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물을 떠난 뒤에도 일은 계속된다

온라인 게임에서 만난 괴물들 시즌 3 1화

by초연

괴물을 떠난 뒤
세상이 바로 달라질 거라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적어도
숨은 좀 쉬어질 줄 알았다.

처음 며칠은
이상할 정도로 조용했다.
누군가의 눈치를 보지 않아도 됐고,
말을 고르느라 시간을 쓰지 않아도 됐다.

그런데 그다음에 온 건

해방감이 아니라
공백이었다.


괴물을 떠나면
자유가 올 것 같지만,
실제로는 질문이 먼저 온다.

이제 나는 어떤 기준으로 일하지?
무엇을 참고, 무엇을 멈춰야 하지?
다시 망가지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지?

괴물은 사라졌지만
일은 그대로 남아 있었다.

메일은 여전히 오고,
회의는 계속 열리고,
성과는 여전히 요구됐다.

달라진 건
누군가를 기준으로 하지 않게 됐다는 것뿐이었다.


처음엔
작은 것부터 헷갈렸다.

회의에서
누군가 말이 길어질 때
예전 같았으면
‘이제 곧 자르겠지’ 하고 긴장했을 순간에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그 침묵이
편안하기보다는
낯설었다.

이래도 되는 건가?
지금 끼어들지 않으면 무능해 보이지 않을까?

괴물이 남긴 건
상처만이 아니라
습관이었다.


나는 몇 번이나
스스로를 점검했다.

이건 정말 문제가 있는 상황인가,
아니면 내가 과민하게 반응하는 건가.

예전에는
이 질문이 나를 묶어두었지만,
지금은
나를 멈추게 했다.

바로 반응하지 않고,
바로 수락하지 않고,
바로 판단하지 않았다.

괴물을 떠난 뒤
내가 가장 먼저 배운 건
속도를 늦추는 법이었다.


일은 여전히 어렵다.

사람은 여전히 복잡하고,
조직은 여전히 불완전하다.

괴물이 없다고 해서
모든 사람이 친절해지는 것도 아니고,
모든 결정이 합리적이 되는 것도 아니다.

다만
예전과 다른 점이 하나 있다.

이제 나는
무너지는 쪽이 아니라
판단하는 쪽에 서 있다는 것.


괴물을 떠난 뒤에도
일은 계속된다.

하지만 더 이상
일이 나를 설명하지는 않는다.

나는
일을 하면서도
나를 잃지 않기 시작했다.

이건 대단한 변화가 아니다.
눈에 띄는 성공도 아니다.

그저
하루를 마치고 집에 돌아왔을 때
“오늘은 나를 조금 덜 소모했다”
라고 말할 수 있는 정도의 변화다.


시즌 1에서
나는 무너졌다.

시즌 2에서
나는 알아봤다.

시즌 3에서
나는 다르게 살아보려 한다.

완벽하게는 아니더라도,
적어도
다시는 예전으로 돌아가지 않기 위해.

괴물을 떠난 뒤에도
일은 계속된다. 그리고
이제부터는
그 일 속에서
어떻게 서 있을지를
하나씩 써 내려가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