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속도로를 빠져나와 장수군으로 들어가는 초입에서부터 알록달록 화려한 옷을 입고 온갖 표정을 한 허수아비들이 인형극장을 찾아 온 여행객들을 두 팔 벌려 환영한다. 이 허수아비들은 벌써 다섯 번째 열리는 장수꼭두인형극제를 위해 계북면 아이들이 직접 꾸민 작품들이다. 올해는 수십 개의 허수아비가 새롭게 태어나 인형극장 주변뿐 아니라 장수군 곳곳에 우뚝 세워져 그 위용을 뽐내고 있었다.
장수군 계북면에 위치한 계북인형극장꼭두에는 인형극단 누렁소가 있다. 아무 연고가 없는 계북면에 와서 지난 22년동안 계북초등학교 6학년 학생들과 매년 인형극을 만드는 작업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단 한 해도 빠진 적 없이, 무려 22년!
우리 극단의 이야기를 잠깐 할까. 우리는 지난해 지역의 아이들과 인형극단을 만들었다. 전국 공연을 다니느라 정신없었던 일들이 줄어들면서 그동안 하지 못했던 일들을 해보자는 생각에 자연스럽게 이어진 작업이었다. 아무런 연고도 없는 지역에서, 그것도 면 소재지 초등학교 아이들과 함께 인형극을 만든 지 이제 2년 차, 햇병아리 어린이 인형극단. 지난 몇 년간 관계를 맺어오면서 서로의 신뢰를 쌓아가던 아이들과 함께하는 인형극 작업은 애정을 가진 만큼, 아이들과 인형을 만들고 연습을 하고 무대에 올리는 과정이 재밌고 보람찬 만큼, 힘들었다. 무엇보다 어린이 인형극단이라는 것은 단순히 인형극의 기술을 가르치는 것뿐 아니라, 인형극을 매개로 인성을 가르치는 교육의 연장선상이라는 것이 참으로 어려웠다. 2년 동안 두 개의 작품을 만들어 공연을 올렸다. 춘천인형극제 아마추어 인형극 경연대회에 나가 수상을 하는 쾌거를 이루기도 했다. 하지만 아이들을 가르치고 끌어내는 과정이 힘겨워 그만둬야겠다는 생각마저 들었던 참에 서해자 대표님을 알게 되었다.
계북인형극장꼭두 로비에는 지난 22년 고사리인형극단 아이들이 직접 만들었던 인형들이 모두 전시되어 있다. 22년이라는 긴 시간이 믿기지 않을 만큼 인형들의 보관 상태가 훌륭하다. 관리에 얼마나 애를 썼는지 알 수 있다. 인형들 주변에는 그 인형을 만든 아이들의 단체 사진이 하나씩 붙어있다. 초창기 고사리인형극단 아이들은 이제 삼십 대 중반쯤의 어른이 되어 자신의 아이들의 손을 붙잡고 극장에 와서 자기가 했던 인형들을 자랑스럽게 구경시킨다. 기가 막힌 시간이다, 22년이라는 시간은.
그러니 찾아가지 않을 수 있겠는가.
우리가 가는 길을 정확히 먼저 걸어간 선배가 있는데, 저 멀리 아득해 보이는 그 길을 한참 먼저 걷고 있는 선배가 있는데 말이다.
- 일시: 2026년 6월 20일 토요일 15:00
- 장소: 계북인형극장꼭두(전북 장수군)
- 참석자: 서해자, 김해일, 이슬기
이슬기 원래 다른 일을 하셨다고 들었어요. 처음에 어떻게 인형극을 시작하게 되셨는지 궁금해요. 한겨레 문화센터에서 수업을 들으신 게 첫 시작이었나요?
