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 파견 인력 간의 역활 조율

보이지 않는 경계선: PM, PO, FM의 업무를 재정의하다

by중앙아시아 경계인
중앙아시아의 대표 주식

1. 감정을 시스템으로 치환하라 (The System First)

FM : PM님, 잠시 대화 좀 나눌 수 있을까요? 요즘 지부에서 현장 파트(PO)와 주니어 스태프들을 대할 때마다 마음에 큰 돌덩이를 얹은 것 같습니다. 일하는 스타일과 속도가 저와 너무나도 극과 극이라, 매번 정산 서류를 검토하고 업무를 조율할 때마다 지부 내에 팽팽한 냉전이 흐릅니다.

PM : 낯선 타지 지부일수록 서로의 일하는 방식이 다르면 숨을 곳이 없지요. 특히 재무와 행정을 바카라임지는 FM 자리가 외로운 법입니다. 구체적으로 어떤 점이 그렇게 FM님을 지치게 만드나요?

FM : 단적으로 말씀드리면, 현장 파트(PO)가 함께 일하는 현지 직원들의 실수나 미비한 예산 증빙을 전혀 스크리닝하지 않고 그대로 저에게 토스하고 있습니다. 최근에 있었던 농가 소득 증대 사업 건만 해도 그래요. 현지 코디네이터가 오지 마을에 출장 다녀와서 제출한 영수증들을 보니까, 우즈베키스탄 세무법상 필수인 QR코드 처리가 안 된 사설 영수증이 수두룩하고, 현지 업체 계약서에는 직인조차 누락되어 있었습니다.

PM : 코이카(KOICA) 감사나 회계법인 감사에서 100% 지적되고 환수될 치명적인 결격 사유들이군요.

FM : 맞습니다. 그런데 더 속상한 건 PO의 태도입니다. 현지 직원이 서류를 가져왔을 때, 사업 담당자인 PO가 1차로 영수증 개수나 필수 증빙 항목을 꼼꼼하게 체크해서 돌려보내야 하잖아요? 그런데 PO는 "어차피 재무 서류는 FM님이 최종 검토하실 테니까요"라며 그냥 결재판을 저에게 넘겨버립니다. 결국 현지 직원의 부실한 서류를 붙잡고 밤새 수정하고, 다시 서류 받아오라고 현지 스태프들을 쫓아다니며 닥달하는 건 온전히 제 몫이 됩니다.

PM : PO가 일종의 '좋은 사람 가면'을 쓰고 정산의 귀찮은 피로와 잔소리를 FM님에게 전부 떠넘기고 있군요.

FM : 정확합니다. 제가 꼼꼼하게 서류를 반려하면 현지 직원들은 뒤에서 "FM은 너무 까다롭다", "숨이 막힌다"며 불만을 터뜨립니다. PO는 그 옆에서 "FM님이 워낙 원칙주의자라 미안해, 내가 잘 말해볼게"라며 본인은 좋은 상사 노릇을 해요. 저는 지부의 곳간을 지키려고 밤새 숫자를 맞추고 법령을 보는데, 정작 조직 안에서는 사업 발목을 잡는 꼰대이자 독선적인 '악역'으로 고립되고 있습니다. 제가 이 외딴섬 같은 타지에서 왜 이렇게 미움받아가며 일해야 하는지 회의감이 듭니다.

PM : FM님, 절대 외로워하거나 타협하지 마세요. FM님의 그 깐깐함과 정밀함이 이 지부가 무너지지 않게 지탱하는 마지막 방어선입니다. PO가 현지 직원들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싶어서 행정적 바카라임을 방기하는 것은 배임이자 동료에 대한 예의가 아닙니다. 이 구조적인 문제를 깨기 위해, 소통 동선과 바카라임의 무게를 명확히 재조정합시다.

FM : PO와 현지 직원들의 태도를 바꿀 강제적인 시스템이 있을까요?

PM : 오늘부로 정산 프로세스에 ‘PO 1차 결재 바카라임제’를 도입하겠습니다. 앞으로 현지 직원이 제출한 증빙 서류는 FM님에게 바로 올 수 없습니다. PO가 직접 작성한 ‘1차 정산 검토 체크리스트’에 수량, QR코드 유무, 직인 확인 항목을 PO 본인의 손으로 체크하고 서명해야만 FM님의 바카라임을 묻는 최종 결재판에 들어올 수 있도록 통제하겠습니다.

