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을 나눠도 외로운 사람들
섹스를 다루는 영화는 많다. 섹스를 보여주는 영화도 많고, 섹스를 통해 인간의 욕망과 외로움을 이야기하겠다는 영화도 항상 있어왔다. 그런데도 섹스가 등장하는 순간 영화가 오히려 사람에게서 영 멀어지는 그런 순간이 있다. 화면 속의 몸을 보여주느라 사람을 놓치는 것이다. 그래서 <숏버스>를 처음 봤을 때, 그 첫 장면부터 나는 이 영화가 대체 뭘 하려는지, 그리고 어디까지 가려고 하는 건지 조금 의심스러운 부분은 있었다. 실제 성행위를 그대로 보여주고, 아무렇지 않게 벗어젖히고, 만지고, 이야기한다. 보통 영화가 몇 초쯤 망설일 법한 장면에서도 <숏버스>는 그냥 망설이지 않는다. 그런데도 이상하게 곱씹어보자면 지나면서 기억에 남는 장면들은 그것만이 아니었다. 누군가의 표정, 어색한 침묵, 그리고 상대방에게 다가가기 전까지 잠깐 머뭇거리는 어떠한 몸짓 같은 것들. 결국 이 영화가 보여주고 싶었던 것은 섹스가 아니라 사람이 사람에게 도달하는 과정에 더 가까웠던 것 같다.
소피아는 섹스 테라피스트다. 다른 사람의 성적 문제를 상담해 주고 해결점을 찾아봐주는 사람이지만, 정작 자신은 오르가슴을 경험해 본 적이 없다. 생각해 보면 우리는 다름 사람에게는 의외로 많은 것을 설명할 수 있다. 어떻게 해야 하는지, 무엇이 문제인지, 어떤 방법이 있는지. 바카라을 읽고 경험을 쌓고 누군가의 이야기를 듣다 보면 그럴듯한 답도 만들어낼 수 있다. 그런데 정작 내 몸과 마음에 관한 문제에선 그런 것들이 별로 도움이 되지 않을 때가 있다. 소피아는 섹스를 모르는 사람이 아니고 오히려 그 이상으로 많이 알고 있지만 자기 자신은 그 지식의 바깥 테두리에 두고 있었다.
그래서 그녀가 자신의 문제를 해결하려는 방식은 꽤나 기술적이다. 원인을 찾고, 방법을 시도하고, 전문가답게 환경을 분석해보기도 한다. 하지만 몸이라는 게 저렇게 생각하는 것처럼 말을 잘 듣는 도구일까? 친밀함 또한 그렇다. 누군가와 가까워지는 일은 반드시 설명서대로 척척 진행되지 않는다. 타인이 개입할 땐 더더욱 그렇고. 내가 준비됐다 해도 상대방은 준비된 게 아닐 거고, 상대방이 원한다고 해서 그 상황이 본인에겐 평탄하지도 않을 뿐이다. 사람 사이에는 그런 미세한 조율이 계속 필요시 되어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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