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비인후과 계산대에서 쓰러졌다

귀가 마른 것 같은 날엔 수영

by샤이니

석션은 그날따라 유난히 아팠다. '아' 하고 소리가 새어 나올 정도로. 진료를 마치고 계산대 앞에 섰다.

휴대폰의 삼성페이 화면을 여는 순간, 갑자기 속이 메슥거렸다. 머리가 핑 돌았다. 그리고 기억이 끊겼다.


다시 정신이 든 건 뒤통수가 깨질 것 같은 통증과 누군가의 다급한 외침 때문이었다.

"괜찮으세요? 119 불러 드릴까요?"

추석 전날, 동네에서 유일하게 문을 연 이비인후과였다.


운동을 안 가는 날에는 죄바카라감을 느끼곤 한다. 그렇다고 몸매가 대단히 좋은 것은 아니다. 아줌마답게 똥배도 조금 나왔다. 다만 옷으로 그럭저럭 가려질 뿐이다.


교사학습연구년을 맞은 3~4월에는 헬스장에 다녔다. 혼자 하니 재미가 없었고, PT를 받기엔 돈이 아까웠다. 다음은 필라테스, 10년 동안 요가를 해 와서인지 따라갈 만했고, 몸 관리를 잘해 왔다는 선생님의 칭찬에 자신감도 붙었다. 그것도 한 달. 수영을 시작했다.


사실 수영은 3월부터 하고 싶던 운동이었다. 지역 스포츠문화센터 강습은 가성비가 좋아서, 한 반에 30명인데도 들어가기가 쉽지 않다. 3월 1기에는 '낙첨' 문자를 받았고, 6월 2기에 드디어 '당첨'. 아침 7시 초보반에 부지런히 다녔다.


초보 강습의 꽃은 킥판 발차기다. 운동을 꾸준히 해 온 나지만 발차기는 쉽지 않았다. 속도는 안 나고 숨은 찼다. 처음엔 호기롭게 서너 번째 순서에 섰지만, 뒷사람에게 쫓기다 점점 맨 뒷자리로 밀려났다. 그게 편했다.

음파, 자유형을 거쳐 지금은 배영을 배우고 있다. 강사님이 배영 선수 출신이라 배영만큼은 진심이셨다. 나는 맨 뒤에 서면서도 진도를 따라가기 위해 강습이 없는 주말에도 나와 연습했고, 유튜브 동영상을 보며 시뮬레이션을 했다. 나도 강사님만큼이나 진심이었다.


추석 연휴를 앞두고 귀가 아프기 시작했다. 젖은 귀를 손가락으로 후빈 게 화근이었나 보다. 잠을 못 잘 만큼 아파서 제미나이에게 물었더니 얼음찜질을 하라고 했다. 찜질과 타이레놀로 버티다 결국 문은 연 이비인후과를 찾았다.


귀와의 악연은 길다. 시작은 세부 어학연수 때 참여한 캐니어닝이었다. 여러 번 물속에 뛰어내리는 사이 귀에 물이 들어갔나 보다. 나는 간지러운 귀를 면봉으로 후볐고, 약도 변변치 않았고, 영어 공부한답시고 매일 버즈를 끼고 지냈다. 한국에 돌아와서는 유난히 힘들었던 3학년을 가르치며 귀 통증을 달고 살았다. 작년 한 해 동안 좋아졌다 나빠졌다를 반복하며 이비인후과를 드나들었다.


그러다 올해 연구년을 맞았다. 학교에 출근하지 않아도 되는 일 년. 만병의 근원은 스트레스라고 했던가. 어느 순간 귀 통증이 사라졌다. 그래서 시작한 수영이었다. 매일 물에 들어가며 관리를 소홀히 한 탓일까. 귓속에는 손가락도 면봉도 절대 넣지 말라던 의사 선생님의 말을, 딱 한 번 무시했을 뿐인데.


