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미어리그, 같이 봅시다!] 2부. 잉글랜드
유럽 축구에는 같은 도시나 가까운 지역을 연고로 한 라이벌 팀 간의 경기, 더비(Derby)라고 불리는 경기들이 있습니다. 더비의 어원에는 여러 설이 있습니다. 18세기 더비 백작이 만든 영국의 유명 경마 대회 '더비'에서 큰 경기를 뜻하는 말로 축구에 적용되었다는 설 그리고 잉글랜드 더비 지방에서 서로 이웃한 기독교 교구들이 벌이던 축구 시합에서 유래했다는 설이 가장 잘 알려져 있습니다.
유럽 리그에도 유명한 라이벌전들이 있습니다. 다만 모두가 '더비'인 건 아닙니다.
엘 클라시코: 스페인 레알 마드리드와 바르셀로나의 라이벌전
데어 클라시커: 독일 바이에른 뮌헨과 보루시아 도르트문트의 라이벌전
르 클라시크: 프랑스 파리 생제르맹과 올림피크 마르세유의 라이벌전
밀라노 더비: 이탈리아 밀라노를 연고지로 하는 AC 밀란과 인테르의 라이벌전
올드펌: 스코틀랜드 글래스고를 연고지로 하는 셀틱과 레인저스의 라이벌전
앞의 세 라이벌전은 서로 다른 도시를 연고로 하는 리그 내 최강팀끼리 맞붙는 '클라시코'이고, 뒤의 두 경기는 같은 도시를 연고로 하는 두 팀이 맞붙는 '더비'입니다.
그리고 예상외로 런던만큼 더비가 많은 도시도 없습니다. 2026-27시즌 프리미어리그 20개 팀 가운데 여섯 팀이 런던 팀이고, 하부 리그까지 합치면 런던을 연고로 한 프로팀은 열 곳이 넘습니다. 더비는 같은 리그에 있지 않아도 FA컵, 리그컵 등에서 벌어질 수 있습니다.
북런던 더비: 아스널과 토트넘
서런던 더비: 첼시, 풀럼, 브렌트퍼드, QPR 등 서런던 팀들 간의 경기
남런던 더비: 크리스털 팰리스와 찰턴, 크리스털 팰리스와 밀월
도커스 더비: 동런던의 웨스트햄과 남동런던의 밀월
런던 더비: 런던 팀들 간의 경기를 통틀어 부르는 말로, 아스널과 첼시의 경기가 대표적
런던의 더비 매치들은 인접한 지역 팀들 간의 경기이다 보니, 그 열기가 상당히 다릅니다. 특히 아스널과 첼시의 런던 더비, 그리고 아스널과 토트넘의 북런던 더비의 열기는 남다릅니다. 더비전이 챔피언스리그나 FA컵 같은 토너먼트 경기로 열리면 리그 때보다 더 치열해집니다.
런던의 수많은 더비 중에서도 가장 치열한 경기를 꼽으라면 단연 북런던 더비입니다. 그리고 이 더비의 시작은 아스널의 북런던 이전과 함께합니다.
이미 알려진 이야기이지만, 아스널은 1886년 템스강 남쪽 울위치의 왕립 무기 공장 노동자들이 만든 팀입니다. 팀 이름이 '아스널'인 것도 그 때문이지요. 하지만 울위치 지역은 런던 외곽이다 보니 관중 수가 많지 않았고, 결국 1913년 아스널 운영진은 인구가 더 많고 축구가 활성화된 북런던의 하이버리 지역으로 연고지를 옮기는 결정을 내리게 됩니다. 이미 북런던을 연고로 하던 토트넘 입장에서는 지역 내 경쟁자가 생긴 셈이었습니다. 다만 아스널의 하이버리와 토트넘의 화이트 하트 레인은 약 6km, 차로 20분 정도 떨어져 있어서, 흔히 알려진 것처럼 바로 옆에 경기장이 있지는 않습니다.
1919년, 1차 세계대전 이후 잉글랜드 1부 리그가 확대되면서, 당시 2부 리그에 있던 아스널이 투표를 거쳐 1부로 올라갔습니다. 반면 직전 시즌 1부 최하위였던 토트넘은 2부로 내려가야 했습니다. 토트넘은 성적으로 강등되었는데, 그 자리를 아스널이 '투표'로 차지하게 되면서 두 팀 간의 신경전은 극에 달하게 됩니다. 이후 두 팀 간의 역사는 북런던 더비를 유럽에서도 손꼽히는 더비로 만들게 됩니다.
아스널은 1971년과 2004년, 두 번에 걸쳐 토트넘의 홈구장인 화이트 하트 레인에서 리그 우승을 확정했습니다.
2001년에는 토트넘 유스 출신의 성골이자 주장이었던 솔 캠벨이 자유계약으로 아스널로 이적합니다. 이때 토트넘 팬들의 반발은 대단했습니다.
북런던 더비의 상대 전적은 공식 경기 기준 약 200경기에서 아스널이 86승, 토트넘이 60승 남짓, 무승부가 50여 경기로 아스널이 앞서 있습니다. 가장 많은 골이 터진 경기는 2004년 11월 화이트 하트 레인에서 아스널이 5-4로 이긴 경기이고, 가장 최근 경기는 2026년 2월 토트넘 홈에서 열린 경기로 아스널이 4-1로 이겼고, 올 시즌 첫 맞대결은 12월 5일 토트넘 홈에서 열립니다.
