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 분기 1,000건을 믿고, 오늘 400건부터 깎아 줄까
“이번에는 1,600원에 맞춰 주세요. 다음부터 물량을 몰아드리겠습니다.” 위생생활용품 B사에 월 400건의 포장 업무를 건당 2,000원으로 제안하자 돌아온 답이다. 나는 창고의 작업 조건을 확인해 물류 견적을 협의하는 영업 담당자다. B사 담당자는 다음 분기에는 월 1,000건도 가능하다고 설명한다.
400건에 적용하는 단가를 400원 내리면 이번 달 매출은 16만 원 줄어든다. 미래 물량이 늘면 만회할 수 있을 것 같다. 계산기를 두드리는 나도 그 전망에 기대고 싶다. 그러나 지금 바뀌는 것은 확정된 단가이고, 아직 바뀌지 않은 것은 주문량이다. 두 항목을 같은 확실성으로 계산하면 할인 여부를 판단하기 어려워진다. 이 사례의 금액은 모두 부가세 별도다.
그렇다고 장래 물량 이야기를 듣자마자 빈말로 치부할 필요도 없다. 성장하는 고객의 초기 부담을 함께 나누는 선택에는 사업적 의미가 있다. 나는 B사가 늘리려는 판매 물량과 창고에 미리 확보해야 할 작업 시간을 함께 펼친다. 함께 나누는 부담이 얼마인지와 언제 끝나는지를 정하기 위해서다.
담당자는 실제 판매 계획을 바탕으로 물량 증가를 예상할 수 있다. 하지만 판매량을 확정할 수 있는 사람은 아닐 수 있다. 다른 업체에 맡기던 물량을 옮길 권한이 있어도, 품질 평가를 통과해야 배정할 수 있는 단계일 수 있다. 이 차이를 알면 상대의 성의를 평가하느라 시간을 쓸 필요가 줄어든다.
현재 단가 인하를 얻기 위해 좋은 전망을 넓게 말했을 가능성도 있다. 어느 쪽인지는 말투에서 찾기보다 물량의 근거에서 확인한다. ‘다음부터’가 다음 달인지 다음 분기인지, 월 1,000건이 전체 예상 주문인지 우리에게 맡길 예정인 수량인지 묻는 것이다.
또한 물량이 늘어날 때 품목 수, 포장 방식, 당일 마감 시간도 유지되는지 확인해야 한다. 같은 1,000건이라도 규격 상자 하나에 담는 주문과 서로 다른 포장 지시가 붙는 주문은 작업비가 다르다. 많은 물량이 반드시 낮은 원가를 만드는 것은 아니다.
확인 질문은 추궁처럼 길게 보낼 필요가 없다. “다음 분기 월 1,000건은 귀사 전체 예상 물량일까요, 저희에게 배정 가능한 물량일까요? 포장 사양도 현재와 같은지 알려주시면 실적별 단가를 계산하겠습니다.” 상대가 예측만 할 수 있는 단계라면 그 답을 그대로 계획 수치로 보관한다. 견적에 넣을 확정 수량과 구별해 두면 이후 전망이 바뀌어도 서로 설명할 출발점이 남는다.
바저먼과 길레스피는 미래에 대한 전망이 다를 때, 그 일이 실제로 일어나는 조건에 합의 내용을 연결하는 방식을 설명했다. 미래를 서로 다르게 예상하더라도 실행 조건에는 합의할 수 있다는 경영 실무의 논의다. “다음부터 물량을 늘리겠다”는 말을 오늘의 전량 할인으로 바꾸기 전에, 실제 주문 수량이 늘어날 때 할인 범위도 늘어나도록 설계해 볼 수 있다. 아래의 구간별 단가는 그 생각을 이 거래에 적용한 예시다. 수익을 보장하는 공식은 아니므로 우리 작업비를 먼저 계산해야 한다. [S1]
이 사례에서는 월 400건을 처리하면 기본 준비비가 회수되고, 같은 포장 조건의 추가 주문은 더 낮은 비용으로 처리할 수 있다고 가정하자. 그렇다면 실적에 따라 구간을 나눌 수 있다. 월 400건까지는 건당 2,000원, 400건을 넘는 분량은 건당 1,600원을 적용하는 방식이다. 월 1,000건이면 400건에 80만 원, 초과 600건에 96만 원으로 합계 176만 원이다.
이는 월 전체를 1,600원으로 낮추는 안과는 다르다. 실제 완료 물량이 400건이면 80만 원을 정산하고, 추가 물량에만 낮은 단가를 적용한다. 집계는 매월 새로 시작하며 해당 월 포장이 완료된 정상 주문을 기준으로 삼는다. 취소 주문과 재작업은 수량에 중복해 넣지 않는다. 약속한 물량이 오지 않아도 이미 깎아 준 금액을 되돌려 달라고 다툴 필요가 적어진다.
처음부터 1,600원을 받아도 되는 경우는 별개다. 초기 400건에서 줄어드는 16만 원을 제한된 시험 운영 비용으로 감당할 수 있고, 그 뒤에도 계속 할인할 의무가 있는 것처럼 전달하지 않을 때다. 반대로 1,600원이 직접 작업비에도 못 미친다면 물량 전망이 좋아도 같은 조건으로 시작하기 어렵다.
다음 세 답장은 이 검토 결과에 따른 선택지다. 할인할 여유가 확인되지 않은 상태에서 첫 번째 답장부터 보내면, 우리가 아직 검토 중인 숫자가 상대에게는 확정 가격이 된다.
