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금은 아픈 이야기
비가 내린 지 얼마 안 되어 축축한 버스 안.
여름 하복을 입고 친구들과 하굣길을 달리고 있었다.
"평범한 가정을 이루고 싶어"
"평범한 가정이 얼마나 이루기 힘든데"
친구의 작은 얼굴에 좁혀진 미간이 유독 신경 쓰였다. 무엇이 신경을 거슬렀나 궁금했지만 친한 친구는 아니었기에 물어보기가 어려웠다.
고등학생인 우리는 뭐가 그렇게 심각했을까. 나중에 함께 있던 친구에게 물어보니 답이 나왔다.
"평범한 가정은 쉽지 않은 건데, 네가 쉽게 말해서 화가 났나 봐"
이해는 가지만 공감이 가지 않는다는 말이 이럴 때 나오는 것일까.
나는 결코 쉽게 이야기한 것은 아니었다. 남의 이야기를 어떻게 그렇게 왜곡되어 들을까.
불우한 가정, 평화롭지 않은 가정 등 그 기준이 도대체 무엇일까. 그 친구는 내가 왜 '평범한 가정을 이루고 싶다'라는 말을 했을지 생각은 해보았을까? 그랬다면 오히려 물어봤을 것이다. 아마 친구는 자신이 가장 불행했다고 생각했겠지. 우리는 어렸으니까.
평범한 가정을 이루고 싶다던 나의 내면은, 오히려 결혼에 두려움을 갖고 있었다. 그 이유에는 돈도, 명예도, 과정을 몰라서도 아니다. 내가 봐왔던 결혼 생활은 당연 엄마 아빠의 모습을 보고 자랐기 때문이었다.
과거 엄마의 모습
"나가려면 혼자 나가!"
유치원 생이었던 나는 가장 좋아했던 공룡 옷을 입고 있었다. 공룡 꼬리가 달린 초록색 옷을 허겁지겁 입히고는 내 손을 잡고 거실로 나가던 엄마의 뒷모습. 그리고 그런 엄마를 마구잡이로 때리던 둘째 고모와 친할머니의 모습이 선명하다. 두 사람을 힘으로 이기지 못했던 걸까. 엄마는 신발장에 밀쳐져 맞고만 있었다. 표독한 둘째의 표정은 지금도 기억난다. 평소에도 내 엉덩이를 그렇게 때리더니 엄마까지 때린다. 지금의 나였으면 아빠에게 말했을 텐데 그땐 그런 상황이 왜 일어났는지도 모를 어린 나이었다. 그저 엄마가 불쌍했고 가족들이 미웠다. 어린 내가 보기에는 엄마는 맞기만 했으니까.
이후에 언뜻언뜻 기억나는 것은 아빠의 무서운 눈, 이곳저곳 날아다니던 물건들, 엄마의 울음소리, 엄마의 머리채를 잡고 끌고 가던 아빠의 모습 등. 새벽 4시가 될 때까지 싸움이 끝나지 않던 집안은 조용할 날이 없었다. 초등학교 때는 종종 등교를 못 했고, 119에 실려가는 엄마도 봤다.
중학교 2학년이 되고, 마지막으로 엄마가 나를 끌어안고 울던 모습이 생각난다. 마지막으로 아빠가 자고 있던 엄마의 머리채를 끌고 방문을 나갔을 때 "하지 마아"하며 울던 나를 아빠는 놀란 눈으로 보았다. 그대로 엄마를 놔주었다. 엄마는 그대로 다시 나를 안고 울며 "더 이상 못 참겠다"라고 말했다.
"그냥 나가 엄마"
중학교 2학년인 나는 엄마에게 말했다. 가족 등쌀에 못 이겨 몇 번이고 집을 나갔다가 들어온 엄마는 내 말을 듣고 한 번 더 나갔다. 이때가 마지막으로 완전히 집을 나갔다. 나는 오히려 다행이라 생각했다.
시아버지, 시어머니, 표독한 둘째 시누이, 정신지체를 앓고 있어 더욱 표독했던 셋째 시누이까지. 모두의 밥을 삼시세끼 차리며 시아버지의 밥은 따로 돌솥밥까지 해야 했던 그 시절. 남편인 우리 아빠는 무서웠고, 폭력적이었으며 모두가 엄마 편이 되어주지 못했던 그때. 엄마는 얼마나 외롭고 힘들었을까.
어릴 적 엄마 생일을 아무도 챙겨주지 않았다. 꽃과 조각 케이크를 용돈 모아 밤늦게 몰래 챙겨줬는데 그날 엄마가 서럽게 울었다.
나에게 아빠란
그렇다고 아빠가 완전히 미운 것은 아니다. 그도 엄마와 심하게 싸우면 어린 나를 붙들고 '아빠가 미안하다' 라며 울기도 했다. 하지만 그것도 단 한 번이 마지막이었다. 우리는 내가 고등학교 2학년이 되던 날, 할머니와 별거를 했다. 할머니는 아빠와 따로 살고 싶다 했고, 아빠는 모든 재산을 할머니에게 드렸다. 딱 일부분, 2천만 원만 챙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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