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 놀랍고 그리고 부러운 시간

by이슬기

프롤로그



사내는 우리가 건네는 술잔을 받으며 묻는 말 외엔 말이 없었다.
어떻게 보면 퍽 싱거운 술좌석이었으나 나는 아주 편안한 기분이었다.
이씨라는 성을 가진 그 사내는 역시 곡예단원이었다.
“그럼 이선생님, 몇 년 동안이나 서커스를 하셨어요?”
“그럭저럭 삼십 년쯤.”
삼십 년. 놀랍고 그리고 부러운 시간이었다.

김승옥. 「환상수첩」. 『생명연습』, 문학동네, 2014, p.139.




스무 살 겨울 초입, 도서관 구석에서 읽었던 단편소설에서 한 장면을 몇 번이고 다시 읽고 필사를 했다. 서사의 한 부분, 한 장면만 놓고 보니 그저 흘러가는 대화에 불과해 보이지만, 그러나 그것은 얼마 되지 않는 내 인생 전반에서 느껴온 어떤 동경을 여실히 드러낸 것이어서, 내 속을 발가벗긴 것 같은 독서 경험이었다.

60년대 청년문학 대표 작가의 소설조차도 젊었던 어느 시절엔 그런 감정을 느꼈을까.


놀랍고 그리고 부러운 시간.


이 인터뷰집을 쓰면서, 오랫동안 잊고 있었던 「환상수첩」의 한 장면이 떠올라 머릿속을 맴도는 것을 알아차렸을 때, 마흔 살이 되었어도 스무 살의 이슬기는 무엇 하나 변하지 않았다는 것을 비로소 깨달았다.

나의 동경은, 그러니까 자기 세계를 결심하고, 구축하고, 유지하는 사람들에 있었다. 그 세계를 오랜 시간 묵묵히 걸어가며 인생을 바치는 사람들, 그들이 보이는 고집 혹은 열정에 있었다.

대체 어떻게 하면 하나의 일에 온전히 인생을 바칠 수 있는가?

태어나기를 무엇이든 새로운 것을 보면 이내 그것에 관심이 가고, 관심의 촉이 끝없이 다른 세계를 향해 있는, 무언가 하나를 꾸준히 하지 못하는 나로서는 도무지 가 닿을 수 없는 미지의 영역처럼 느껴지는 것이다.


그렇기에 인형극 선배들을 찾아가는 것은 나의 오랜 질문과 고민의 답을 얻기 위한 여정이었다. 오랜 시간 인형극에 전념해 온 선배들의 이야기를 듣다 보면, 인형극을 하고 있으면서도 여전히 투신하지 못하고 있다는 자신에 대한 자바카라 비슷한 이 위태로운 감각을 해소할 수 있지 않을까.


과연 선배들은, 비교적 주류 예술계에서 벗어나 있는 인형극이라는 예술 장르 안에서, 삼십 년, 혹은 그 이상의 놀랍고 부러운 시간을 어떻게 살아낼 수 있었는지 알고 싶었다.


이 글을 읽는 당신이 만약 어떤 한 가지 목표에 인생을 바쳐 최선을 다하고 싶지만 그러지 못하는 사람이거나 혹은 자기 안의 뜨거운 열정이 사라진 느낌이 드는 사람이라면, 오랜 시간 자신만의 예술 세계를 구축해 온 인형극 예술인의 인생 이야기 속에서 조금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이 여정의 기록은, 조금은 한기가 느껴지는 도서관에서 놀라운 마음을 부여잡은 채로 바카라을 읽던 스무 살의 나에게 전하는 답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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