서런던을 대표하는 더비는 첼시와 풀럼의 경기입니다. 첼시의 홈구장인 스탬퍼드 브리지와 풀럼의 크레이븐 코티지는 약 3km 정도 떨어져 있어, 런던에서 가장 가까운 더비 중 하나로 꼽힙니다.
1879년 창단한 풀럼은 런던에서 가장 오래된 프로 축구팀이지만, 첼시는 그보다 한참 늦은 1905년에 만들어졌습니다. 1900년대 초반, 사업가 구스 미어스는 서런던의 육상 경기장이던 스탬퍼드 브리지를 사들여 축구장으로 개조하고, 이를 풀럼에 임대해 수익을 내고자 했습니다. 하지만 풀럼은 자신들의 역사가 새겨진 크레이븐 코티지를 떠날 생각이 없었고, 결국 미어스는 자신의 경기장을 사용할 축구팀을 직접 만들게 되는데, 이 팀이 바로 첼시입니다. 팀 이름은 이웃 동네인 첼시에서 따왔지만, 정작 스탬퍼드 브리지는 풀럼 브로드웨이 역 근처, 풀럼 지역에 자리하고 있습니다. 첼시는 이름과 연고지가 다른 셈이지요.
다만 두 팀의 라이벌 의식은 한쪽으로 기울어 있습니다. 풀럼 팬들에게 첼시는 가장 큰 라이벌이지만, 첼시 팬들은 아스널이나 토트넘 같은 런던의 다른 강팀들을 더 큰 라이벌로 여깁니다. 오랫동안 우승권에서 경쟁해 온 첼시와 달리, 풀럼은 1부와 2부를 오가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입니다. 상대 전적에서도 첼시가 크게 앞서 있습니다.
런던 팀들 간의 경기를 통틀어 런던 더비라고 부르지만, 그중 가장 주목받는 경기는 아스널과 첼시의 대결입니다. 2000년대 이후 런던에서 우승을 다투는 두 강팀의 더비는 런던은 물론 전 세계 축구 팬들의 관심을 받고 있고, 두 팀의 치열한 승부는 특히 큰 무대에서 자주 펼쳐졌습니다.
2004년 챔피언스리그 8강에서는 첼시가 아스널을 꺾었는데, 그해 아스널은 리그에서 단 한 번도 지지 않은 무패 우승팀이었습니다. FA컵 결승에서는 2002년, 2017년, 2020년 세 번 만나 모두 아스널이 이겼고, 2019년 유로파리그 결승에서는 첼시가 아스널을 4-1로 꺾었습니다. 3편에서 이야기한 아르테타 감독의 첫 트로피, 2020년 FA컵도 첼시를 상대로 얻은 것입니다.
두 팀 사이를 오간 선수들도 제법 있는데, 이적한 선수들에 대한 반응은 썩 좋지 않았습니다. 무리뉴 감독 시절인 2006년 첼시로 이적한 애슐리 콜은 오랫동안 아스널 팬들의 용서를 받지 못했고, 아스널을 떠난 지 한참 뒤 첼시로 이적한 파브레가스와 오바메양 역시 엄청난 비난을 받아야 했습니다.
반대로 페트르 체흐의 이적은 런던에 남기를 원한 그의 뜻을 당시 구단주인 로만이 존중해 성사된 것이었고, 카이 하버츠의 이적은 첼시의 리빌딩 계획 속에 추진되었습니다. 생각해 보니, 아스널에서 첼시로의 이적은 아스널 팬들의 반발을 샀지만, 첼시에서 아스널로의 이적은 첼시 팬들을 그렇게 서운하게 하지는 않았던 것 같습니다.
더비는 같은 도시나 가까운 지역을 연고로 한 팀들 간의 경기를 말합니다. 런던은 2026-27시즌 기준 프리미어리그 팀 여섯 곳이 모여 있는 도시로, 북런던 더비처럼 오랜 역사를 가진 더비들이 있습니다.
런던 남동부를 연고로 했던 아스널이 1913년 북런던으로 연고지를 옮기면서 토트넘과의 악연이 시작됩니다. 1919년 1부 리그 승격 투표는 두 팀의 관계를 돌이킬 수 없게 만들었습니다.
서런던의 첼시와 풀럼은 런던에서 가장 가까운 더비 중 하나입니다. 가끔 더비라는 이름에 걸맞은 치열한 경기가 나오기도 하지만, 첼시가 분명한 우위에 있는 더비 관계입니다.
아스널과 첼시의 런던 더비는 챔피언스리그, FA컵, 유로파리그 결승 등 큰 무대에서 자주 맞붙으며 런던을 대표하는 라이벌전이 되었습니다.
이 작가의 멤버십 구독자 전용 콘텐츠입니다.
작가의 명시적 동의 없이 저작물을 공유, 게재 시 법적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오직 멤버십 구독자만 볼 수 있는,
이 작가의 특별 연재 콘텐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