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화. 나는 이제 내 꽃을 피우려 한다

이제는 나를 살아가기로 했다 — 회복

bybloom


나는 오랫동안 같은 질문을 하며 살았다.

왜 나를 지켜주지 않았어?


그런데 그 질문보다 먼저 있었던 것은 아버지를 향한 질문이었다.

왜 나한테 그랬어.

그리고 어머니에게 물었다.

왜 내 말을 믿어주지 않았어.

왜 나를 지켜주지 않았어.

그 질문은 이상하게도 내가 살아가며 만난 사람들에게도 따라다녔다.


지연이를 처음 만났을 때 나는 지연이처럼 되고 싶었다.

전교 1등은 어떻게 공부하는지 궁금했고, 지연이가 밑줄을 그으면 나도 밑줄을 그었다.

보름달 빵과 하이테크 펜으로 전교 1등의 공부법을 조금씩 얻어오기도 했다.

그런데 어느 순간 내가 지연이의 노트를 베껴 성적을 올렸다는 말이 돌았다.


그때부터 나는 증명하고 싶었다.

노트 때문이 아니라고.

나도 노력해서 여기까지 온 거라고.

그래서 지연이를 이기고 싶었다.

그때는 그것이 상처라고만 생각했다.

그런데 돌아보니 지연이는 내가 처음 닮고 싶었던 사람이기도 했다.


공부를 잘하고 싶다는 마음을 갖게 했고, 나도 할 수 있는 사람인지 궁금하게 만들었다.

지연이는 나에게 상처를 준 친구이기도 했지만 나를 움직이게 한 사람이기도 했다.


민석 오빠도 그랬다.

처음으로 좋아하는 남자가 생겼다.

좋아하는 사람을 기다리는 마음도 알게 되었고, 나를 기다려주겠다는 말을 들어보기도 했다.

군대에 있는 사람에게 편지를 쓰고, 돌아오기를 기다렸다.


손을 잡고, 머리를 쓰다듬어주는 것이 좋았다.

그런데 좋아하는 사람이 더 가까이 다가오자 내 몸은 마음처럼 움직이지 않았다.

결국 우리 사이에도 아버지의 이야기가 들어왔다.

“그렇다고 내가 아버지처럼 강제로 그럴 순 없잖아.”

그 말을 듣고 나는 상처받았다.

그때는 그 한마디가 너무 컸다.


하지만 지금 돌아보면 민석 오빠와의 시간에는 그 한마디만 있었던 것이 아니었다.

처음 누군가를 좋아해 본 시간.

기다린 시간.

기다림을 받아본 시간.

사랑한 시간.

그리고 사랑받았던 시간도 있었다.


친오빠에게도 서운한 적이 있었다.

오빠는 언제나 나를 지켜주는 사람이었다.

“아버지가 집에 들어와도 네 방엔 못 가게 하겠다.”

군대에 가면서도 말했다.

“무슨 일 있으면 참지 말고 꼭 편지해.”

그리고 정말 내 편지를 받고 달려왔다.


그런 오빠가 아버지와 연락하고 있다는 것을 알았을 때 나는 이해할 수 없었다.

나를 가장 잘 아는 사람이 어떻게 그럴 수 있을까.

아버지가 나에게 어떤 사람인지 누구보다 잘 아는 사람이.

나는 오빠라면 아버지를 미워하는 마음까지도 나와 같아야 한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그런데 이제는 조금 알 것 같다.

내게는 나를 해친 아버지였지만, 오빠에게는 또 자신의 아버지였다.

오빠는 나를 지켜준 사람이었지만 나를 지키기 위해서만 존재하는 사람은 아니었다.

오빠에게도 오빠의 마음과 삶이 있었다.


그리고 어머니.

나는 어머니에게 가장 오랫동안 물었다.

왜 나를 믿어주지 않았어.

왜 나를 지켜주지 않았어.

왜 “나 때문에”라고 했어.

그 질문은 쉽게 사라지지 않았다.


어머니의 일기장을 읽고 처음으로 어머니의 삶을 보게 된 뒤에도 그랬다.

빚을 떠안고,

이혼을 하고,

온라인 게임을 다니고,

치매에 걸린 자신의 어머니를 돌보고,

두 아이를 걱정하며 살아온 사람.

그 삶을 알게 되었다고 해서 내 상처가 없어지는 것은 아니었다.


나는 어머니에게서 벗어나고 싶었다.

