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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서 가장 힘든 일

무너진 마음의 폐허에서 다시 나를 세우는 일

by구시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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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눈에 보이는 거대한 과업을 두고 ‘세상에서 가장 힘든 일’이라 말하곤 한다. 메마른 땅에 수로를 내는 일, 가파른 절벽을 오르는 일, 혹은 무너진 도시 위에 다시 돌을 쌓아 올리는 일 같은 것들 말이다. 하지만 그것들은 모두 시간과 노동이 보답을 주는 영역에 속해 있다. 흘린 땀방울만큼 흙은 파헤쳐지고, 걸음을 옮긴 만큼 고도는 높아지며, 벽돌을 얹는 만큼 건물의 윤곽은 드러나기 때문이다.


진정으로 세상에서 가장 힘든 일은, 아무리 손을 움직여도 거꾸로 흘러가는 작업, 바로 한 사람을 내 안에서 지워내는 일이다.


사람을 잊는 일은 건축이 아니라 정반대의 형태를 띤 거꾸로 된 노역이다. 그것은 내 안에 들어와 세워진 견고한 도시 하나를 손가락 끝으로 하나씩 허물어뜨리는 과정이다. 무너뜨려야 하는 것은 단순한 이름이나 얼굴의 윤곽이 아니다. 함께 걸었던 길 위에 떨어진 햇살의 각도, 특정한 계절이 올 때마다 허파 깊숙이 파고들던 공기의 냄새, 그리고 상대의 눈동자에 반사되어 비쳤던 ‘가장 찬란했던 시절의 나 자신’이다.


그 숭고한 흔적을 품은 채 산다는 것은, 매일 아침 눈을 뜨며 또 한 번 나 자신과 타협하는 일이다. 지우지 못한 기억을 억지로 덮지 않고, 흉터처럼 몸에 지닌 채 일상을 이어나가는 일. 마주 오는 바람 속에 그 흔적이 흩날리더라도 더 이상 흔들리는 척하지 않는 법을 터득하는 일이다.


시간은 흐르고, 언젠가 그 이름이 가져다주는 통증도 마모될 것이다. 날카로웠던 모서리가 둥글게 깎여 나가듯, 가슴을 찌르던 서러움은 덤덤한 아쉬움으로 바뀔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것은 잊어버렸기 때문이 아니다. 소멸해서 사라진 것이 아니라, 마침내 내 삶의 일부로 화해하고 받아들였기 때문이다.


그러니 사람을 잊지 못해 서성이더라도 자바카라할 필요는 없다. 내 안의 견고했던 도시를 허물고 그 자리를 거대한 공백으로 남겨두는 것은 패배가 아니다. 그것은 누군가를 온 마음으로 받아들였던 자만이 치러낼 수 있는, 세상에서 가장 아프고도 깊은 성찰의 증거다.


시간이 더 흐른 뒤, 어느 날 불현듯 그 길을 다시 지나게 될 때가 올 것이다. 그때 비로소 깨달을지도 모른다. 잊고자 애썼던 그 가혹한 노역 덕분에, 내 마음의 지평선은 이전보다 훨씬 더 넓어져 있었다는 것을.


사람을 잊는 일은 그렇게 나 자신을 새로이 완성해 나가는, 세상에서 가장 외롭고도 힘든 유일한 길이다.


마음에서 가장 순수한 화살을 꺼내 쏜 이를 잊는 다는 것은 세상에서 가장 힘든 일이다.

완성된 삶이란 수많은 만남의 축적이 아니라, 수많은 이별의 공백을 지탱해 낸 무게로 결정된다. 텅 빈 자리를 안고도 계속 걸어가는 발걸음에는 설명할 수 없는 단단함이 쌓인다. 그리하여 언젠가 새로운 사람을 마음속에 들이게 될 때, 우리는 비로소 알게 된다. 그 단단해진 공백이 바로 누군가를 다시 품어낼 수 있는 온전한 깊이가 되어 주었다는 사실을.


바람이 불어와 눈가를 스치면, 이제는 아픔 대신 아련한 온기가 먼저 머문다. 지워지지 않은 기억은 더 이상 나를 갉아먹는 칼날이 아니라, 내가 지나온 가장 따뜻했던 계절의 이정표로 남아 빛난다.


결국 한 사람을 잊어가는 가혹한 여정 끝에서 우리가 마주하는 것은 그 사람이 아닌, 마침내 그 상처마저 끌어안은 조금 더 깊어진 나 자신이다. 세상에서 가장 힘든 일의 끝자락에는, 그렇게 가만히 미소 짓고 있는 삶의 숭고한 구원이 기다리고 있다.


그 구원은 결코 찬란한 환희의 모습으로 찾아오지 않는다. 그것은 길가에 켜진 작은 가로등 불빛처럼, 혹은 오래된 바카라장 사이에서 바스러진 말린 꽃잎처럼 조용히 눈앞에 내려앉는다. 더 이상 그 이름에 심장이 가쁘게 뛰지 않고, 함께 걷던 거리에서 멈춰 서지 않게 되는 순간. 우리는 어쩌면 서러울 만큼 무덤덤해진 스스로의 변화에 찰나의 아득함을 느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것은 변절이 아니라 치유다. 그 사람을 잊었기 때문이 아니라, 그 사람 없이도 내가 다시 하나의 온전한 세계로 작동하기 시작했다는 서글프고도 명확한 신호다.


우리는 모두 서로의 삶에 잠시 머물다 떠나가는 이방인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지우려 애썼던 모든 밤과, 마음에 새겨졌던 음각의 흉터들은 결국 나라는 인간의 지도를 더욱 입체적이고 아름답게 그려내기 위한 정교한 수식이었을 뿐이다.


바람이 차가워지는 계절이 오면, 나는 이제 마음속 깊은 곳에 남은 그 거대한 공백을 가만히 쓸어내려 본다. 한때 그곳은 아물지 않는 분화구였으나, 이제는 깊은 호수가 되어 밤하늘의 별을 담담히 비추고 있다.

세상에서 가장 힘든 일을 마친 자만이 가질 수 있는 평온. 그것이 바로 한 사람을 마침내 떠나보낸 나에게 세상이 내어주는 가장 조용하고 깊은 안식이다.


한편으로 생각해 보면, 우리는 얼마나 잔인한 관계를 맺으며 살아가는지를 느끼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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