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 X 14.4분
수학 교사로 28년을 살다 보니 숫자만 보면 나누고 싶어진다. 직업병이다.
100세 시대라고들 한다. 그 100년을 하루로 치면 나는 지금 몇 시쯤일까. 하루는 24시간, 분으로 바꾸면 1,440분. 100으로 나누면 14.4분이다. 한 살 먹는 데 14분 24초가 걸리는 셈이다.
계산해 보았다.
스무 살은 새벽 4시 48분. 해도 안 뜬 시간인데 그때 나는 다 큰 줄 알았다.
서른은 아침 7시 12분. 그때 나는 교사 7년 차였고, 두 아이의 엄마가 됐다.
마흔은 오전 9시 36분. 아이들의 사춘기가 막 시작되어, 세상에 내 맘대로 안 되는 일이 있다는 걸 아프게 배웠다. 그때부터 조금씩 변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쉰. 낮 12시 정각이다.
정오라니. 계산해 놓고 조금 웃었다. 느낌으로는 해가 꽤 기운 오후 서너 시쯤인 줄 알았는데, 겨우 점심시간이었다. 사실은 쉰을 조금 넘겼으니 12시 14분쯤이다. 점심 종은 이미 쳤다.
오전 내내 바빴다. 그러느라 내 그림자가 어디로 드리우는지 볼 틈이 없었다. 정오는 그림자가 가장 짧은 시간이다. 발밑을 내려다보면 남이 보는 내가 아니라 그냥 내가 서 있다.
내친김에 그림자도 계산해 보았다. 원리는 중3 때 배우는 삼각비다. 해와 나와 그림자는 직각삼각형을 이룬다. 내 키가 높이, 그림자가 밑변이다. 해가 45도에 걸리면 그림자와 키가 같고, 해가 낮을수록 그림자는 길어진다.
서른의 그림자는 내 키의 네 배쯤 됐다. 오전의 나는 딱 그 그림자처럼 크게 보이고 싶어 안달했다. 학교에서는 무엇이든 1등 하는 반을 만들려 했고, 집에서는 완벽한 엄마가 되고 싶어 딸들의 저녁 시간표를 촘촘히 짰다. 그때는 그게 열심인 줄 알았다. 지나고 보니 강박이었다.
크게 후회는 없다. 그 그림자 또한 나였다. 잃었다고만 생각했는데 얻은 것도 있다.
그림자와 키가 같아지는 마흔두 살을 지나, 지금 정오의 그림자는 나보다 조금 작다. 이제 그림자는 방향을 바꾼다. 오후에 다시 길어질 그 그림자가 누군가 쉬어 가는 그늘이 되면 좋겠다.
이것도 욕심일까.
생각해 보니 그림자의 길이는 내가 정하는 게 아니었다. 늘이는 것도 줄이는 것도 해가 하는 일이다. 오전엔 그걸 모르고 발돋움을 했다. 해가 기울면 그림자는 알아서 길어질 것이고, 그 그늘에 들어와 앉을지는 그 사람이 정할 일이다. 나는 서 있으면 된다.
서 있는 동안 할 일이 하나 있다. 딴생각이다.
학교에서 정오는 4교시가 끝나갈 무렵이다. 아이들이 칠판 대신 창밖과 시계를 번갈아 보는, 하루 중 딴생각이 가장 많아지는 시간. 나는 28년 동안 그 시간에 "딴생각하지 말고 여기 봐"라고 말해왔다.
올해 나는 연구년으로 교실을 떠나 있다. 종도 울리지 않고, 여기 보라고 할 사람도 없다. 그래서 이번엔 내가 딴생각을 좀 해보려 한다. 오후 수업이 시작되기 전에.
그냥 스쳐 보내도 되는 딴생각도 있지만, 제법 붙잡고 싶은 생각도 있다. 문제는 정오의 나이답게 그 생각들이 금세 휘발된다는 것이다. 무슨 생각을 했는지조차 기억나지 않는다. 그래서 적어두기로 했다.
당신의 나이는 몇 시입니까?
나이에 14.4를 곱하면 분이 나옵니다. 60으로 나누면 시간이고요. 숙제는 아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