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는 관상은 과학이라고 말한다.나는 거기에 하나를 더 보태고 싶다.
바로 목소리.
정확히 말하면 목소리의 색깔과, 리듬, 호흡, 그리고 흐름이다.
물론 사람은 긴장하면 목소리가 달라진다.
회의를 하거나, 낯선 사람을 만나거나, 화가 나거나, 몸이 아플 때도 목소리는 쉽게 변한다.
그래서 내가 말하는 것은 그런 일시적인 목소리가 아니다.
가장 편안한 사람 앞에서,.아무런 방어도 하지 않을 때 자연스럽게 흘러나오는 목소리.
나는 그 목소리에 그 사람이 살아온 시간이 은은하게 스며 있다고 느낀다.
가끔은 누군가의 목소리만 들어도 마음이 편안해지는 사람이 있다.
천천히 흐르는 말. 억지로 꾸미지 않는 리듬. 상대를 몰아붙이지 않는 호흡.
듣고 있으면 따뜻한 담요를 덮은 것처럼 마음이 차분하고 안심이 된다.
왜 그럴까 생각해 보았다.
아마도 자신을 충분히 사랑해 본 사람은 자기 안에 아직 남아 있는 작은 아이까지도 외면하지 않았기 때문인지 모른다.
상처받았던 기억도, 울었던 시간도, 실패했던 자신도.조금씩 안아 주며 살아온 사람.
그래서 그 목소리에는 이상하게도 포근함이 묻어난다.
반대로.듣는 순간 어딘가 메마르고 차갑게 느껴지는 목소리도 있다.
말은 빠르고, 호흡은 짧으며, 문장이 자꾸 끊긴다.
여유보다 경계가 먼저 느껴지고, 따뜻함보다 자신을 지키려는 긴장이 먼저 전해진다.
물론 그 사람이 나쁜 사람이라는 뜻은 아니다.
오히려 나는 궁금해진다.
무슨 시간을 지나왔기에 그토록 자신을 단단히 감싸야만 했을까.
어떤 상처가 있었기에 세상을 향해 계속 긴장한 채 살아가게 되었을까.
심리학에서는 '내면아이'라는 표현을 사용하기도 한다.
어린 시절의 상처와 기쁨, 욕구와 감정이 어른이 된 지금도 우리 안에 남아 있다는 의미다.
생각해 보면,
그 아이를 자주 안아 준 사람과, 오랫동안 잊고 살아온 사람은
삶을 대하는 태도에도 조금씩 차이가 생기지 않을까 싶다.
그 차이가
표정이 되고, 눈빛이 되고, 말투가 되고,
어쩌면 목소리의 색깔과 리듬, 호흡, 흐름에도 은은하게 스며드는 것은 아닐까.
나는 내 안의 아이를 생각해 본다.
나는 그 아이를 잘 안아 주고 있는가.
아니면 괜찮은 척하며 혼자 남겨 두고 있는가.
문득 내 목소리를 녹음해서 들어 보고 싶어진다.
목소리는 꾸며서 만드는 것이 아니라, 살아온 마음이 천천히 빚어 내는 것이다.
나는 자신을 이해할수록 목소리도 조금씩 부드러워지고,
자신을 사랑할수록 목소리에도 온기가 스며든다고 믿는다.
그리고 내면아이가 충분히 위로받아 한 사람의 어른으로 자라날 때,
목소리는 비로소 누군가의 마음을 쉬게 하는 하나의 포근한 음악이 될지도 모른다.
그래서 오늘도 나는 내 안의 아이를 조용히 들어올려 꼬옥 안아 주려 한다.
언젠가 내 목소리에도 누군가를 잠시 쉬게 하는 따뜻한 온기가 더욱 스며들기를 바라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