서해자 맞아요, 그게 처음이었죠. 아주 옛날에 원주에서 서울까지 일주일에 한 번씩 3개월 동안 배우러 다녔어요. 그 후에 심화 과정도 몇 개월 더 들었고요. 사실 그전에는 인형극이 뭔지도 전혀 몰랐고, TV에서 본 게 전부였거든요. 알고 들어간 게 아니라 정말 모르고 시작했어요.
이슬기 인형극이랑 전혀 상관없는 삶을 살다가 입문하신 거네요.
서해자 누가 저한테 인형극으로 월급을 벌 수 있는 일이 있다는 말을 해줬어요. '그게 뭐지?'하고 찾은 곳이 원주에 있는 한 극단이었어요. 짧은 시간이었지만, 무대 뒤에서 선생님 공연을 도와주며 소품을 잡아주던 경험이 내 마음에 쏙 들어왔어요. 그 무대 뒤의 공기와 느낌이 너무 좋았던 거예요. 그게 바로 '씨앗'이 된 것 같아요. 이후에 일반 온라인 게임을 다니면서 취미로 혼자 인형을 깎고 만들기 시작했는데, 이게 너무 재미있으니 시간이 부족하게 느껴지더라고요. 결국 온라인 게임을 그만뒀어요. 하필 그때 IMF 외환위기가 터졌을 때였어요. 주변에서는 난리가 났고 다 말렸죠. 지금 때가 어느 때인데 온라인 게임을 관두냐고. 하지만 제 눈에는 IMF고 뭐고 아무것도 안 보였어요. 그냥 인형을 만들고 움직이는 것 자체가 너무나 재미있었으니까요.
이슬기 대단하시네요. 혹시 그렇게 오래 해오시면서 슬럼프가 온 적은 없으셨나요?
서해자 이상하게도 슬럼프는 한 번도 없었어요. 살면서 인생의 굴곡은 왜 없었겠어요. 초반에는 먹고 살기도 팍팍해서 카페 알바도 하고, 다른 온라인 게임도 알아보고 다녔죠. 그런데 참 신기한 게, 제가 인형극을 할 팔자였는지 다른 일들은 연결이 잘 안 되더라고요. 도서관 직원 구한다고 해서 면접 가면 "힘을 못 쓰게 생겼다"며 안 되고, 공장에 가보려고 해도 안 됐어요. 그래서 '아, 나는 그냥 인형극을 할 팔자구나' 생각하고, 근근이 알바를 병행하며 지원 사업도 하면서 지금까지 버티고 힘을 붙여온 거예요. 무엇보다 지금까지도 여전히 재미있다는 게 스스로도 신기해요.
이슬기 원주에서 청주로 이주를 하셨어요. 그때 이미 인형극단을 하고 계셨던 거죠?
서해자 네, 원주에서 인형극을 2~3년 하다가 청주로 넘어갔어요. 그때도 혼자였죠. 청주 같은 도시는 그래도 사람이 좀 있어서 단원들을 구할 수 있었는데, 지금 있는 이곳으로 오니까 사람 구하는 게 아예 안 되더라고요.
이슬기 지역에서 활동할 때 사람 구하는 게 정말 큰 어려움인 것 같아요.
서해자 청주에서 몇 년 있다가 가평에 있는 '소나무 출판사'의 자연학교 공동체에 들어갔어요. 아이들에게 자연 교육을 시키는 곳이었는데, 저는 인형극 파트 모둠 교사로 참여했죠. 일주일에 한 번씩 2박 3일 동안 아이들을 만났는데, 전용 공간이 없어서 비닐하우스 같은 데에 장비랑 인형을 있는 대로 다 싸 들고 가서 공연을 했어요. 그렇게 가평에서 지내다가 지금 이 동네로 흘러 들어오게 된 거죠. 원주에서 청주, 청주에서 가평, 그리고 가평에서 이곳까지 참 많이도 다녔네요. 여기가 제 마지막 정착지예요.
이슬기 이곳에는 원래 연고가 있으셨나요?
