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역은 강남ㅡ강남역입니다.
오늘도 소희는 왼편 봉이었다.
에어팟 착용 후 가방은 앞으로, 시선은 자연스럽게
이제는 의식하지 않아도 몸이 먼저 준비됐다.
소희는 지하철 안을 그냥 보는 게 아니라, 이제는 읽는 것으로 느끼고 있었다.
근데 오늘은 읽을 필요도 없었다.
바로 눈에 먼저 들어왔으니까.
짙은 회색 양복이었다. 반듯하게 다려진 셔츠, 살짝 오래된 구두.
50대 정도로 보이는 온라인 게임인이었다.
머리는 단정하게 넘겼고, 표정은 평온했다.
딱히 특이할 게 없는 사람이었다.
근데 가방이 이상했다.
한쪽 어깨에 소중하게 걸쳐진,
양복이랑 전혀 안 어울리는 긴 끈의 가방이었다..
천 소재의 가방은 낡아서 색이 바랬고, 모양이 납작하고 길쭉했다.
기다란 무언가 들어있는 게 분명한데, 그 모양이 서류 가방도 아니고 백팩도 아니었다.
가방을 어깨에 두른 방식이 또 달랐다.
짐 취급하는 게 아니라, 지키는 것처럼 안쪽으로 꼭 붙여서 들고 있었다.
그 모습이 무척 어색했는지 맞은편에 선 온라인 게임인 둘이 힐끗 봤다가 시선을 거뒀다.
소희 옆에 서 있던 여자도 그를 한 번 봤다.
다들 폰에 얼굴 박고 있는 출근길에도,
저 가방이 뭔가 눈에 걸리는 모양이었다.
소희도 그런 호기심이 발동했다.
저게 뭐지... 뭘까...?
남자는 아무것도 모르는 얼굴로 그냥 서 있었다.
창밖을 보는 것도 아니고, 폰을 보는 것도 아니고. 그냥 어딘가 조용히 있었다.
흔들리는 지하철 안에서 혼자 중심이 잡힌 것처럼.
그때였다.
스마트폰이 진동했다.
[체험 티켓이 발급되었습니다.]
[대상을 지정하시겠습니까? (Y/N)]
소희는 남자를 힐끔 보고는 곧장 가방을 봤다.
[Y]
눈이 떠졌을 때 첫 번째로 느낀 건 가방이었다.
어깨에 걸쳐진 무게. 소희는 반사적으로 손으로 가방을 확인했다. 잘 있었다. 소희는 그제야 숨을 내쉬었다.
내가 왜 이걸 확인하는 거지.
몸이 먼저 알고 있었다. 이 가방이 중요하다는 걸.
내려야 할 역은 강남이었다.
박성우의 기억이 자연스럽게 발을 움직였다.
늘 다니는 길인지 게이트를 순식간에 지나쳐, 엘리베이터를 타고, 회전문을 빠르게 통과해서 12층 꼭대기층에 도착했다.
박성우 영업부 과장.
본인 이름이 써진 자리에 앉자마자 모니터를 켜고는
자리한 켠에 고이 모셔둔 그 가방을 힐끗거리며 흐뭇해하며 업무를 시작했다.
소희는 주변을 둘러봤다.
평범했다. 이전에도 경험했던 아침부터 바쁘지만 고요하고,
말없이 살짝 삭막한 느낌, 자기 할 일들만을 열심히 하는 그런 공간?
소희가 느끼는 사무실은 그런 공간이었다.
하지만 강진우 때보다 조용하고, 사람들이 덜 분주했다.
박성우 과장의 오늘은 딱히 회의도 없고, 특별한 보고도 없는 지루한 하루였다.
거래처 이메일 확인, 견적서 검토, 뭐 그런 기본적인 업무랄까,
점심은 혼자였다. 회사 근처 설렁탕집.
국물을 홀짝이면서 소희는 가방을 무릎 위에 올려뒀다.
’이 안에 뭐가 있길래 여기까지 모시고 온 거야.. 정말’
열어보고 싶었다. 근데 박성우의 몸이 열지 않았다.
회사 안에서는 열어보는 것이 아닌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이 가방은 특정한 시간에 여는 거라는 감각이 몸에 박혀 있었다.
소희는 하는 수 없이 기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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