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진 것들은 왜 가장 선명하게 남는가
사라진다는 것은 반드시 없어지는 일이 아니다. 어떤 것들은 모습을 잃는 순간부터 우리의 내부에서 다른 형태로 살아가기 시작한다. 오래된 집이 철거된 자리에는 새로운 건물이 들어서지만, 그곳을 지나던 사람의 걸음은 한동안 이전의 문 앞에서 느려진다. 문은 없고, 손잡이도 없으며, 저녁마다 창문을 물들이던 빛조차 돌아오지 않는데, 몸은 여전히 그곳에 누군가의 생활이 있었다는 사실을 기억한다. 기억은 사물보다 오래 살아남는 감각이어서, 아무것도 남지 않은 장소에 가장 많은 것을 남겨 놓는다.
나는 상실에도 색이 있다고 생각한다. 처음에는 붉다. 갑작스럽게 끊어진 관계와 미처 끝맺지 못한 말들, 더는 돌이킬 수 없다는 사실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마음은 피가 식기 전의 온도를 닮아 있다. 시간이 흐르면 그 붉음은 갈색으로 가라앉는다. 오래 만진 나무의 표면처럼 윤기가 사라지고, 손끝에 묻어나던 열도 차츰 희미해진다. 어떤 상실은 푸른색으로 남아 오랫동안 가슴 안쪽을 서늘하게 만들고, 어떤 상실은 검은색이 되어 다른 모든 색의 배후에 웅크린다. 그러다가 어느 날, 우리는 그것이 투명해졌다고 생각한다.
투명하다는 것은 보이지 않는다는 뜻과 다르다. 유리는 분명 그 자리에 있지만, 우리는 그것을 통과해 저편의 풍경을 바라본다. 빛은 유리를 지나가고, 사물은 제 모습을 유지하며, 세계는 아무런 방해도 받지 않은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유리의 표면에 손을 대면 차가움이 전해진다. 거기에는 분명한 경계가 있다. 다만 그 경계는 눈에 잘 띄지 않을 뿐이다.
상실도 그렇다. 우리는 그것을 극복했다고 말하고, 이제 괜찮다고 대답하며, 오래전의 일이라고 덧붙인다. 다른 사람들은 우리의 대답을 믿는다. 출근 시간에 맞춰 집을 나서고, 약속 장소에 도착하고, 계절에 맞는 옷을 고르는 사람에게 아직도 무언가가 무너져 있다고 생각하기는 어렵다. 슬픔은 언제나 얼굴을 하고 나타나지 않는다. 때로는 아무렇지도 않은 얼굴로 하루를 통과한다. 가장 깊은 상처가 가장 조용한 생활 속에 감춰져 있다는 사실을 사람들은 쉽게 알아보지 못한다.
어느 날 문득, 마트의 과일 진열대 앞에서 걸음을 멈춘 적이 있다. 붉은 사과들이 일정한 간격으로 놓여 있었고, 표면에는 천장의 조명이 작은 흰 점으로 맺혀 있었다. 사과 하나를 집어 들자 손바닥에 묵직한 감각이 전해졌다. 나는 그것을 고르려던 것이 아니었다. 다만 오래전 누군가가 사과를 고르던 모습을 떠올렸을 뿐이다. 그 사람은 언제나 표면에 작은 흠집이 있는 것을 골랐다. 흠집이 있다는 이유로 다른 사람들이 지나친 과일을 뒤집어 보고, 손톱으로 가볍게 눌러 본 뒤, 아무렇지도 않게 장바구니에 넣었다. 나는 그때 그런 선택에 특별한 의미가 있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세상에는 더 크고, 더 붉고, 더 완전한 사과들이 얼마든지 있었으므로.
그 사람이 떠난 뒤에도 사과는 계속 팔렸다. 계절마다 새로운 과일이 들어왔고, 진열대의 조명은 바뀌지 않았다. 나는 여러 번 그곳을 지나갔지만 그 장면을 떠올리지 않았다. 적어도 떠올리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그러다가 어느 날, 흠집이 있는 사과 하나를 손에 들고서야 알았다. 기억은 반드시 과거를 향해 돌아가는 방식으로 작동하지 않는다는 것을. 때로는 현재의 사물 속에 숨어 있다가, 우리가 아무런 준비도 하지 않은 순간에 모습을 드러낸다는 것을.
나는 사과를 제자리에 내려놓았다.
그날 내가 잃어버린 것은 그 사람만이 아니었다. 그 사람과 함께 사물을 바라보던 방식, 흠집을 결함으로 여기지 않던 시선, 완전하지 않은 것에도 손을 내밀 수 있었던 마음의 습관까지 함께 사라졌다는 사실을 알았다. 한 사람을 잃는다는 것은 그 사람의 얼굴 하나를 잃는 일이 아니다. 그 사람과 함께 있을 때만 가능했던 자신의 일부를 잃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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