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면에 묻은 피



이러면 네가 더 잘할 거라는 욕심이었다고, 단어 뒤로 숨어버린 너를 광장으로 꺼내기 위한 어쩔 수 없는 채찍질이었다고, 나는 짐짓 엄숙한 선배의 가면을 쓰고 네 원고를 난도질했다. 내 손에 들린 비평의 칼날이 서슬 푸르게 빛날 때마다 선명한 문장들이 잘려 나갔고, 서사는 피를 흘렸다. 나는 그것이 오직 너를 위한 ‘고결한 조언’이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가해자가 입기 가장 좋은 방패막인 '명분'이라는 옷을 단단히 껴입은 채였다.

그러나 그 잔인한 난도질 끝에 마주한 너의 문장은 내 명분을 단숨에 송두리째 해체해 버렸다.

"네, 그 말이 맞아요. 나는 날것의 글을 드러낼 용기가 없어서 단어 뒤에 숨어 있었던 게 맞아요."

너는 억울해하거나 반발하는 대신, 내가 던진 칼날을 온전히 자신의 죄로 뒤집어쓰며 순종적으로 고개를 숙였다. 비명도 지르지 않고 나의 폭력을 그대로 받아낸 것이다. 그 순간, 내 안에서는 기묘한 오작동이 일어났다. 사방이 적막으로 가득 차며 고막이 먹먹해졌다. 예상했던 승리감이나 정복감 따위는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대신 신발 속 발가락 끝이 쥐가 날 것처럼 하얗게 질려가며 안쪽으로 꽉 구부러졌다. 들켜버린 것이다. 좋은 선배라는 가면 밑바닥에 도사리고 있던, 너의 재능이 너무 예쁘면서도 동시에 짓밟고 싶었던 내 옹졸한 애증의 민낯을.

상대의 무저항은 가혹했다. 네가 순순히 고개를 숙여 수용해 버렸기에, 나는 변명의 여지가 없는 잔인한 폭력배로 광장에 덩그러니 남겨졌다. 그것은 솔직함을 가장한 비겁한 펀치였고, 조언의 형태를 띤 사디즘이었다. 차라리 네가 소리를 지르며 맞서 싸웠다면 내 부끄러움은 덜했을지 모른다. 하지만 너의 무조건적인 항복 앞에서 나는 내 못난 이면과 1대 1로 대면해야 했다. 거울 속에 비친 내 자의식은 치사함과 열등감으로 흉측하게 일그러져 있었다. 지독한 치욕이 해일처럼 밀려왔다.

사과를 건네고 좋게 마무리한 뒤 돌아서는 길, 입안에서는 바짝 마른 모래맛이 났다. 인간은 이토록 추악해질 수 있다. 타인을 위한다는 가장 고결한 언어로 타인에게 가장 깊은 자상을 입힐 수 있는 존재가 바로 나였다. 밖으로는 세련된 문학을 논하고 있었지만, 신발 속 내 발가락들은 여전히 들켜버린 수치심을 감추지 못해 하얗게 피가 통하지 않은 채 마비되어 가고 있었다. 상처를 입은 것은 너였으나, 파멸한 것은 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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