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주 다음
얼마 전 더블 경기를 앞두고 우리는 꽤 진지하게 전략을 세웠다. 누가 어느 구간을 맡을지, 어디에서 힘을 아끼고, 어디에서 조금 더 밀어볼지. 한참 이야기하다가 문득 내가 조금 낯설었다. 음. 원래 완주만 하면 된다고 하지 않았나. 예전에는 야외에서 운동하고 나면 다음 날 꼭 앓았다. 조금 오래 뛰면 감기에 걸렸고, 비라도 맞으면 며칠은 골골댔다. 그래서 체력이 좋은 사람은 원래 따로 있는 줄 알았다. 얼마 전에는 비를 조금 맞으며 훈련했다. 젖은 운동화를 내려다보다가 문득 현타가 왔다. …… 지금 비 맞으면서 뭐 하는 거지. 피식. 그런데 웃긴 건 집에 갈 생각보다. 다음 훈련 생각이 먼저 났다는 것이다. 여기서는 조금 더 밀어볼까. 다음에는 페이스를 올려볼까. 그리고 다음 날, 멀쩡했다. 어? 그 사이 몸이 조금 달라져 있었다. 그런데 몸보다 먼저 달라진 게 하나 더 있었다. 질문이었다. 예전에는 끝까지 갈 수 있을지가 궁금했다. 요즘은 하이록스를 보면 어느새 기록부터 본다. 몇 분이지. 저 구간에서는 얼마나 줄일 수 있을까. 어디에서 아끼고, 어디에서 조금 더 써도 될까. 어. 승부욕이 기어 나오려 한다. 안 되는데 이미 늦은 것 같다. 피식. 처음에는 포기하지 않는 것이 목표였다. 한 번 끝까지 가보고 나니 어떻게 하면 조금 더 잘 갈 수 있을지가 궁금해졌다. 그리고 요즘은 내 기록 하나 줄였을 때만큼 같이 뛰던 사람이 자기 기록 하나 줄였을 때 괜히 더 신난다. 잘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뛰고, 한 번씩 서로 끌어주고, 끝나면 “다음에는 조금 더 해보죠.” 하고 웃는 것도 좋다. 혼자 빨라지는 일과 함께 나아지는 일에는 서로 다른 재미가 있었다. 완주 전에는 내가 어디까지 갈 수 있을지가 궁금했다. 완주하고 나니 다음에는 어디까지 달라질지가 궁금해졌다. 완주는 마침표가 아니었다. 질문이 바뀌는 지점이었다. 갈 수 있을까. 어떻게 더 잘 갈까. 그리고 다음에는 뭘 해볼까. 아직 대단한 기록은 없다. 그래도 이제는 안다. 끝까지 가본 사람에게는 그다음에야 물어볼 수 있는 질문이 생긴다는 것을. 음. 다음 훈련도 가야지. 이번에는 비만 안 왔으면 좋겠다. 기준은 달라졌어도 비 맞는 건 여전히 싫으니까. 피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