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서지는 것들 사이에서, 끝내 온기를 믿는 일
빛이 닿기도 전에 이미 부서진 그늘의 가장자리를 만진다.
시간은 조용히 모래의 집을 짓고 우리는 목소리를 잃은 기화(氣化)의 계절에서 숨을 참은 채 서로의 눈동자를 건너간다.
이것은 스치는 것인가, 깊어지는 것인가.
손끝에 남아 있는 잔향(殘香)은 언제나 가버린 것들의 이름을 하고 있어 나는 비어 있는 공중에 긴 궤적을 그린다.
어둠이 촛불의 떨림을 품어 안듯 아픔은 아름다움의 형상을 얻고, 스스로 무너지는 것들의 기꺼운 순응 속에서 세계는 절정의 순간을 조용히 고백한다. 찰나와 영원 사이, 닿지 못하여 넘쳐나는 그 아득함 우리가 서로를 어루만지던 모든 떨림은 지구가 우주에 남긴 가장 슬프고 투명한 지문은 도대체 어디에 새겨지는 것일까.
사람이란,
어둠 속에서 켜진 작은 촛불 하나에도
눈가를 적실 줄 아는 부드러운 살의 감촉.
흩어지는 연기처럼 흘러가는 시간 속에서
서로의 서툰 온기를 찾아 손을 건네고,
부서질 것을 알면서도
온 마음을 다해 아껴 쓸 줄 아는 그 유약함.
상처받은 자리에 끝내 새로운 살이 차오르듯
슬픔을 통과한 얼굴 위에 고이는 잔잔한 미소와,
말하지 않은 문장 사이로
고요히 흐르는 깊은 다정.
스스로 닳아가며 타인을 밝히는 그 무모함이야말로
어쩌면 지상에서 가장 아득하고 눈부신 빛.
완벽해서 아름다운 것이 아니라
금이 간 틈새로 따스한 숨을 나누기에,
사람은 이 아득한 우주가 품은
가장 아름다운 감각.
정말 그것을 아름다운 감각이라고 말할 수 있는 세상일까.
상처받은 날의 서글픈 고백처럼, 우리가 눈감아 버린 어둠 속에는 차마 손닿지 못한 수많은 비명이 아직 흩어져 있는데. 매일같이 무너지는 이름들, 스스로를 태워야만 겨우 견뎌지는 차가운 방, 서로의 슬픔을 미처 보듬지 못하고 돌아서는 등 뒤로 떨어진 무심한 차가움.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타인의 눈물 앞에서 끝내 마음이 스러지는 그 떨림을 견디기 힘들다는 사실.
비바람에 꺾인 작은 꽃잎 하나를 차마 밟지 못해 발걸음을 멈춰 서는 그 서툰 망설임.
세상은 이미 흉터로 가득 찬 살갗 같지만, 그 아픈 틈새마다 지지 않고 피어나는 온기가 있다면. 차마 포기할 수 없어 서로를 향해 다시 내미는 그 가냘프고 무모한 손길이야말로, 이 참혹한 계절을 통과하게 하는
우리의 가장 서글프고 아름다운 감각이 아닐까.
이 작가의 멤버십 구독자 전용 콘텐츠입니다.
작가의 명시적 동의 없이 저작물을 공유, 게재 시 법적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