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바쿠, 아제르바이잔 - 학교 교문과 히잡

by도시은둔자


한 사람이 발길을 돌렸다.

교문 앞이었다. 아침 8시, 바쿠의 학교 앞이었다.


히잡을 쓴 학생이었다. 그리고 그 학생을 가르치던 선생님이었다. 두 사람은 같은 이유로 교실에 들어가지 못했다. 머리에 쓴 천 하나 때문이었다.


9월 21일, 내각은 교복 규칙을 바꿨다. 세속 교육의 원칙에 어긋나는 옷은 입을 수 없다는 규칙이었다. 히잡이라는 단어는 없었다. 하지만 학교는 그 문장을 히잡이라고 읽었다.


학생은 말했다.

"벗으면 들어갈 수 있어요?"


선생님은 대답하지 못했다.

선생님도 같은 천을 쓰고 있었으니까.


학교는 말한다. 학교는 세속적이어야 한다고. 모두가 같은 교복을 입어야 평등하다고. 종교는 학교 밖에 두어야 한다고. 아제르바이잔은 96%가 무슬림이지만, 동시에 헌법에 종교와 국가는 분리되어 있다고 쓰여 있는 나라다. 70년 소련이었다는 기억이 교복에 남아 있다. 같은 옷을 입히는 것이 중립이라고 믿는 기억.


학생은 말한다.

히잡은 옷이 아니라 나라고. 벗으라면 학교가 아니라 나를 벗으라는 거라고.

선생님은 말했다.

"히잡은 내가 언제 벗을지 내가 정하는 거야."

교육을 받기 위해 신앙을 벗어야 한다면, 그건 교육이 아니라 조건이다. 교문 앞에서 발길을 돌린 건 학생이 아니라, 교육받을 권리였다.


한쪽은 국가가 누구인지를 지키려는 말이고, 한쪽은 내가 누구인지를 지키려는 말이다.

둘 다 틀린 말이 아니다. 그래서 더 어렵다.


바쿠는 석유로 만든 도시다. 땅 밑에서 나온 돈으로 학교를 지었다. 그런데 그 학교에서 문제가 된 건 땅 밑이 아니라 머리 위였다. 천 한 장.


그날 이후, 어떤 학교에서는 아이들이 수업을 거부했다. 교실에 들어가지 않았다.

"히잡은 교육을 막지 않는다"는 피켓을 들었다. 어떤 선생님은 해고됐다.


학생과 선생님은 교문 밖으로 나왔다. 교문은 닫히지 않았다.

그냥 그 두 사람이 들어가지 못했을 뿐이다.


교복은 무엇을 저장하는가.

모두가 같아 보이는 풍경을 저장한다. 다르지 않게 보이는 안전을 저장한다.

그런데 그 같은 풍경 때문에, 두 사람이 발길을 돌려야 했다면.


그 교문은 누구를 위해 있는가.


그날 바쿠의 교문 앞에는 두 개의 정답이 있었다.

하나는 규칙이었고, 하나는 사람이었다.


그리고 둘 다 교문 앞에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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