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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풍은 맞서지 않아도 된다

사건보다 해석이 더 피곤한 사람들

by곽작가

건강하고 행복한 삶을 생각할 때, 우리는 보통 자존감을 떠올린다.


자존감이 높은 사람은 회복탄력성도 높을 것이고, 인생의 만족도도 높을 것이다. 그런 예상은 자연스럽다. 그래서 우리는 자존감을 높이라는 말을 자주 듣는다. 스스로를 사랑하라, 자신을 믿어라, 자존감이 모든 것의 시작이다. 서점의 한 코너가 통째로 그 말로 채워져 있다.


근데 여기서 한 번 더 생각해보자.


자존감이라는 것은 내 삶과 함께 움직인다. 뭘 해도 결과가 좋을 때는, 굳이 노력하지 않아도 나에 대한 신뢰가 생긴다. 자신감이 붙고, 도전정신이 생기고, 세상이 만만해 보인다. 그건 대단한 마음가짐 때문이 아니라 그냥 일이 잘 풀렸기 때문이다.


반대도 마찬가지다. 뭘 해도 결과가 좋지 않을 때는, 나의 부족함을 먼저 돌아보게 된다. 좌절하게 되고, 위축되고, 내가 문제인 것 같다. 그것도 마음가짐이 약해서가 아니라 그냥 일이 안 풀렸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자존감은 원인이라기보다 결과에 가까울 때가 많다. 그런데 우리는 그걸 자꾸 원인으로 놓는다. 자존감이 낮아서 일이 안 풀린다고, 자존감만 높이면 다 나아진다고. 그러면 어떻게 되는가. 힘든 시기를 지나는 사람이 힘든 것도 모자라, 자존감이 낮은 자신까지 탓하게 된다. 짐이 두 개가 된다.


인생에는 맑은 날이 있고 흐린 날이 있다. 선선한 날도 있고 습한 날도 있다. 그 안에서 우리는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비 오는 날 기분이 가라앉는 것을 두고 마음이 약하다고 하지 않듯이, 삶이 흐릴 때 마음이 흔들리는 것도 이상한 일이 아니다. 때로는 흔들리는 것이 인생을 살아가는 유연함이라고도 하지 않는가.


그러니 내 날씨가 궂을 때, 굳이 자존감을 들먹이며 나를 괴롭히지 말자. 지금 자신감이 없는 건 내가 못난 사람이라서가 아니라, 그냥 요즘 잘 안 풀리고 있기 때문이다. 그 시기가 지나면 자존감도 자연히 돌아온다. 지금 없다고 해서 영영 없는 게 아니다.


그리고 한 가지 더. 폭풍이 올 때 반드시 맞서야 하는 건 아니다.


우리는 이겨내는 것에 익숙하다. 힘들어도 버티고, 흔들려도 다시 서고, 무너져도 일어나야 한다고 배운다. 근데 모든 폭풍을 정면으로 맞을 필요는 없다. 어떤 날은 그냥 지나가기를 기다리는 게 맞다. 숨어 있어도 된다. 웅크리고 있어도 된다. 그건 도망이 아니라 판단이다.


폭풍과 맞서지 못하는 나를 탓하는 것보다, 폭풍이 지나갈 때까지 안전하게 기다릴 수 있는 것이 더 어려운 일일지도 모른다. 그러려면 지금이 폭풍이라는 걸 인정해야 하고, 나에게 쉴 시간을 허락해야 하니까.


지금 자존감이 바닥이라면, 그건 당신의 결함이 아니라 그냥 날씨다. 궂은 날에는 나가지 않아도 된다. 폭풍은 맞서지 않아도 된다. 지나갈 때까지, 그냥 안에 있어도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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