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12월 14일, oo 의료원 장례식장.
아버지의 발에 신겨진 양말에 구멍이 나 있었다.
나는 그걸 보고 웃었다.
아버지는 돌아가셨고, 사람들은 조문을 왔다. 어머니는 상복을 입고 있었다. 슬픈 자리였다. 그런데 내 눈에 들어온 것은 아버지의 얼굴보다 양말의 구멍이었다.
아버지는 평소 이런 말을 자주 했다.
“양말은 뒤집어 신으면 두 번 신는 거다.”
농담처럼 들리는 말이었지만, 아버지에게는 농담만은 아니었다. 외환위기 때 온라인 게임을 잃은 뒤 아버지는 물건을 쉽게 버리지 못했다. 쓸 수 있는 것은 더 쓰고, 아낄 수 있는 것은 더 아꼈다. 양말도 그중 하나였을 것이다.
그 양말을 보자 아버지의 말이 떠올랐다. 그리고 웃음이 나왔다.
그 순간 어머니가 내 팔을 움켜잡았다.
장례식장에서 웃으면 안 된다는 뜻이었다. 나 역시 알고 있었다. 나는 웃음을 멈췄지만, 마음속에서는 다른 질문이 시작됐다.
나는 아버지를 충분히 사랑하지 않았던 걸까?
아버지가 돌아가셨는데도 슬프지 않은 걸까?
왜 나는 울어야 할 자리에서 웃었을까?
그때의 웃음이 정확히 무엇이었는지는 지금도 단정하기 어렵다. 아버지와 함께했던 시간이 떠올라서였을 수도 있고, 슬픔이 너무 커서 엉뚱한 반응이 나왔던 것일 수도 있다. 긴장 때문이었을 수도 있다.
분명한 것은 하나다. 웃음이 나왔다는 사실만으로 내가 슬프지 않았다고 결론 내릴 수는 없다는 것이다.
우리는 감정을 너무 단순하게 해석한다. 슬픈 사람은 울어야 하고,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사람은 웃으면 안 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인간의 마음은 그렇게 깔끔하게 움직이지 않는다. 슬픔과 웃음은 한 사람 안에 함께 있을 수 있다.
그렇다면 웃음은 무엇일까? 그리고 우리는 왜 불편한 순간마다 웃으려고 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