그런데 어머니가 나를 해치우듯 결혼시키려 했을 때는 또 원망스러웠다.

어머니도 이제 나에게서 벗어나 자유롭게 살고 싶었던 걸까.

그런 생각을 한 적도 있었다.


그렇게 결혼을 했지만, 결혼생활은 또 다른 기다림의 연속이었다.

언제 올지 모르는 답장.

언제 돌아올지 모르는 출장.

언제 다시 함께 잠들 수 있을지 모르는 밤.

나는 기다리고 또 기다렸다.

처음에는 기다릴 수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기다림이 길어질수록 지쳐갔다.

나도 자유롭고 싶었다.


누군가를 기다리는 일보다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이루고 싶었던 꿈을 이루며 살고 싶었다.

무엇보다 내 아이들에게는 내가 받았던 상처를 물려주고 싶지 않았다.

사랑을 듬뿍 주고 싶었다.

사랑받고 있다는 것을 의심하지 않아도 되는 아이들로 키우고 싶었다.


부모님처럼 살지 않겠다고 그렇게 다짐했는데.

나 역시 이혼을 하게 되었다.

그리고 어느새 어머니가 이혼했을 때의 나이가 되었다.


그제야 조금 알 것 같았다.

그때 어머니는 얼마나 외로웠을까.

혼자 두 아이를 바카라임지고, 빚을 감당하며 하루하루 살아내는 일이 얼마나 힘들었을까.

나도 내 아이들을 사랑했지만 사랑하는 마음만으로 모든 것이 해결되는 것은 아니었다.

아이들을 바카라임지는 일과 내 삶을 살아가는 일 사이에서 나 역시 여러 번 흔들렸다.


어머니도 그랬을까.

어머니도 누군가의 엄마이기 전에 자신의 삶을 살고 싶은 사람이었을까.

그제야 딸이었을 때는 보이지 않던 것들이 조금씩 보이기 시작했다.


엄마는 처음부터 엄마였던 사람이 아니었다.

누군가의 딸이었고,

한 남자를 사랑했던 여자였고,

하고 싶은 일이 있었고,

이루고 싶은 꿈이 있었던 사람이었다.

자신의 삶을 어떻게든 버텨내고 있던 한 사람이었다.


돌아보니 내가 만난 사람들은 내가 받은 상처 하나로만 이루어진 사람들이 아니었다.

지연이는 경쟁해야 할 친구만은 아니었다.

민석 오빠는 나에게 상처를 준 한마디만으로 이루어진 사람이 아니었다.

친오빠도 나를 지켜주는 사람으로만 존재한 것이 아니었다.

어머니도 나에게 상처를 준 엄마라는 한 모습만 가진 사람이 아니었다.

나에게 상처를 준 사람도 그 상처 하나로만 이루어진 사람은 아니었다.


그 사실을 알게 되었다고 해서 모든 사람을 이해하게 된 것은 아니다.

이해할 수 있게 된 일도 있고, 아직도 이해되지 않는 일도 있다.

용서할 수 있는 것도 있고, 어쩌면 끝내 용서하지 못할 것도 있을 것이다.

아버지에게 왜 그랬느냐고 묻는다면 나는 아직도 답을 알지 못한다.

어쩌면 평생 모를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제는 꼭 그 답을 알아야만 내가 살아갈 수 있는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나는 아주 오랫동안 누군가가 나에게 해주지 않은 것을 붙잡고 살았다.

왜 믿어주지 않았는지.

왜 지켜주지 않았는지.

왜 그런 말을 했는지.

왜 나와 같은 마음이 아니었는지.

그 답을 알게 되면 내 상처도 없어질 것처럼.

누군가 나를 완전히 이해해 주면 나도 괜찮아질 수 있을 것처럼.


하지만 모든 질문에 답이 있는 것은 아니었다.

그리고 모든 사람을 이해해야 하는 것도 아니었다.

용서하지 않아도 되는 일이 있다는 것도 이제는 안다.

회복하기 위해 반드시 누군가를 용서해야 하는 것은 아니었다.


나는 그저 자유로워지고 싶다.

누구 때문에 내가 이렇게 되었다는 생각에서도,

왜 나를 지켜주지 않았느냐는 질문에서도,

누군가가 나에게 준 상처로 오늘의 나까지 설명하는 일에서도.


한때 꿈속에서 누군가가 말했다.

“아버지도 건드린 애.”

그 말은 내가 나를 바라보는 방식이기도 했는지 모른다.