그날 처음 뵌 의사 선생님은 귀를 들여다보더니 나를 혼냈다. 염증과 하얀 곰팡이를 보여주며, 이 지경이 될 때까지 왜 놔뒀냐고, 고막까지 상했을 수도 있다고 했다. 약물을 넣고, 간호사 선생님 말대로 고개를 왼쪽으로 기울인 채 대기실 소파에서 15분을 기다렸다. 그리고 그 석션, 그다음 계산대였다.


정신이 돌아오고 진료실에 다시 들어갔다. 선생님은 원래 이런 일은 없다고 했다. 할머니 할아버지들도 이 치료를 받고 쓰러진 적은 없다고 했다. 걱정보다 해명이 먼저였다.


추석 연휴 내내 침대에 누워 있었다. 친정도 시댁도, 아무 데도 가지 못했다. 아파서 서글프다가도, 가족들이 걸어온 위로 전화에 뭉클했다. 휴대폰을 스피커 모드로 켜 놓고, 태어나서 처음 겪은 졸도 이야기를 모험담처럼 몇 번이고 되풀이했다. 그럴수록 나는 나 자신을 향한 연민에 한껏 취해 갔다.


연휴가 끝나고 원래 다니던 이비인후과에서 진료의뢰서를 받아 서울의 대학병원에 갔다.

"귀 만지면 원래 어지러워요."

"귀 건드려서 그런 거예요."

다니던 이비인후과 선생님도, 대학병원 교수님도 아무렇지 않다는 듯 말했다. 엑스레이도 찍었다.

“24시간 안에 별일 없었으니 괜찮을 거예요. 뒤통수 뼈는 원래 단단해서 크게 다치지 않았을 거예요.”

쓰러진 병원에서는 '원래' 없는 일이었고, 다른 병원에서는 '원래' 그런 일이었다. 그 사이에서 생애 첫 졸도에 취해 있던 나만 머쓱해졌다.


전문의 두 분의 의견을 듣고, 확신에 찬 남편은 전화해서 따져야 한다고 했다. 방어적으로 말했던 의사샘이 서운했나보다. 나는 그러지 말라고 했다. 죽지 않았으면 됐다고. 그분도 나를 치료하려고 한 거지, 쓰러지게 하려고 한 건 아니라고. 그 말은 의대생인 작은아이 때문이기도 했다. 병원에 갈 때마다 흰 가운을 입을 딸의 얼굴이 떠올랐으니까.


3주가 지난 지금도 뒤통수를 만지면 툭 튀어나온 데가 뻐근하다. 다행히 귀 앞 볼록한 연골을 눌러 봐도 끈적이는 느낌 없이 뽀송하다. 그사이 내 수영 실력은 점점 퇴화하고 있다.


생각해 보면 연구년에도 나는 쉬는 법을 몰랐다. 맨 뒷줄에 서면서도 주말까지 수영장을 찾았다. 나는 무언가를 새로 시작하면 늘 그렇게 매달린다. 에세이를 마무리한다며 밤낮 노트북을 떠나지 못했고, 그러면서도 수영도 미친 듯이 했다. 실력과는 상관없이. 이번엔 귀가 먼저 알았고, 몸이 결국 나를 눕혔다.


운동을 안 가니 우울하고 죄바카라감이 든다. 요가를 다시 시작할까 하다가도 수영에 미련이 남는다. 수영장 물은 락스에, 온갖 사람들의 오물로 더러울 거라고 나를 위로해 본다. 그래도 몸을 유선형으로 만들려고, 좀 더 많은 물을 잡으려고, 발을 부드럽게 차려고, 조금이라도 물의 저항을 줄이려 애쓴 시간들, 25m를 완주하고 숨을 헐떡이던 그 순간들을 잊지 못한다.


그래서 오늘, 3주만에 수영을 했다. 샤워를 마치고 드라이기 앞에 섰다. 귓속이 또 끈적거렸다. 검지가 저절로 귀로 향했다. 나는 손가락 대신 드라이기를 귀 가까이 대고, 가장 약한 바람으로 오래오래 말렸다.

금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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