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가을 가장 보고 싶은 사람
부모님이 돌아가신 지 벌써 삼십 년이 다 되어간다. 세월이 많이 흘렀는데도 두 분을 생각하면 아직 가슴 한쪽이 아려온다.
부모님은 같은 해에 하늘나라로 가셨다. 두 분은 동갑내기셨다. 엄마가 먼저 떠나고 8개월 뒤 아버지도 뒤따라가셨다.
아버지는 어느 날 뇌출혈로 쓰러지셨다. 수술을 받았지만 끝내 의식을 찾지 못했다. 식물인간 상태로 2년 3개월을 힘겹게 버티셨다.
평소 간이 좋지 않았던 엄마는 아버지의 병간호를 하며 심한 스트레스를 받았다. 평생 아버지만 의지하고 살아오신 분이었다. 남편이 하루아침에 의식을 잃었으니 엄마에게는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았을 것이다.
결국 아버지를 간호하던 엄마마저 병원에 입원하셨다. 그렇게 아버지는 6층, 엄마는 7층. 같은 병원에서 한 층을 사이에 두고 두 분이 누워 계셨다.
간병인을 쓰기도 했지만 우리 4남매는 번갈아 부모님 곁을 지켰다. 그때 내 나이 서른여섯, 동생들은 이십 대였다. 지금 생각하면 참 어린 나이였다. 세상 물정도 몰랐고 무엇을 어떻게 감당해야 하는지도 몰랐다.
엄마의 상여가 나가기 전날 밤이었다. 큰엄마가 내게 조용히 말했다.
"엄마 얼굴 실컷 봐라. 이제 보고 싶어도 못 본다."
그때는 그 말의 의미를 온전히 알지 못했다. 어른들이 시키는 대로 했다. 곡을 하라 하면 울고, 절을 하라 하면 엎드려 절을 했다. 장례를 치르는 일이 무엇인지, 부모님과의 이별이 어떤 의미인지 제대로 알지 못한 채 그렇게 시간을 보냈다.
사실 나는 부모님 간병하면서 너무 많이 울었다. 속상해서 울고 가여워서 울었다. 병원에 다녀오면 또 울었다. 그래서인지 막상 부모님이 돌아가셨을 때는 눈물이 잘 나오지 않았다.
동네 사람들이 하는 말이 들렸다.
"세상에 이런 일이 또 있을까. 이제 나올 눈물도 없을끼다."
정말 그랬는지도 모른다.
그때 이미 눈물이 말라 있었을지도.
어느 날 정신을 차리고 보니 모든 것이 끝나 있었다. 부모님은 떠나셨고, 장례도 끝났고 병원에 오가던 일도 사라졌다. 갑자기 세상에 부모님이 계시지 않았다.
그때는 남편도 사업을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아 경제적으로나 시간적으로 여유가 없었다. 남편은 지금도 가끔 말한다.
부모님께 사업 잘 되는 모습 못 보여드려서 죄송하다고. 그 말을 들을 때마다 마음이 먹먹해졌다. 사위가 사업 성공한 모습을 보셨다면 얼마나 좋아하셨을까.
세월이 흘러 나도 어느덧 부모님이 돌아가셨던 나이를 훌쩍 넘어섰다. 이제야 조금 알 것 같다. 그때 부모님이 얼마나 젊으셨는지, 그리고 나도 동생들도 얼마나 어렸는지.
부모님을 생각하며 글을 쓰는 지금, 양볼 위로 눈물이 흘러내린다. 콧물을 훌쩍이며 한참을 앉아 있다.
삼십 년 가까운 시간이 흘렀는데도 보고 싶은 마음은 그대로다.
엄마, 아버지 잘 계시죠?
그곳에서는 두 분 손 꼭 잡고 동네 마실도 다니시나요? 건강하게 잘 지내시죠?
저희들도 잘 지내고 있습니다. 각자의 자리에서 건강하게 살아가고 있어요.
너무 걱정 마세요. 그리고 가끔 저희도 한 번씩 내려다봐 주세요.
엄마, 아버지. 많이 보고 싶습니다.
사랑합니다. 또 소식 전하겠습니다.
오늘 부모님께 전화 한 통, 사랑한다는 말 한마디를 건네보시면 어떨까요. 그 시간이 오래 기억될지도 모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