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완성되지 않은 시간의 색
초록이라고 부르기에는 너무 깊고, 파랑이라고 부르기에는 아직 생의 온기를 버리지 못한 색이 있다.
Viridian.
그 색은 언제나 경계에 머문다. 숲이 가장 오래된 침묵을 품었을 때의 빛, 비가 지나간 뒤 돌 틈에 고인 물의 깊이, 아무도 이름 붙이지 않은 바다의 안쪽. 초록과 파랑 사이, 서로의 영역을 침범하지 않으면서도 끝내 하나의 색으로 남아 있는 그 미세한 간극을 나는 오래 바라본다.
사람의 마음에도 그런 색이 있을까.
기쁨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많은 슬픔을 지나왔고, 슬픔이라고 하기에는 아직 꺼지지 않은 빛을 품고 있는 마음. 괜찮다고 말하면서도 어딘가에서는 계속 무너지고 있는 사람. 떠났다고 생각했지만 몸의 어느 부분은 여전히 지나온 계절의 문턱에 서 있는 사람. 삶은 어쩌면 그런 중간의 색으로 오래 지속되는 것인지도 모른다.
우리는 모든 것을 분명하게 나누려고 한다.
좋음과 나쁨, 시작과 끝, 만남과 이별, 살아 있음과 죽어 있음. 이름을 붙이는 순간 세계가 이해될 것이라고 믿으면서, 이름과 이름 사이에 흘러다니는 수많은 감정은 설명하지 못한 채 남겨둔다.
그러나 가장 오래 남는 것은 대개 이름 붙일 수 없는 것들이다.
사랑이 끝난 뒤에도 사랑이었던 시간은 사라지지 않는다. 누군가를 미워하면서도 그 사람에게서 배운 말투 하나를 평생 버리지 못할 때가 있다. 떠난 장소를 잊었다고 생각하면서도 어느 날 낯선 골목에서 비슷한 냄새를 맡으면 오래전의 오후가 아무런 예고 없이 돌아온다. 끝났다는 것은 없어졌다는 뜻이 아니라, 더 이상 현재의 이름으로 부를 수 없다는 뜻인지도 모른다.
그래서 나는 Viridian을 좋아한다.
이 색에는 완결되지 않은 시간이 들어 있다.
초록은 생명의 색이고 파랑은 멀어짐의 색이라고 한다면, 그 둘 사이에 놓인 Viridian은 살아 있으면서 동시에 멀어지는 것들의 색이다. 자라면서 사라지고, 붙잡으면서 놓아주는 것들. 한때는 선명했던 것이 시간 속에서 조금씩 깊어지는 과정. 젊음이 늙음으로 넘어가는 동안 생기는 그늘과, 상처가 흉터가 되어가는 동안 피부 아래 남는 미세한 빛.
색은 어쩌면 시간의 다른 이름인지도 모른다.
처음의 색은 언제나 선명하다. 새로 칠한 벽처럼, 처음 만난 사람의 눈처럼, 아직 아무것도 잃지 않은 계절처럼.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 색은 조금씩 변한다. 햇빛을 받고, 비를 맞고, 손에 닿고, 먼지를 뒤집어쓰면서 처음의 색에서 멀어진다. 우리는 그것을 바램이라고 부르지만, 어쩌면 색이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깊어지는 것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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