서해자 전혀 없었어요. 가평 자연학교에서 공동체를 이루려고 땅을 보러 전국으로 다니던 중에 이 동네를 알게 된 거였어요. 그런데 결국 단체 자금이 부족해지면서 공동체 계획은 무산되고 다들 뿔뿔이 흩어졌죠. 저는 이 지역에 살고 싶어서 혼자 버스를 타고 무작정 내려와 면사무소에 가서 빈집이 없냐고 물어봤어요.
이슬기 무작정 오셨으니 집을 구하는 것부터 힘들었을 것 같아요.
서해자 처음에는 빈집을 빌려 살았어요. 23년 전 일인데 그때만 해도 동네 분들 인심이 참 좋아서 무료로 집을 빌려주셨거든요. 그렇게 빌린 집에서 한 5~8년 살다가 이 지역에 제대로 정착하기 위해 지금의 집을 새로 지은 거예요. 제가 정착지를 자주 옮겨 다닐 수 있었던 건 제가 하는 인형극이 완전히 '1인극' 형태였기 때문이에요. 예전에 청주에 있을 때 다른 사람들과 팀을 꾸려서 해보기도 했는데, 마음처럼 잘 따라와 주지 않아서 문제가 생기더라고요. 그래서 '아, 인형극은 나 혼자 할 수 있는 1인극으로 완벽하게 짜야겠다' 결심했죠.
이슬기 그래도 대표님 곁에는 든든한 남편이신 우현 선생님께서 계시잖아요. 선생님께서 제작을 도와주시는 건가요?
서해자 맞아요. 저는 무대 위에서 인형을 놀리고, 우리 남편(우현 선생님)이 뒤에서 음향과 조명을 다 잡아주고 소품을 타이밍 맞춰 집어주는 역할을 해요. 제가 온전히 무대 위에서 혼자 극을 이끌어갈 수 있도록 무대 뒤 시스템과 구성을 완전히 둘이서 쫙 짜버리는 거죠. 참고로 저희 남편은 DJ로 활동하다가, 방송국에서 재즈음악방속을 진행했고, 음향 엔지니어로 일했어요. 남편이 일하는 회사에 공연장이 있었는데 거기서 만났죠. 저를 만나서 인형극의 세계로 같이 오게 된 거죠. (웃음)
이슬기 전북교육청 홈페이지에 보니까 '계북 고사리 인형극단' 소개 페이지가 아예 따로 있더라고요. 전북의 자랑이던데, 보니까 올해로 벌써 22년째더라고요. 연고도 없는 이 지역에 처음 오셔서 어떻게 이렇게 오랜 시간 동안 교육과 연계해 끈기 있게 이어오실 수 있었는지 정말 궁금해요.
서해자 처음에 여기 내려왔을 때, 바로 연결이 됐어요. 당시 초등학교에 계시던 평교사 선생님 한 분이 저를 직접 찾아오셨거든요. 오셔서는 "우리 애들 인형극 좀 가르쳐줘요, 우리 반 애들 다 줄게요!" 하시는 거예요. 그분이 5학년 담임이셨는데, 그렇게 시작된 프로그램이 주민자치센터 프로그램으로 들어가서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안 끊어지고 22년째 이어져 오고 있는 거랍니다.
이슬기 이 시골 마을에서 22년째 인형극 수업을 해오시다니, 조기 교육이 확실히 되네요. 선배들이 해둔 걸 보고 자란 아이들은 마인드부터 다를 것 같습니다.
