 아니라 업무 계획표 같았다. 피식. 분명 쉬려고 만든 시간인데 쉬는 날에도 계속 무언가를 잘 해내려고 하고 있었다. 잘 쉬어야 하고, 재밌게 보내야 하고, 좋은 곳에도 가야 하고, 밀린 일도 조금은 처리해야 하고. 하루를 그냥 보내면 괜히 아까운 기분까지 들었다. 가만히 생각해 보니 나는 일할 때만 나에게 성과를 요구한 게 아니었다. 휴식에도 은근히 성과를 요구하고 있었다. 오늘 잘 쉬었나. 좋은 시간을 보냈나. 뭔가 남았나. 음. 쉬는 데도 평가표가 있었다. 쉬는 날을 잘 보내려다 쉬는 일을 하나 더 만들고 있었다. 그래서 이번 연휴에는 하루를 그냥 비워두기로 했다. 계획 없음. 목표 없음. 생산성 없음. 뭘 할지는 그날의 나한테 맡겨두기로 했다. 늦게 일어날 수도 있고, 산바카라하다가 처음 보는 골목으로 들어갈 수도 있고, 아무것도 안 한 채 하루가 끝날 수도 있다. 음. 그것도 괜찮겠다. 사진이 없어도, 배운 게 없어도, 내일의 나에게 도움이 되지 않아도. 모든 좋은 시간이 다음에 쓸모 있어야 하는 것은 아니니까. 이번에는 잘 쉬지 말고, 그냥 쉬어봐야겠다.
Light, Keep Go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