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을 만나다
어릴 적 우리 집에는 큰 암소 한 마리가 있었다. 소를 먹이러 가는 일은 내 몫이었다. 여름방학이면 점심을 먹자마자 동네 아이들이 하나둘 소를 몰고 나왔다. 소를 앞세워 들판을 지나 냇물을 건너 야산으로 향했다. 소를 먹이러 가는 일은 하루의 일과이자 친구들과 마음껏 뛰어놀 수 있는 시간이기도 했다.
어느 날 리더 오빠가 말했다.
“내일 알감자 일곱 개씩 가져와.”
다음 날 우리는 각자 소를 몰고 야산에 도착했다. 1970년대 우리 동네 산은 큰 나무는 거의 없고 민둥산이 많았다. 우리는 소를 풀어놓고 평평하면서 황토가 많은 곳에 자리를 잡았다. 그리고 가져온 알감자를 한 곳에 모았다.
리더 오빠가 우리에게 역할을 정해 주었다. 구덩이 파는 사람, 마른 나뭇가지 주워 오는 사람, 작은 돌멩이 주워 오는 사람, 불 지피는 사람. 나는 마른 나뭇가지를 주워 오는 담당이었다. 이리저리 뛰어다니며 마른 나뭇가지를 한 아름 주워 모았다.
먼저 평평한 황토 바닥에 구덩이를 팠다. 깊고 넓은 양푼 모양의 구덩이가 만들어졌다. 그 위에 굵은 나뭇가지를 걸치고 큰 돌부터 차곡차곡 쌓았다. 잔잔한 돌멩이도 고루 쌓아 마치 커다란 바가지를 엎어놓은 모양 같았다. 그다음 아래 아궁이로 불을 지폈다.
불길이 점점 세지고 돌이 벌겋게 달아올랐다.
“지금이다!”
리더 오빠가 긴 막대기로 돌무더기를 무너뜨렸다. 불에 달아오른 돌이 구덩이 안으로 떨어졌다. 그 모습이 마치 작은 화산이 폭발한 모양 같았다.
우리는 그 구덩이에 알감자를 모두 넣었다. 그리고 그 위에 황토로 덮었다. 열기가 빠져나가지 않도록 손으로 꾹꾹 눌러가며 흙을 다졌다.
마지막으로 굵고 긴 억새 줄기 하나를 꺾어 감자 산 한가운데에 꽂았다.
이제는 기다리는 일만 남았다. 감자가 익기를 기다리는 동안 우리는 숨바꼭질하고 풀밭에 뒹굴며 놀았다. 소들은 가까운 곳에서 풀을 뜯었고, 우리는 시간 가는 줄 몰랐다.
어느새 꽂아 두었던 억새 줄기가 타올라 옆으로 툭 넘어졌다. 바로 감자가 익었다는 신호다.
“감자가 익었다!”
우리는 약속이나 한 듯 우르르 달려갔다. 흙을 걷어내자 뜨거운 김과 함께 구수한 냄새가 올라왔다. 노릇노릇 쪼글쪼글해진 감자 껍질을 보는 순간 입안에 침이 고였다. 뜨거운 감자를 손에 올려놓고 호호 불어가며 껍질을 벗겼다. 그리고 한입 베어 물었다. 그때의 구운 감자의 맛은 세상 어느 음식과도 비교할 수 없었다.
지금도 여름이라는 말을 들으면 그날의 풍경이 떠오를 때가 있다. 황토 흙냄새, 마른풀과 나뭇가지 타는 냄새, 그리고 코끝을 간질이던 구운 감자의 고소한 냄새까지.
내가 기억하는 여름의 냄새는 특별한 향기가 아니라 친구들과 함께 놀았던 그 시간의 냄새인지도 모른다.
여러분의 여름에는 코끝에 남아 있는 어떤 냄새가 있나요? 그 냄새를 따라가 보면 잊고 있던 어린 날의 한 장면을 만날지도 모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