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들부들 극세사같이 보드라운 천들이 다시 손에 감기는 계절이 돌아왔다.
그 온기가 너무 따뜻해서.. 늘 쥐고 있게 되는데.. 우리 조카의 애착 이불처럼.. 안정감을 준다.
그런데 부들부들을 쓰고 보니까..
재미있게도 부들부들 화가나서 떨린다고 이해하는 맥락도 있다는것이 흥미로웠다.
물론 엄밀하게 말하면 부드러운 것은 보들보들 보드러움이지만,
보들보들과 부들부들 전혀 다르다.
보들보들은 더 곱고 섬세한 느낌이라면
부들부들은 폭 감싸 안기고 싶은 느낌이다.
나는 뜨개질을 좋아한다.
한때 뜨개질에 완전 빠져서 그 겨울 내내 열심히 했었다.
모자, 장갑, 목도리, 조끼, 니트 등 엄청 나게 만들었었다.
뜨개질을 '정신의 요가'라고 하는 이유가 분명히 있었다.
독일에서 친한친구 엄마가 완전 뜨개질의 장인이셨는데 직접 내 장갑을 떠주셨다.
그런데 아직도 튼튼해서 잘 끼고 다닌다.
하나는 보라색, 하나는 크림색이었다.
심지어 둘중 하나는 손가락이 반만 있어서 장갑을 뺏다꼈다 할 필요가 없어서 너무 좋다.
하나는 좀 헐겁고, 하나는 쨍쨍해서 어디든 두개를 겹쳐 낄수도 있다.
그때 내 생일이었는데, 그 선물을 받고 너무 감동했던 기억이 난다.
돈으로 살 수 있는 선물보다는
본인이 스스로 창조한 것이 훨씬 가치 있으니까.
내 친구는 본인이 직접 그정도로 예쁘게 뜰 수는 없어서
엄마가 그것을 만드는 동안 옆에서 항상 함께 대화를 했다고 했다.
그래서 였을까? 친구 엄마는 2개나 만드셨던거다.
어쩌면 그냥 실이 하나의 작품이 되는것처럼
사람도 시스템에 맞게 잘 떠져야 그 규칙에 맞게 만들어져야 완성되는것 같다.
단 한번이라도 직접 뜨개질을 해본 사람은 느끼겠지만
너무 꽉꽉 실을 당기면 작품이 너무 불편해진다.
그렇다고 너무 헐거우면 형체를 찾아보기가 어렵게 금방 풀려버린다.
적당히 공기만 들어갈정도로 뜨되
아주 규치적으로 딱 그만큼만 반복해줘야 한다.
한번 코를 바꿔줘야 하는곳에서 주저하면 그냥 영원히 계속 가기만한다.
어느순간 바꿔줘야하고 멈춰줘야 한다.
그럼에도 내가 지난 5년 내에는 뜨개질을 해본적이 없는 이유는
여러가지가 있겠지만,
정작 진짜 우울감이 심하게 몰려올때는 손가락을 움직이기도 힘들다는 것이다.
정신의요가가 필요할때인것을 알았지만 그마저도 집중할수가 없다.
하지만 그때 내가 만들었던 작품을 선물했던 사람들이 잘 입고다니는 것을 보면
또 그렇게 행복할 수가 없다.
아 맞다. 내가 이런걸 만들었었지.. 하면서..
그렇게 따뜻할수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