서해자 맞아요, 달라요. 여기 계북면 아이들은 당연히 '나도 6학년이 되면 인형극을 하는 거구나' 하고 의무처럼 생각하며 자라요. "나는 언제 6학년 되나" 하고 기다리는 귀여운 애들도 많고요. 인형극을 대하는 눈빛이나 만드는 태도부터 확실히 달라요. 바느질이며 소품 만드는 것도 애들이 직접 다 해내거든요. 이 지역과 저희가 깊숙이 연결될 수 있었던 가장 큰 통로가 바로 이 아이들이었어요. 텃세가 있을 수 있는 외지인인데, 아이들이 매개가 되어준 덕분에 외지인 대접을 훨씬 덜 받고 뿌리내릴 수 있었던 거죠. 지금은 다 성인이 된 옛날 제자들이 찾아와서 "학교 다닌 건 생각 안 나도 인형극 했던 추억은 생생하게 남는다"라고 말해줄 때 정말 큰 감동을 받아요.
이슬기 정말 감동적이네요. 하지만 외지인으로서 지역에 정착하고 사람들과 가까워지는 과정이 마냥 꽃길 같지는 않으셨을 텐데, 힘든 점은 없으셨나요?
서해자 왜 없었겠어요, 당연히 어려웠죠. 시골 스타일이라는 게 앞에서 직접 말하기보다는 이 사람 저 사람 거쳐서 뒤로 말이 돌고, 그게 나중에 결국 제 귀로 다 들어오거든요. 저희가 인형극장을 지을 때도 외부인인 저희한테 다 해주는 것 같으니까 질투하시는 분들도 있었고, 우리가 여기서 인형극으로 돈을 엄청 많이 버는 줄 오해하시는 분들도 계셨어요.
이슬기 그런 오해나 질투가 생기면 마음고생이 심하셨을 텐데, 어떻게 버텨내신 건가요?
서해자 우리에게는 든든한 방어막이 되어주신 좋은 분들이 계셨어요. 처음에 저희가 왔을 때 면장님이셨던 분이 계시는데, 그분이 나중에 문화관광과로 가셔서도 저희의 찾아가는 문화 활동 지원 사업 같은 걸 많이 신경 써주시고 도와주셨거든요. 그러고 나서 공직을 퇴임하시고 이 나눔터 인형극장을 지을 때 추진위원장님으로 오셨어요. 그 위원장님이 동네 분들과의 관계도 중간에서 잘 조율해주시고, 오해 같은 게 생기면 든든한 벽이 되어 막아주셨죠. 그뿐만 아니라 현 운영위원장님은, 처음에 아이들을 저희에게 맡기신 선생님이시거든요. 다른 지역에서 선진지 견학을 오면 우리 나눔터 설명을 해주시는데 인형극에 대해서 아주 길게 자랑을 하셔요. "이 팀들 없으면 여기 뭐가 되겠냐, 사람 구해서 운영하려면 한 달에 몇 백씩 줘야 하는데 이렇게 성실하게 지켜주는 게 어디냐"면서 주민들에게 자부심을 심어주고 수긍하게 만들어 주신 거죠. 지금 위원장님도 마찬가지로 저희를 늘 지지해 주시고요.
이슬기 위원장님이 정말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 주셨군요. 부럽기도 하고 참 대단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서해자 우리가 처음 오자마자 그렇게 됐겠어요? 20년이 넘는 세월 동안 묵묵하게 자리를 지키고, 아이들과 성실하게 인형극을 해나가는 모습을 동네 분들과 위원장님이 곁에서 직접 다 봐오셨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던 것 같아요. 요즘 젊은 분들이나 도시에 계시던 예술가들이 시골에 오면 지원 사업비 따서 요란하게 시작을 했다가, 지원이 끊기면 어느 순간 싹 없어지는 경우들이 있어요. 마치 "내가 이 촌구석에 와서 이런 문화 예술을 해준다"는 식으로, 수혜적인 입장으로 생각하는 사람들도 간혹 있고요. 하지만 저희는 그런 마인드나 사업적인 계산 없이, 그냥 조용히, 나서지 않고 주민들 사이에 섞여서 주민처럼 살았어요. 내가 좋아서 사는 거지, 군을 위해서 온 게 아니니까요. 그렇게 묵묵히 제 자리를 지키며 성실하게 해온 것밖에 없는데, 그 세월을 알아봐 주시고 지지해 주시는 좋은 인연들 덕분에 저희가 지금까지 지역에서 살아남아 계속 인형극을 할 수 있는 거랍니다.
