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는 살아 있다

에르타 알레 화산

by양정회

에티오피아 다나킬 투어 첫째 날.

2박 3일 여정을 위한 짐을 꾸렸다. 큰 캐리어는 여행사에 맡기고 배낭 하나만 챙겼다. 이번 여행에서 가장 힘든 코스라 했다.

걱정 반, 기대 반으로 출발했다.


메켈레에 도착해 현지 가이드를 만났다. 사륜구동 지프차에 네 명씩 나누어 타고 비포장도로를 달리기 시작했다. 뒤따라가는 차는 뿌연 먼지를 통째로 뒤집어썼다. 길은 생각보다 훨씬 거칠었다. 차가 심하게 흔들릴 때마다 스마트폰 걸음 수가 쑥쑥 올라갔다. 별로 걷지도 않았는데 벌써 8,000보가 넘었다.


이동하다가 두어 시간마다 차를 세웠다. 화장실에 가기 위해서였다.


“도로를 중심으로 오른쪽은 여자, 왼쪽은 남자 화장실입니다.”


우리 드라이버가 말했다. 따로 마련된 화장실은 없었다. 그야말로 자연 속 화장실이었다. 처음에는 어색하고 ‘뭐 이런 데가 다 있어’ 하고 구시렁거렸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고 계속하다 보니 아무렇지도 않았다. 바위나 작은 덤불 뒤에 몸을 숨기는 일도 자연스러워졌다.


차창 밖으로 펼쳐지는 풍경은 낯설었다. 황량한 산과 들판, 나뭇가지로 대충 엮어 만든 움막집들. 가끔 보이는 사람들도, 당나귀와 소, 염소와 같은 가축들도 삐쩍 말랐다.


그동안 많은 나라를 여행했지만, 이렇게 마음이 무거웠던 적은 처음이었다.


하루 종일 달려 오후 다섯 시쯤 도담(Dodom) 캠핑장에 도착했다. 물과 랜턴, 마스크를 챙겨서 화산활동을 보기 위해 가이드와 함께 에르타 알레 분화구로 향했다. 그 사이 요리사는 저녁 준비를 한다고 했다.


마침 서쪽 하늘이 발갛게 물들고 있었다. 분화구로 올라가는 길은 마치 다른 행성의 표면 같았다. 검고 진회색의 울퉁불퉁한 돌길을 조심조심 걸었다. 지독한 유황 가스 때문에 눈물과 콧물이 줄줄 흘렀다. 마스크를 써도 소용이 없었다. 분화구에 가까워질수록 목은 따끔거리고 유황 냄새는 더 심해졌다.


분화구에서 뿌연 연기가 자욱하게 올라오고 있었다. 연기 사이로 붉은 용암이 조금씩 보였다. 벌겋게 끓어오르는 모습이 기대했던 만큼 아니어서 조금 아쉬웠다.

하지만 내 발아래 깊은 곳에서 들려오는 소리는 달랐다.


'꿀렁꿀렁'

'부글부글'


마치 거대한 파도가 땅속에서 움직이는 듯했다. 무섭기도 하고 한편으로 신기하기도 했다.

그 순간, 지구가 내게 말을 거는 것 같았다.


"나 살아 있어!" 하고 외치는 것 같았다.


학교 지리 시간에 배웠던 화산 지형, 뉴스에서 보았던 화산 폭발 장면들이 떠올랐다.

"우리는 지금 지구의 심장 소리를 듣고 있어."

누군가가 말했다.


그 웅장한 울림은 오래도록 가슴에 남았다.


랜턴 불빛에 의지해 다시 캠핑장으로 내려왔다. 캠핑장에는 전기도, 수도시설도, 화장실도 없다. 손전등과 랜턴, 생수는 필수였다.

우리의 숙소는 평평한 땅바닥 위. 팀별로 두툼한 매트리스를 깔아주면 그 위에 각자의 침낭을 펼쳤다.


하늘과 수많은 별이 지붕이 되고 이불이 되었다. 낮에는 숨이 막힐 정도로 더웠지만, 밤에는 시원하고 공기도 맑았다. 이슬도 내리지 않았다. 그 순간만큼은 5성급 호텔도 부럽지 않았다. 여기 오기 전까지 걱정을 많이 했었다. 완전히 낯선 리얼 야생이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지나고 보니, 평생 한 번 뿐일지도 모를 귀한 경험이었고 잊지 못할 순간이었다. 때로는 익숙한 곳을 벗어나야만 만날 수 있는 풍경이 있다는 것을. 그리고 길 위에서 나는 또 하나의 삶을 배웠다.

금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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