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까지 AI 뒤에 숨을 수 있을까?

AI가 써준 슬라이드로 발표하다 ‘왜?’라는 질문에 막힌 날

by예나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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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번 항목에 대해서 말입니다만, 왜 그렇게 생각하시죠?"


발표를 마친 내게 옆 팀의 VP가 질문을 던졌다. 조금 당황했다. 전날 밤 발표자료를 손을 보면서 앞으로 생각해 볼 만한 방향 몇 가지를 마지막 슬라이드에 넣었다. 나름대로 그럴듯했다. 사내 사람들에게도 생각 거리를 줄 수 있을 것 같았다. 솔직히 좋은 반응도 조금 기대했다. 그런데 '왜?'라는 질문은 미처 예상하지 못했다. 나는 급한 대로 일반론을 끌어와 대답했다.


"그런데 그건 이미 우리가 갖고 있는 솔루션 아닌가요? 왜 필요하다고 하는지 이해가 가지 않는군요."


"아, 그렇군요. 이번 발표의 주된 목적은 학회에서 본 기술 동향과 요구사항을 공유하는 것이었고요. 마지막 부분은... 큰 그림에서 앞으로 생각해 볼 만한 방향을 제안해 본 것이었습니다."


더 이상 말을 이어가지 못했다.


이때 다른 청중 한 명이 자신의 의견을 개진했고, VP는 그와 토론을 이어갔다. 다행이었다. 내가 지금 느끼고 있는 당황스러움이 자연스레 묻힐 수 있었기 때문이다. 발표가 끝난 뒤에도 그 질문이 머리에 남았다. 슬라이드엔 분명 내가 발표한 의견, 아니 주장이 적혀있었다. 조금 전까지 내가 자신 있게 설명하기도 했다. 그런데 왜 나는 내가 만든 슬라이드의 주장을 제대로 설명하지 못했을까.


발표가 끝난 뒤 나는 팀즈 코파일럿에게 물었다.


"내 발표 어땠어? 망한 것 같아. ㅠㅠ"


내가 듣고 싶은 말을 눈치챈 건지, 회의 전사본을 읽은 AI의 평가는 의외로 나쁘지 않았다. 단순히 사실을 전달하는 데 그치지 않고 후속 논의가 이어질 만한 화두를 던졌다는 점은 오히려 좋았다고 두둔까지 해주었다. 실제로 발표 후반부는 몇몇 사람들의 토론으로 채워졌다. 듣고 보니 틀린 말은 아니었다.


그래도 나는 알고 있었다. 내가 불편했던 이유는 발표가 성공했느냐 실패했느냐가 아니었다.




지난 글에서 언급했듯, 나는 시그그래프 학회 출장을 다녀온 뒤 잘 정리된 발표자료 초안도 만들어 두었다. 발표 예정일보다 2주나 앞섰다. 발표 전날, 이번 출장에 동행했던 팀원과 팀장으로부터 메일이 왔다. 다른 미팅 일정과 겹쳐서 부득이하게 참석하기 힘들다는 소식이었다. 그중 한 명은 나와 같이 발표하기로 예정되어 있었다. 약간의 부담감이 몰려왔다. 질문을 함께 받아줄 사람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이번 발표의 청중은 단순히 팀 내로 국한되지 않았다. 좀 더 큰 상위 조직의 인사들까지 포함되었다. 부담은 곧 욕심으로 이어졌다. 이직 후 광범위적 조직 앞에서 하는 첫 발표, 좋은 인상을 주고 싶었다. 한국에서 일할 때부터 나는 출장보고에 꽤 공을 들였다. 보고 들은 것을 정리하는 데 그치지 않고, 거기서 우리에게 필요한 의미를 하나라도 더 끌어내려고 했다. 이번에도 그러고 싶었다.


그래서 '이번 학회에서는 단순히 이런 기술이 나왔습니다'로 끝내지 않았다. 한 단계 더 나가서, '그렇다면 이런 변화 속에서 앞으로 우리는 어디를 향해야 할까?'까지 말하고 싶었다. 나는 AI와 함께 초안을 작성하며 추려 두었던 핵심 트렌드를 돌아보고 나름대로 몇 가지 안을 만들었다. 그런데 뭔가가 빈약해 보였다.


