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돌보는 시간, 검은콩 요거트

느리고 다정한 시간이 주는 위로

by진정


메마른 껍질 속에 숨겨두었던 둥글고 고소한 위로. 맑은 물에 푹 끓여낸 까만 콩과 보이지 않는 유익균, 그리고 포근한 이불의 온기가 만나 완성되는 이 두유 요거트는 내 안의 가장 깊고 은밀한 곳을 조용히 다독이는 한 그릇입니다


단단하게 웅크린 마음을 펴는 검은콩


단단하고 까만 콩을 깊은 볼에 담아 맑은 물을 넉넉히 붓습니다. 메말랐던 콩이 수분을 흠뻑 머금고 통통하게 부풀어 오르는 걸 가만히 지켜보는 일은, 그 자체로 묘한 위안을 줍니다. 긴장감 속에 바짝 웅크리고 있던 내 마음도, 시간의 기다림 속에서 비로소 편안하게 몸을 펴는 기분이 들거든요.



통통하게 불어난 콩을 부드럽게 삶아 곱게 갈아냅니다. 고소한 향이 은은하게 퍼지고, 거칠고 단단했던 콩은 매끄럽고 부드러운 콩물로 변합니다. 이제는 고요히 발효를 기다릴 차례입니다.


특별한 요리 기계가 없어도 괜찮습니다. 적절한 온도를 유지할 수 있도록 준비한 용기에 콩물을 담고 유산균을 섞어 따뜻하게 보온해 줍니다. 포근한 이불을 덮어주듯 온도를 살피며 기다리는 시간입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작은 생명들이 제 역할을 다할 수 있도록 조용히 자리를 내어주는 것이지요.


찰랑이던 콩물은 시간이 흐르면서 조금씩 질감이 달라집니다. 충분히 발효된 뒤 뚜껑을 열어보면 한결 묵직하고 부드러운 요거트가 모습을 드러냅니다. 서두르지 않고 온기를 지켜준 시간, 그리고 그 안에서 일어난 보이지 않는 변화가 한 그릇에 담기는 순간입니다.

내 안의 깊은 우주를 돌보는 시간


우리 몸속에는 눈으로 볼 수 없는 수많은 미생물이 살아갑니다. 특히 장에는 다양한 미생물이 어우러져 복잡한 생태계를 이루고 있지요. 이들은 우리가 먹은 음식을 처리하는 과정과 장의 건강을 비롯해 여러 신체 기능에 관여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눈에 보이는 것에는 유난히 많은 관심을 기울이면서도, 정작 몸속 깊은 곳에서 일어나는 일에는 무심할 때가 많습니다. 거울에 비친 얼굴이나 체중계의 숫자에는 민감하면서, 매일 나를 지탱하는 몸의 안쪽을 어떻게 돌보고 있는지는 쉽게 잊어버리곤 합니다.


그래서인지 검은콩 요거트를 만드는 시간은 더욱 특별하게 느껴집니다.


콩을 불리고, 삶고, 갈고, 적당한 온도에서 기다리는 일. 어느 하나 눈에 띄게 대단한 과정은 아니지만, 그 안에는 나를 위해 기꺼이 시간을 내겠다는 마음이 담겨 있습니다. 보이지 않는 몸속의 환경을 소중히 여기고, 내 몸이 필요로 하는 것을 조금 더 세심하게 살피려는 마음이기도 합니다.


발효 식품을 먹는다고 해서 몸의 모든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내 몸을 이해하고, 균형 잡힌 식사를 챙기며, 나에게 좋은 습관을 하나씩 만들어가는 일은 분명 의미가 있습니다. 건강을 돌보는 일은 유늘의 식탁에서 시작될 수 있습니다..


누가 수고로움을 알아주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내 안의 가장 깊고 은밀한 곳을 정성스레 가꾸는 이 느릿한 시간이야말로, 내가 나를 온전히 안아주는 따뜻한 방식이니까요.



나를 위한 소박한 정성


발효를 마친 검은콩 요거트를 예쁜 그릇에 소복하게 담습니다. 숟가락으로 살짝 떠보면 부드럽고 묵직한 질감이 느껴지고, 입안에는 검은콩 특유의 구수하고 진한 풍미가 퍼집니다.


그대로 먹어도 좋지만 산딸기나 블루베리를 곁들이면 상큼한 맛이 더해지고, 그래놀라와 견과류를 올리면 바삭한 식감까지 즐길 수 있습니다. 조금 더 달콤하게 먹고 싶은 날에는 조청을 살짝 섞어도 좋겠지요. 같은 요거트라도 그날의 기분과 입맛에 따라 얼마든지 다른 한 그릇을 만들 수 있습니다.


저는 이렇게 소박한 재료에 작은 정성을 더해 나만의 음식을 완성하는 순간이 좋습니다. 화려하거나 특별하지 않아도 괜찮아요. 내가 좋아하는 그릇을 꺼내고, 천천히 한 숟가락을 떠먹으며 맛과 향을 온전히 느끼는 것만으로도 식탁은 충분히 특별해집니다.


나를 돌보는 일이 꼭 거창한 것은 아닙니다. 오늘 먹을 음식을 정성껏 준비하는 것, 내 몸에 좋은 것을 조금 더 알아가는 것, 바쁜 하루 중 잠시 멈춰 나를 위한 한 끼를 즐기는 것. 그런 시간도 충분히 소중합니다.


오늘도 아침으로 검은콩 요거트를 천천히 떠먹습니다. 내 몸속에서 묵묵히 제 역할을 하는 작은 생명들을 떠올리고, 그보다 더 가까이에서 나를 돌볼 수 있는 사람은 결국 나 자신이라는 사실을 생각합니다.


나를 함부로 방치하지 않겠다는 다짐은 이런 조용한 습관 속에서 시작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메마른 콩이 물을 머금고, 단단했던 콩이 부드러운 요거트로 변하듯 우리에게도 충분히 머물고 기다릴 시간이 필요합니다. 서두르지 않아도 괜찮아요. 오늘 나를 위해 건넨 작은 정성이 내일의 나를 조금 더 편안하게 만들어 줄 테니까요.


나를 다정하게 돌보는 일은 이렇게,
정성스러운 한 그릇에서부터
시작될 수 있습니다.



Tip. 완성된 검은콩 요거트는 그대로 담백하게 즐겨도 좋지만 산딸기, 블루베리, 그래놀라, 견과류 등 다양한 토핑을 듬뿍 얹으면 맛과 식감이 훨씬 풍부해집니다. 조금 더 달콤하게 즐기고 싶다면 조청을 약간 섞어 드시는 것을 추천합니다. (참고로 분리해 낸 유청은 버리지 말고 그대로 마시거나 다용도로 활용해 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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