만약 PO의 서명이 부착되어 있음에도 FM님의 검토 단계에서 기초적인 증빙 미비가 발견된다면, 그 서류는 현지 직원이 아니라 PO에게 다이렉트로 반려할 것입니다. "현지 직원의 실수는 곧 PO 당신의 직무유기"임을 시스템으로 못 박는 거죠.

서로에게 "나처럼 꼼꼼해져라"라며 감정을 낭비하며 싸우지 마십시오. "PO가 1차 격벽이 되어 거친 행정 리스크를 걸러오면, FM인 내가 그 뒤를 프로페셔널한 정밀함으로 완벽하게 백업해 방패가 되어주겠다"는 구조를 짜주겠습니다. 그래야만 FM님도 상처받지 않고 공적인 권위를 지킬 수 있습니다.

(잠시 후...)

PM : PO님, 잠깐 시간 괜찮으시죠? 차 한잔하면서 최근 지부 내 정산 프로세스와 한국인 스태프 간의 업무 흐름에 대해 이야기 좀 나누고 싶습니다.

PO : 아, 네 PM님! 안 그래도 요즘 농가 소득 증대 사업 현장 실사가 몰려서 정신이 없었습니다. 현지 직원들이랑 밤낮없이 뛰고는 있는데, 행정 처리가 자꾸 밀려서 걱정입니다.

PM : 현장에서 발로 뛰며 고생하는 건 내가 누구보다 잘 알고 있고, 늘 고맙게 생각합니다. 하지만 오늘 내가 짚고 넘어가야 할 문제는 '현장의 땀방울'이 아니라, '결재판 위에 묻어나는 PO님의 바카라임감의 무게'입니다. 최근 현지 스태프들이 올린 지출 결의서와 증빙 영수증들, PO님이 1차 검토하고 사인해서 재무 라인으로 넘기신 거 맞습니까?

PO : (약간 당황하며) 아... 그게, 양이 너무 많기도 하고... 어차피 영수증 QR코드 검증이나 우즈베키스탄 세무법 매칭 같은 정밀한 회계 검토는 FM님이 최종적으로 보시는 영역이잖아요. 그래서 저는 사업 목적에 맞게 돈이 쓰였는지만 대략 확인하고 넘겼습니다. 어차피 FM님이 매의 눈으로 다 잡아내시니까요.

PM : PO님, 그게 바로 지금 우리 지부를 소리 없이 망치고 있는 '행정적 방임'이자 '동료에 대한 배임'입니다.

PO : 배임이요...? 제가 돈을 횡령한 것도 아니고, 단지 재무 전문가인 FM님의 전문성을 신뢰해서 최종 검토를 맡긴 것뿐인데 표현이 너무 과하신 게 아닙니다.

PM : 전혀 과하지 않습니다. 잘 생각해 보세요. 현지 코디네이터들이 오지에서 가져온 서류에 직인이 누락되고 사설 영수증이 범벅되어 있는 걸 보면서도, PO님은 "FM이 알아서 하겠지"라며 그냥 사인을 해서 넘겼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정말 시간이 없어서였을까요, 아니면 현지 직원들에게 깐깐하게 굴며 '악역'이 되기 싫어서였을까요?

PO : 그건... 현지 스태프들과 신뢰 관계를 유지해야 다음 현장 조사가 수월하니까, 서류 좀 미비하다고 제가 마냥 몰아세우기가 현실적으로 어려웠던 면은 있습니다.

PM : 바로 그겁니다. PO님이 현지 직원들에게 "좋은 상사", "나이스한 관리자"라는 가면을 쓰고 인심을 얻는 동안, 그 엉성한 서류를 붙잡고 현지 스태프들과 얼굴 붉혀가며 밤새 수정하고 사후 독촉을 하는 악역은 온전히 FM 혼자 감당하고 있었습니다. 지부의 곳간과 법적 리스크를 지키는 동료를 가장 외로운 사지로 밀어 넣은 장본인이, 바로 1차 필터링을 방기한 PO님이라는 뜻입니다. ODA 사업에서 행정은 사업의 부속품이 아니라 동전의 양면입니다. 행정이 무너지면 아무리 좋은 현장 성과도 감사 지적 한 방에 공중분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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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년만 머물겠다던 청춘의 다짐이 16년의 삶이 되었습니다." 타지키스탄, 우즈베키스탄, 키르기스스탄에서 2011년부터 거주 중이며, 국제개발협력 분야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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