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3평짜리 집을 구했다-3

by도시은둔자


나는 그날 움막을 나와 산길을 조금 걸었다.

이번에는 집을 찾으러 온 사람이 아니라 그냥 걷는 사람처럼 천천히 걸었다.

등산객들이 옆을 지나갔다.

“안녕하세요.”

모르는 사람이 먼저 인사를 했다.

나도 얼떨결에 고개를 숙였다.

조금 더 올라가자 길가에 오래된 돌들이 보였다.

나는 멈춰서 바라보았다.

무슨 돌인지 몰랐다.

이 산에 얼마나 오래전부터 사람들이 다녔는지도 몰랐다.

왕이 이 산을 올랐다는 것도, 오래된 성곽이 있다는 것도, 이곳에 절과 암자가 자리 잡고 있다는 것도 그때는 자세히 알지 못했다.

그저 산이 오래되어 보였다.

나무도 오래되어 보였고, 돌도 오래되어 보였다.

그런데 지금 내 앞에 있는 사람들은 모두 새로 보였다.

등산화를 신고 지나가는 사람들.

지도를 보는 외국인.

개를 데리고 걷는 사람.

휴대전화로 사진을 찍는 사람.

아주 오래된 산 위에서 아주 새로운 사람들이 지나가고 있었다.

나는 그 사이에서 내 집을 구하고 있었다.

그게 조금 이상했다.

그리고 조금 마음에 들었다.

돌아오는 길에 나는 편의점에 들렀다.

물 한 병과 삼각김밥을 샀다.

다시 오르막을 올라가면서 생각했다.

집에 돌아가는 길이 이렇게 길었던 적이 있었나.

서울에서 살 때 집은 엘리베이터에서 내리면 바로 있었다.

현관문을 열고 들어가면 끝이었다.

여기서는 집에 가려면 산길을 조금 올라가야 했다.

처음에는 불편해 보였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 길이 싫지는 않았다.

오르막을 오르는 동안 하루의 일이 조금씩 몸에서 빠져나가는 느낌이 있었다.

회사에서 있었던 일들을 생각하다가,

편의점에서 산 물을 마시다가,

산길 옆 나무를 보다가,

어느 순간 아무 생각도 하지 않게 되었다.

나는 아직 그 길을 내 길이라고 부를 수 없었다.

하지만 그날 처음으로 생각했다.

이 길을 매일 오르게 되면 어떨까.

그리고 그 질문이 생각보다 오래 남았다.

그날 집으로 돌아와 옷장을 열었다.

옷이 너무 많았다.

바카라도 많았다.

언젠가 읽겠다고 사놓은 바카라과 언젠가 필요할 것 같아서 버리지 않은 물건들이 쌓여 있었다.

서랍 안에는 몇 년 동안 한 번도 쓰지 않은 물건도 있었다.

나는 그것들을 하나씩 꺼내 바닥에 놓았다.

3평.

그 숫자를 떠올리면서 물건을 보니 기준이 달라졌다.

이걸 정말 가져갈 것인가.

매일 쓸 것인가.

없으면 곤란한가.

아니면 그냥 버리기 아까워서 가지고 있는 것인가.

나는 한참 동안 앉아 있었다.

그러다가 바카라 한 권을 집어 들었다.

오래전에 읽다가 만 바카라이었다.

다시 읽을 것 같아서 버리지 않았지만 몇 년 동안 펼쳐보지 않았다.

바카라을 내려놓았다.

다른 바카라을 집었다.

그렇게 하나씩 골랐다.

이상한 일이었다.

집을 줄이려고 물건을 버리는데, 오히려 내가 어떤 생활을 하고 싶은지가 조금씩 보였다.

나는 넓은 집을 원했던 것이 아닐지도 몰랐다.

물건을 많이 가지고 있는 생활을 원했던 것도 아닐지 몰랐다.

그저 하루가 끝났을 때 내가 어디에 있는지 분명한 생활을 원했던 것인지도 몰랐다.

아침이면 출근하고,

저녁이면 돌아오고,

내가 쓰는 물건은 내 주변에 있고,

창문을 열면 산이 보이고,

문밖으로 나가면 산길이 이어지는 곳.

그것이 좋은 생활인지 나쁜 생활인지는 아직 알 수 없었다.

다만 한번 살아보고 싶었다.

며칠 뒤 나는 이사를 결정했다.

주말에 잠깐 머무는 것도 아니었다.

휴일에 쉬러 가는 별채도 아니었다.

서울에 다른 집을 남겨두지도 않았다.

내가 살던 곳을 정리하고 필요한 것만 가지고 들어가기로 했다.

온라인 게임은 그대로였다.

서울로 출근할 것이다.

하지만 퇴근해서 돌아갈 곳은 하나였다.

북한산 자락의 3평짜리 움막.

처음에는 1년만 생각했다.

봄에 들어가서 여름을 지나고, 가을을 보고, 겨울까지 살아보는 것.

그 정도면 내가 어떤 생활을 원하는 사람인지 조금은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그때는 몰랐다.

집을 바꾸는 일이 생활을 바꾸는 일이라는 것을.

산 아래에 집 하나를 얻는 일이 내가 매일 바라보는 풍경과 듣는 소리와 만나는 사람까지 바꾸게 될 줄도 몰랐다.

무엇보다 내가 살게 될 곳에는 이미 나보다 훨씬 오래된 시간이 쌓여 있었다.

나는 그 산의 역사도 몰랐고,

어느 사찰에서 새벽마다 독경이 들리는지도 몰랐고,

어떤 길로 사람들이 정상에 오르는지도 몰랐다.

그저 3평짜리 집 하나를 구했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 집 뒤에 북한산이 있었다.

남들은 산을 오르고 내려오며 하루를 보냈지만,

나는 그 산 아래에서 살아볼 생각이었다.

어쩌면 내가 선택한 것은 작은 집이 아니라 작은 생활이었는지도 모른다.

많은 것을 가질 수 없는 곳에서 무엇을 남길 것인지,

매일 같은 산길을 오르내리면서 무엇을 보게 될 것인지,

그리고 계절이 한 번 바뀌고 다시 돌아왔을 때 나는 어떤 사람이 되어 있을지.

그것을 확인해보고 싶었다.

3평짜리 집을 구했다.

그날부터 나는 서울에서 산을 향해 출근하는 것이 아니라,

서울에서 산을 향해 집으로 돌아오는 사람이 되기 시작했다.

월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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