'뭔가 더 임팩트 있는 것은 없을까?'


나는 녀석을 다시 불렀다. 이번에는 자료를 정리해 달라고 한 것이 아니었다. 녀석의 생각을 물었다. 주르륵 텍스트가 쏟아져 나왔다. 몇몇은 고개가 갸웃했지만, 대부분 꽤 그럴싸했다. '그래, 내가 하고 싶었던 말이 대충 이런 것이었던 같아.' 머릿속에 어렴풋하게 떠다니던 생각이 명쾌하고 깔끔한 영어 문장으로 구체화되자, 나는 큰 고민 없이 몇 개를 가져다 썼다. 그만큼 그 문장이 너무 그럴듯했다. 나는 표현만 빌렸다고 생각했다. 생각까지 빌렸다는 사실은 알아차리지 못했다.




코파일럿이 평가한 것처럼, 발표 자체는 별문제가 없었다. 슬라이드도 잘 만들어졌고, 영어도 매끈했다. 문제는 AI에게 빌려온 워딩을 짚으며 날아오는 질문이었다.


"왜 이것이 중요한 방향이라고 생각하죠?"

"현재 방향과 정확히 뭐가 다른 거죠?"

"그건 이미 내부에 있는 솔루션 아닌가요?"


질문은 AI가 내준 답이 틀렸다고 지적하는 것이 아니었다. 정작 불편한 진실은 다른 곳에 있었다. 내가 그 결론에 도달하기까지의 여정을 충분히 걸어보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그것이 질문을 통해 적나라하게 드러나자 나는 당혹스러웠다. 내 이름으로 내놓은 주장인데, 정작 그 주장에 내가 끝까지 답할 수 없다는 사실이 부끄러웠다.


문제는 생각만이 아니었다. 영어도 한몫했다. 내 생각을 직접 영어로 썼다면, 머릿속의 흐릿함이 문장에도 어느 정도 남았을 것이다. 훨씬 투박한 문장으로. 그런데 그만큼 표현 범위가 좁으니 오히려 나의 사고의 폭 안에서만 기술되었을 것이다. AI가 그걸 아주 명료하고 단정적인 영어로 바꿨다. 확신에 찬 AI의 텍스트에 나도 모르게 설득당해버린 것이다.


AI는 언어의 장벽을 없애준다. 분명한 장점이다. 그런데 동시에 언어의 수준이 사고의 수준을 가리기까지 한다. 생각도 조금 빌렸고, 언어도 빌렸다. 그런데 결국 발표대에 서 있는 사람은 나였다. 나는 AI가 내놓은 답을 너무 빨리 내 생각으로 받아들였다.


다음날 또 다른 발표가 잡혀 있었다. 늘 그렇듯 AI와 자료를 준비했다. 나는 AI를 더 세고, 집요하게 몰아붙였다. 왜? 근거는? 기존과 뭐가 달라? 반론은? AI가 답을 길게 쏟아냈다. 그런데 몇 줄 읽지 않아 또 질문거리가 생겼다. 질문을 하나 던지면 또 긴 답이 돌아왔다. 그러다 보면 이전 답변의 나머지는 읽지도 못한 채 뒤로 밀렸다. 새 답을 읽다가 또 질문이 생겼고, 대화는 계속 옆으로 가지를 쳤다. 전날 같으면 '그런가 보다' 하고 넘어갔을 문장들을 이번에는 하나씩 붙들고 늘어졌다. 자료를 만드는 시간보다 AI와 따지고 드는 시간이 더 길어졌다.


실수를 다시하고 싶지 않아서였다. 그동안 나는 문서를 쓰는 동안에도 AI 뒤에 숨을 수 있었다. 어쩌면 슬라이드를 넘기는 동안에도 가능했는지 모른다. 하지만 누군가 "왜 그렇게 생각하시죠?"라고 묻는 순간, 결국 앞으로 나와야 하는 사람은 나였다.



- 예나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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