이슬기 오늘 공연을 보면서 정말 감탄했어요. 이야기의 영감은 어디서 얻으시나요?
서해자 제가 어렸을 때 워낙 깡시골에서 자랐어요. 오늘 공연 <할머니>에 나온 이야기나 <곱단이> 이야기는 전부 제가 어린 시절에 실제로 겪었던 일들이에요. 극 중에서 쥐덫에 걸리는 장면이 있죠? 그것도 진짜 제 어릴 적 경험담이에요.
이슬기 극에 등장하는 그 손녀 캐릭터가 바로 선생님의 어린 시절이군요.
서해자 맞아요. 쥐덫에 걸리는 손녀를 보면서 저런 멍청한 애가 어딨냐고 사람들이 그러면, "그래 내 얘기다!" 하는 거죠.(웃음) <곱단이>에서 나오는 강아지는 실제로 어릴 때 집에서 키우던 개 이름 '곱단이'에서 따온 거고요. 제 모든 이야기의 원천은 다 제 삶에서 나오는 거예요. <손님>에서는 저승사자와 할머니가 나와서 대사를 주고받는데, 지역 어르신들이 들으시면서 "완전 우리 동네 말투네!" 하셔요. 제가 평소에 지역 할머니들이 말씀하시는 걸 유심히 듣고 사투리와 억양을 수집하거든요. "끄질러 간다" 같은 옛날 표현들을 대본에 녹여내니까, 어르신 관객 분들이 훨씬 더 몰입하고 친근하게 느끼시더라고요. 머릿속에서 그냥 쥐어짜 내서 나오는 가짜 감동이 아니라, 진짜 삶이 묻어있기 때문에 관객 분들이 공감해 주시는 것 같아요.
서해자 요즘 인형극 경향을 보면 개인적으로 안타까운 점이 있었어요. 물론 시대가 변하면서 장르의 경계가 허물어지고 새로운 시도를 하는 건 너무 좋죠. 하지만 연극은 사람이 주인공이 되는 장르잖아요. 그렇다면 적어도 '인형극'만큼은 인형이 온전한 주인공으로 무대에 나왔으면 좋겠어요.
이슬기 공감합니다. 요즘에는 인형을 그저 하나의 소품이나 '오브제'로만 다루는 경향이 강해졌어요. 가끔은 인형보다 배우 본인이 주인공이 되어 드러나는 작품들이 대세가 된 것 같기도 하고요.
서해자 꼭 사람이 드러나야 할까요? 저는 무대 뒤에서 인형만으로 공연을 다 끝내고 마지막에 딱 나와서 인사만 해요. 그런데 신기하게도 관객들이 나중에 길에서 저를 보면 다 기억을 해주십니다. 제가 잘나서가 아니라 그 인형이 워낙 강렬하고 재미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에요. 그럴 때 '역시 인형이 잘했다, 인형이 극을 살려냈구나' 싶어서 충분히 만족스러워요. 저는 그 정도면 충분히 제 존재가 증명되었다고 봐요. 굳이 인형을 제치고 제가 주인공이 될 필요가 없어요. 인형이 살아있고 인형이 무대를 살려내면 되는 겁니다. 특히 손인형극은 굉장히 리드미컬하고 때로는 과격할 정도로 타격감이 있어요. 처음에는 관객들이 그 폭력성에 어색해하기도 하지만, 그게 손인형극 고유의 엄청난 매력이에요.
이슬기 저희도 인형이 주인공인 극을 하고 싶어서 공감이 많이 가요. 하지만 트렌드를 안 따라가면 뒤처지는 게 아닐까 고민될 때도 있거든요.
