雨戸

by혜준

어릴 적,

저녁 준비를 위해 함께 마트에서 장을 보고

돌아오는 길에 노을을 보며 엄마는 말하곤 했다.

"저녁 해가 뉘엿뉘엿할 때가

행복한 사람에게는 가장 행복한 시간이고,

외로운 사람에게는 가장 외로운 시간이야"라고.

가족들과 함께 살 때는 그 말을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렸다.


하지만,

낯선 이 섬나라에서 혼자 생활하게 되었을 때,

나는 그 말을 뼛속까지 실감했다.

특히,

이곳은 저녁이 되면 집안과 바깥을 단단히 구분한다.

이른 저녁인데도 길거리에는 인기척이 없고,

창문에는 커튼이 드리워지고

때로는 雨戸*(あまど [amado] 덧문)까지 닫혀

집이 어둠 속에 잠긴다.

사람은 분명 안에 있는데도

사람 사는 기척이 느껴지지 않는 고요함이 있다.


학교에서 기숙사로 돌아가는 저녁,

꼭 닫힌 창문으로 솔솔 새어 나오는 맛있는 냄새에

엄마와 따뜻한 식탁을 떠올리며

처음으로 외로움이라는 걸 알았다.

저녁마다 컴컴하고 무겁게 닫히는

일본 집들의 雨戸가

마치 나를 가까이 오지 말라고 밀어내는 듯했다.

슬펐다.


그래서,

지금도 나는

자기 직전까지 거실의 커튼을 치지 않는다.

가끔 밤에 공원으로 산바카라을 나가

내가 사는 곳을 바라보면,

몇 층인지 세지 않아도 우리 집을 금세 찾을 수 있다.

커튼을 치지 않고 있는 집은 우리 집뿐이기 때문이다.

지금도 나는

택배아저씨가 돌아서자마자

찰칵 현관문 잠그는 일을 좀처럼 할 수 없다.

몇 년 전,

한국에서 문이 닫히면 삐리릭~

저절로 문이 잠기는 걸 보고

편리하면서도

왠지 모를 쓸쓸함을 느낀 것은

단단히 닫힌 문 너머로 소외되고 싶지 않다는

오랜 정서적 본능 때문이었을지도 모르겠다.


그래서일까.

사람을 대할 때도

마치 雨戸를 내린 채 나를 대하는 것 같은 상대에게는 민감해진다.

그 거부의 감각을 다시는 겪고 싶지 않아서일까.

난 상대의 雨戸 앞에서 아무 말 없이 뒤돌아선다.


하지만,

정작 나야말로

마음속에 무겁고 견고한 雨戸를 닫은 채

살고 있는 건 아닌가 싶을 때가 있다.

雨戸에 귀를 바짝 붙인 채

혹시

누군가

내 雨戸를

콩콩 두드려주진 않을까

두근두근하면서......






*雨戸 [amado] : 태풍이 잦고 비가 많이 오며 습기가 많은 일본의 전통 가옥 구조에서 빠질 수 없는 '덧문'으로, 창문의 창호지나 유리를 보호하기도 하고 밤에는 방범과 방음을, 겨울엔 한기를 막아주는 역할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