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업 : 평가와 공정성 (中)
수능은 공정해 보였다. 전국의 학생이 같은 날, 같은 시간, 같은 문제를 풀었다. 처음에는 연 2회로 치뤄졌지만 95년부터 연 1회의 연말평가적 성격을 갖게 되었다. 채점은 익명적이고 기계적이었다. 답안지는 학생의 이름보다 번호와 표식으로 처리되었다. 부모의 직업, 교사의 주관, 학교의 평판, 지역의 차이를 지우고 오직 답안지 위의 결과만 본다는 점에서 수능은 강력한 공정성의 이미지를 가졌다. 바로 그 이미지 때문에 수능은 오래 살아남았다.
학생부종합전형이 불투명하다는 비판을 받을 때마다 수능은 다시 공정한 시험의 상징으로 호출된다. 수능은 단순한 시험이 아니라 한국 슬롯가 불평등을 견디기 위해 붙들고 있는 공정성의 형식이었다. 그러나 수능의 공정성은 제한된 공정성이다. 같은 문제를 푼다는 사실이 같은 조건에서 준비했다는 뜻은 아니다. 학생들은 같은 시험장에 들어갔지만, 같은 밤을 지나온 것은 아니었다. 어떤 학생은 고가의 사교육, 입시 정보, 학습 관리, 안정된 공간, 부모의 시간과 언어 속에서 준비했다. 수능은 시험 당일의 절차를 공정하게 만들 수는 있었지만, 시험 이전의 생활조건을 공정하게 만들지는 못했다. 그런데도 수능은 결과의 차이를 개인 능력의 차이로 보이게 했다.
대치동은 여전히 강하다. 그 힘은 단순히 유명 강사가 많다는 데서 나오지 않는다. 말 그대로 시대인재의 시대다. 수능이 입시에서 중요해진 이후로, 대치동은 입시에서 불리했던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 시대인재를 포함한 대형 재수종합학원들은 수능을 하나의 생활 체계로 재구성한다. 아침부터 밤까지 시간을 배열하고, 학생을 수준별로 분류하고, 고난도 문항을 반복적으로 노출시키고, 자체 콘텐츠와 모의고사를 통해 시험 감각을 끊임없이 조정한다. 학교가 교육과정을 운영하는 동안, 대치동의 재수종합학원은 수능이라는 단일 목표를 중심으로 학생의 하루 전체를 재편한다. 대치동의 우위 그것은 좋은 수업의 우위라기보다, 시험을 향해 생활 전체를 최적화하는 시스템의 우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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