나는 아주 오랫동안 아버지에게 그런 일을 당한 아이로 나를 기억했다.

그 일 때문에 스스로 동굴 속으로 들어가 나에게 또 다른 상처를 주며 살기도 했다.

하지만 나는 그 일 하나로만 이루어진 사람이 아니었다.

나는 공부하고 싶어서 공부한 아이였다.

친구를 좋아하기도 했고, 미워하기도 했다.

처음으로 누군가를 좋아했고, 기다렸고, 사랑했다.

사랑받기도 했다.


일을 했고,

결혼을 했고,

두 아이를 낳았다.

엄마가 되었다.

한 가정을 지키려고 애썼고, 결국 그 가정을 끝내기도 했다.

누군가에게 상처를 받았고, 나 역시 누군가에게 상처를 주었을 것이다.

울기도 했고,

웃기도 했다.


그리고 여기까지 살아왔다.

상처는 내 삶의 한 부분이었다.

하지만 그것이 내 삶의 전부는 아니었다.

달라진 것은 과거가 아니었다.

이미 일어난 일이 없어지는 것도 아니었다.


다만 이제는 그 과거가 내 남은 삶까지 결정하게 두고 싶지 않았다.

아버지 때문에.

어머니 때문에.

누구 때문에.

그 말들 뒤에 내 삶을 계속 세워두고 싶지 않았다.


이제는 나를 살아가고 싶다.

누군가의 딸로만도 아니고,

누군가의 아내로만도 아니고,

누군가의 엄마로만도 아닌,

나로.


어쩌면 내가 그렇게 오랫동안 기다렸던 봄은 누군가가 나를 이해해 주는 날도, 모든 사람을 용서하게 되는 날도 아니었는지 모른다.

내가 내 삶을 다시 내 것으로 가져오는 날.

그날이 내게는 봄인지도 모르겠다.




엄마.

너무 늦었지?

나는 이제야 내 삶을 살아보려고 해.

누구 때문에 이렇게 되었다고,

누가 나를 지켜주지 않았다고,

그 안에만 머물러 살지 않으려고 해.

이해되는 것도 있고,

아직 이해되지 않는 것도 있어.


용서할 수 있는 것도 있고,

끝내 용서하지 못할 것도 있을 거야.


그래도 괜찮다고 생각해.

나는 이제 자유로워지고 싶어.


엄마도 그랬으면 좋겠어.

누구 때문에 그렇게 살았다는 인생 말고.

누군가의 딸로,

누군가의 며느리로,

누군가의 아내로,

내 엄마로만 살지 않았으면 좋겠어.


엄마 자신의 이름으로 엄마의 삶을 살았으면 좋겠어.


엄마에게도 하고 싶었던 일이 있었고,

이루고 싶었던 꿈이 있었고,

좋아하는 것이 있었을 테니까.


엄마.

너무 늦었다고 생각하지 않았으면 좋겠어.

나도 이제 내 꽃을 피워보려고 해.

엄마도 엄마의 꽃을 피웠으면 좋겠어.


그리고 혹시 우리처럼 조금 늦은 봄을 지나고 있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에게도 말해주고 싶어.

누군가의 딸로,

누군가의 엄마로,

누군가의 아내로 살면서

자신의 이름을 잠시 잊고 살았더라도.

상처받았고,

넘어졌고,

누군가를 미워했고,

때로는 나 역시 누군가에게 상처를 주며 살아왔더라도.

그것이 우리 삶의 전부는 아니라고.


봄은 꼭 제때 오는 것만은 아니라고.

조금 늦게 오는 봄도 있다고.


엄마.

우리에게 봄이 조금 늦게 왔을 뿐이야.

너무 늦은 건 아니야.


나도 이제 꽃을 피울게.

엄마도, 엄마의 꽃을 피웠으면 좋겠어.


그래도 엄마.

엄마가 나를 아프게만 한 것은 아니었어.

마음먹은 것은 어떻게든 해내는 힘도,

쉽게 포기하지 않는 끈기도,

가족을 돌보는 마음도

나는 엄마에게서 배운 것 같아.


예전에는 미안하다는 한마디가 그렇게 듣고싶었는데

미안해 하지 않아도 괜찮아.


그리고 나를 이렇게 강하고 똑 부러지게 키워줘서 고마워요.

엄마에게 받은 상처도 있지만,

엄마에게 받은 좋은 것들도 참 많았다는 걸 이제는 알아요.


그래도 엄마.