“초기 운영을 함께 확인하는 취지로 첫 400건은 건당 1,600원(부가세 별도)에 진행하겠습니다. 이번 조건은 동일한 포장 사양의 첫 400건에 한정하며, 이후 주문은 기존 견적 단가 2,000원(부가세 별도)을 기준으로 물량과 작업 조건을 다시 협의하겠습니다. 다음 분기 예상 물량과 배정 가능 시점을 공유해 주시면 단계별 단가도 준비하겠습니다. 이 범위로 확인해 주시면 작업 일정을 잡겠습니다.”
“실제 물량 증가를 반영해 월 400건까지는 건당 2,000원(부가세 별도), 400건 초과분에는 1,600원(부가세 별도)을 적용하는 안을 제안드립니다. 동일 포장 조건의 정상 완료 건수를 매월 집계하며, 월 1,000건이면 총 176만 원(부가세 별도)입니다. 취소 주문과 재작업은 집계에서 제외하고 별도로 확인하겠습니다. 매월 집계는 새로 시작하며, 월말 완료 내역을 함께 확인한 뒤 정산하는 조건으로 검토 부탁드립니다.”
“추가 물량 계획을 공유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다만 현재 예상되는 월 400건에서는 건당 1,600원(부가세 별도)으로 작업비를 충당하기 어려워 해당 단가로 시작하기는 어렵습니다. 지금은 2,000원(부가세 별도)에 운영하고, 배정 물량과 포장 조건이 구체화되면 가능한 인하 폭을 다시 검토하겠습니다. 현재 조건으로 진행할 수 있는지 말씀해 주시면 필요한 준비 사항을 안내드리겠습니다.”
합의 후에는 견적 담당자와 정산 담당자가 같은 기준을 보고 있는지 확인한다. 첫 400건만 할인했는데 정산 시스템에 상시 단가로 등록하거나, 월별 실적 조건을 현장에만 전달하면 다음 달부터 설명이 엇갈린다. 단가를 적용할 기간과 집계표의 항목을 함께 남겨야 한다.
다음 물량이 오지 않았다고 곧바로 약속을 어겼다고 몰아붙일 일도 아니다. 예상이 달라졌는지, 배정 결정이 늦어졌는지 확인하고 현재 조건을 다시 계산한다. 좋은 전망은 협의를 시작할 근거가 될 수 있다. 오늘 확정할 가격은 오늘 확인한 조건 위에 놓는 편이 오래 간다.
“1,000건은 확실하니까 처음부터 모두 1,600원으로 해 주세요.”
“계획하신 물량은 반영하겠습니다. 다만 현재 확정된 조건에서는 월 400건까지 2,000원(부가세 별도), 초과분 1,600원(부가세 별도)으로 제안드립니다. 같은 사양으로 월 1,000건이 완료되면 총 176만 원(부가세 별도)입니다. 별도의 물량 약정을 검토하신다면 배정 기간과 수량을 먼저 알려주시기 바랍니다.”
“처음에 1,600원으로 해주셨는데 계속 그 가격 아닌가요?”
“처음 안내드린 시험 운영 단가는 동일 사양의 첫 400건에 한정한 조건입니다. 이후 주문은 기존 견적 2,000원(부가세 별도)을 기준으로 실제 물량과 사양을 다시 협의하기로 했습니다. 다음 주문에 적용할 단가를 함께 확인한 뒤 작업을 진행하겠습니다.”
B사의 월 1,000건이라는 말을 듣자 계산기보다 마음이 먼저 움직인다. 이 거래가 커지면 창고의 빈 작업 시간을 채울 수 있겠다. 견적서의 2,000원을 지우려다가, 옆에 적힌 400건을 다시 본다. 지금 깎아 줄 16만 원은 분명한데 다음 분기 주문 칸은 아직 비어 있다. 나는 파일을 닫지 않고 열 하나를 더 만든다. ‘예상’이라고 적는다. 기대를 버릴 필요는 없지만, 실적과 같은 칸에 적지는 않기로 한다.
위생생활용품을 비롯한 소비재 영업을 해 온 내게는 판매 전망과 실제 주문량의 차이가 낯설지 않다. 할인율을 계산한 표에는 내가 확인할 물량 집계 기준도 붙인다. 발주 예정, 실제 완료, 취소, 재작업을 나누고 단가를 적용할 열을 표시한다. 시험 운영을 선택했다면 첫 400건에 도달하기 전에 다음 주문의 가격을 B사와 확인한다. 같은 위생생활용품이라도 단품 출고와 여러 품목의 합포장은 작업이 다르다. 판매 물량이 늘었다는 소식만으로 창고의 포장 사양까지 같다고 넘겨짚지 않는다.
다음 본편은 ‘그 정도는 포함된 줄 알았습니다’입니다. 가구 부자재 200세트에서 빠진 조립 안내서 한 장을 두고, 추가 비용을 청구하기 전에 우리 쪽 누락부터 확인합니다.
업체는 익명 기호로 표시했으며, 사례의 세부 조건과 대화는 설명을 위해 재구성했습니다. 연구·통계는 별도 출처를 표시했습니다.
함께 읽기 본편 04 다른 곳은 더 싸게 해준다던데요
가격을 깎아 달라는 말 다음에는 납기나 지급일을 바꿔 달라는 요청이 오기도 합니다. 이번 편을 포함한 본편 01·02·03에서 답장 방식을 먼저 살펴보세요. 멤버십에는 다른 아홉 상황과 해설 여덟 편, 다시 찾아 쓰는 답장 20개가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