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그리는 52일'
나를 가장 편안하게 하는 소리나 장면은?
눈을 감고 가장 먼저 떠오르는 소리나 장면 하나를 붙잡아보세요. 그것을 언제 처음 편안하게 느꼈는지 기억을 더듬어 적으면 그 이유까지 자연스럽게 드러납니다.
눈을 감고 한 장면을 떠올려 보았다. 가장 먼저 떠오른 것은 바람에 흔들리는 나뭇잎 사이로 햇빛이 스며들고, 그 빛이 땅 위에 부드러운 그림자와 어우러지는 풍경이었다. 잎사귀가 흔들릴 때마다 빛과 그림자도 함께 일렁였다. 고정된 풍경이 아니라 살아 움직이는 한 폭의 그림 같았다.
일본어에는 이런 풍경을 표현하는 ‘고모레비(木漏れ日)’라는 말이 있다. 나뭇잎 사이로 새어 나오는 햇빛을 뜻한다. 우리말 중에는 ‘볕뉘’가 떠오른다. 이 말이 풍경의 의미를 온전히 담아내는지는 모르겠지만, 햇살이 만들어 내는 다정하고 섬세한 아름다움을 표현하기에는 충분하다.
비슷한 말로 ‘윤슬’도 있다. 햇빛이나 달빛이 물결에 비쳐 반짝이는 모습을 가리키는 말이다. 윤슬이 물 위에서 빛나는 순간이라면, 볕뉘는 나뭇잎과 햇살, 땅 위의 그림자가 함께 만들어 내는 순간에 가깝다. 빛은 잎사귀 사이를 지나 땅에 닿고, 바람은 그 빛의 모양을 쉼 없이 바꾸어 놓는다. 그 사이에서 자연은 아무 말 없이도 충분히 아름다운 장면을 만들어 낸다.
그 풍경을 떠올리자 소리도 자연스럽게 따라왔다. 바람에 잎사귀들이 서로 부대끼며 내는 바스락거리는 소리. 크지도 특별하지도 않지만, 귀를 기울이면 분명하게 들리는 소리다. 눈앞의 빛과 그림자에 그 소리까지 더해지자 마치 그 자리에 다시 서 있는 것 같았다.
어쩌면 내가 떠올린 것은 단순히 아름다운 풍경만은 아닐 것이다. 그 빛을 바라보던 당시의 마음과 몸의 감각, 아무것도 서두르지 않아도 되었던 시간까지 함께 기억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인생에서 가장 행복하고 편안했다고 느낀 순간은 생각보다 선명하게 남아 있다. 대단한 일이 있었던 것도, 특별한 무언가를 손에 넣었던 것도 아니다. 그저 바람이 불고 햇빛이 흔들리고, 잎사귀가 소리를 내던 순간이었다.
눈을 감으면 다시 그 풍경이 떠오른다. 빛과 그림자가 천천히 일렁이고, 바람 소리가 곁을 맴돈다. 그때의 내가 무엇 때문에 그토록 편안했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다. 다만 그 순간만큼은 무언가를 애써 해내지 않아도, 어디론가 더 나아가지 않아도 괜찮았던 것 같다.
이상하게도 그 순간에는 나 자신마저 희미해지는 느낌이 들었다. 내가 잠시 사라져도 세상은 아무렇지 않게 흘러가고, 나뭇잎은 흔들리고 햇빛은 여전히 땅 위에서 춤을 춘다. 내가 없어도 이토록 평화롭다는 사실이 낯설면서도 놀라웠다. 어쩌면 그것은 나를 중심으로 돌아가던 세상에서 잠시 벗어나, 세상 그 자체를 바라보게 된 순간이었는지도 모른다.
지금도 가끔 그런 순간을 만난다. 무심히 걷다가 나뭇잎 사이로 쏟아지는 햇살을 발견하거나, 길 위에 잘게 부서진 빛과 그림자를 바라볼 때면 잠시 걸음을 늦춘다.
어쩌면 행복은 오래 붙잡아 두어야 하는 것이 아니라, 스쳐 지나가는 순간을 알아보는 데서 시작되는지도 모르겠다.
오늘도 어디선가 볕뉘가 흔들리고 있을 것입니다.
내가 미처 알아보지 못했을 뿐, 잠시 멈춰 바라본다면 다시 만날 수 있는 작은 행복이 늘 존재하는 거죠.
여러분은 가장 편안한 소리나 장면은 어떻게 되시나요?
그 모습들을 댓글로 공유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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