사랑해요. 사랑해. 많이.

그러니까 아프지 말고,

내가 어떻게 꽃을 피우는지 엄마도 오래오래 봐요.





에필로그


처음 이 글을 쓰기 시작했을 때는 상처를 고백하는 글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오랫동안 누구에게도 제대로 말하지 못했던 어린 시절의 일들을 꺼내고, 그때의 나를 다시 만나는 일이었습니다.

그런데 쓰다 보니 알게 되었습니다.

나는 상처를 고백하는 데서 끝내고 싶었던 것이 아니었습니다.

상처를 이해하는 글을 쓰고 싶었고, 그 상처를 조금씩 치유하는 글을 쓰고 싶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상처 너머에 있는 사람까지 바라볼 수 있는 글을 쓰고 싶었습니다.


누가 옳았고 누가 잘못했는지를 말하는 것보다, 한 사람의 마음과 삶을 조금 더 이해하게 만드는 글.

그런 글을 쓰고 싶었습니다.


물론 이 글을 썼다고 해서 내 상처가 모두 사라진 것은 아닙니다.

이해하지 못한 일도 있고, 아직 용서하지 못한 사람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압니다.


상처를 치유한다는 것이 그 일을 없었던 일로 만드는 것도, 모든 사람을 이해하고 용서하는 것도 아니라는 것을.

그 상처가 더 이상 내 삶의 전부가 되지 않게 하는 것.

나는 그것이 회복이라고 생각합니다.


『늦었지만 봄, 꽃을 피우다』를 연재하는 동안 어린 시절의 미영이를 참 많이 만났습니다.

아버지가 무서웠던 아이.

엄마에게 믿어달라고 말하고 싶었던 아이.

누군가 자신을 지켜주기를 기다렸던 아이.

사랑받고 싶었고,

잘하고 싶었고,

괜찮은 사람이 되고 싶었던 아이.

그 아이의 이야기를 여기까지 쓰고 나니 시원하기보다 아쉬운 마음이 더 큽니다.

오랫동안 함께 걸어온 이야기를 이제 정말 끝내야 한다는 것이 조금은 서운하기도 합니다.

그래도 이 글이 누군가에게 작은 용기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혹시 어린 시절의 미영이처럼 아무에게도 말하지 못한 상처를 품고 살아가는 사람이 있다면,

누구도 나를 이해해주지 않는다고 생각하며 혼자 견디고 있는 사람이 있다면,

당신의 삶도 그 상처 하나로만 이루어진 것은 아니라고 말해주고 싶습니다.


봄은 꼭 제때 오지 않아도 된다고.

조금 늦어도 괜찮다고.

당신에게도 당신의 꽃을 피울 시간이 분명히 남아 있다고.


이 글을 읽으며 함께 울고, 함께 화내고, 어린 미영이를 안타까워하고, 지금의 미영이를 응원해 주신 모든 분께 감사드립니다.

여러분이 함께해 주셨기에 끝까지 이 이야기를 쓸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 글을,


어린 시절의 미영이와 같은 시간을 지나온 모든 분들께 바칩니다.

이 글 속 아이의 이름을 미영이라고 지었습니다.

美, 아름다울 미.

榮, 영화로울 영.

아름답게 태어나, 언젠가는 자신의 삶에서 빛나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았습니다.

그 아이가 꼭 특별한 사람이 되기를 바란 것은 아닙니다.

그저 자신이 얼마나 소중한 사람인지 잊지 않았으면 했습니다.


누군가에게 사랑받기 위해 애쓰지 않아도,

누군가에게 인정받기 위해 자신을 증명하지 않아도,

있는 그대로 아름다운 사람이라는 것을 알았으면 했습니다.


어쩌면 우리 모두의 마음속에도 어린 미영이가 한 명쯤 살고 있을지 모릅니다.

아직도 누군가의 말에 아파하고,

누군가의 사랑을 기다리고,

자신의 잘못이 아닌 일까지 스스로 탓하며 살아가는 아이.

그 아이에게도 말해주고 싶습니다.


이제는 당신의 삶을 살아도 된다고.

아직 자신의 봄을 만나지 못했다고 생각하는 분들께도 이 글을 바칩니다.

조금 늦었을 뿐입니다.

우리에게도 봄은 옵니다.


그리고 우리는 늦었지만 꽃을 피울 수 있습니다.

이 세상의 수많은 미영이들을 응원합니다.


『늦었지만 봄, 꽃을 피우다』를 함께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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