서해자 저는 전혀 안 꿀려요. (웃음) 사람들이 트렌드를 안 따라가면 처진다고 생각하는 모양인데, 저는 손인형이라는 이 장르 하나만 가지고도 너무너무 충분해요. 다 표현을 못 해서 탈이죠.
이슬기 맞아요. 사람이 무대 위에서 폭력을 쓰면 트라우마가 되고 끔찍하게 느껴지지만, 손인형이 도둑을 탁탁 때리는 개그 요소는 폭력성이 완전히 반감되면서 카타르시스와 순수한 재미를 주거든요. 요즘 시대에 교육적 검열 때문에 조심스러운 부분들을 유쾌하게 돌파할 수 있는 장르가 바로 손인형극인 것 같아요.
서해자 정확해요. 손인형은 아주 매력적이고 장점이 많은 장르입니다. 저는 앞으로도 인형 본연의 매력을 살리는 진짜 인형극을 묵묵히 이어 나가고 싶어요. 인형극의 매력과 맛은 이 인형 자체에 충분히 들어있으니까요.
이슬기 오늘 공연을 보면서 정말 기절할 정도로 웃다가 마지막엔 눈물이 핑 돌았어요. 대사 없이 할머니 인형이 손녀를 보내고 뒤돌아 들어가는 뒷모습에서 그 먹먹한 여운의 감정이 그대로 느껴지더라고요.
서해자 그게 바로 인형이 가진 힘이에요. 인형의 움직임은 사람을 똑같이 모방하는 게 아니에요. 사람 흉내를 내는 정도의 인형만의 독특한 맛과 호흡이 있거든요. 시선 처리 하나, 움직임 하나를 미세하게 조절하면서 그 맛을 살려내는 거죠. 손인형은 표현할 수 있는 게 정말 무궁무진해요.
이슬기 아까 선생님께서 말씀하신, 인형극 작업에 슬럼프가 없었다는 게 인상적이에요.
서해자 신기한 일이죠. 슬럼프가 없었어요. IMF고 뭐고 눈에 안 보였거든요. 그냥 인형을 만들고 움직이는 게 너무 재미있어서 완전히 빠져 있었죠. '하다가 재미없으면 어떡하지?' 걱정도 했는데, 30년이 조금 넘은 지금까지도 그냥 계속 재밌어요.
이슬기 '평생 질리지 않는 일'이라고 말씀하시는 게 정말 대단해 보여요. 선생님께 인형극은 어떤 의미인가요?
서해자 정말로 질리지가 않아요. 만족도로 치면 '세상에 이렇게 재미있는 게 또 있나' 할 정도예요. 인형극은 대본도 써야 하고, 인형도 만들어야 하잖아요. 일종의 '창조'이자 종합 예술이에요. 단순하지 않고 어려우니까 파고들수록 더 재미가 있어요.
이슬기 마지막으로 저희 같은 인형극 후배들에게 조언해주고 싶으신 말씀이 있다면 한마디 부탁드립니다.
서해자 특별한 건 없고, 너무 오르락내리락하지 말고 자기 자리에서 꾸준히 하는 것. 내가 좋아서 선택한 길이니까 지원 사업이나 주변 환경에 너무 휩쓸리지 말고 묵묵하게 해나갔으면 좋겠어요. 저도 쓰러지기 직전까지, 머리가 하얘진 80세 할머니가 되어서도 무대 위에서 인형극을 계속하고 싶어요.
인형극단 누렁소
대표 / 연출 / 배우
[주요활동]
1997년 인형극단 누렁소 창단
2005년~현재 계북면주민자치센터 초등 6학년 대상 인형극 동아리 지도
2022년~현재 장수꼭두인형극제 운영
2024년~현재 계북인형극장 꼭두 개관
[대표작]
곱단이
할머니
머리어깨무릎발
엄마마중
푸른 용을 찾아서
콩깍지
바리데기
손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