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가 써 준 글, 내 글이라고 해도 될까?

AI 사용"법" · 1화

by최스물

대상 수상, 그리고 일주일 뒤


서른두 살 회사원 한지우 씨의 취미는 퇴근 후 글쓰기입니다. 어느 날 지역 문화재단에서 '나의 동네 이야기' 에세이 공모전을 연다는 소식을 봤습니다. 상금은 무려 300만 원.


쓰고 싶은 이야기는 이미 있었습니다. 어릴 때부터 다니던 동네 목욕탕이 문을 닫던 날의 기억이었죠. 그런데 하필 그 주에 야근이 몰렸습니다. 마감 사흘 전 지우 씨는 초안을 ChatGPT에 넣고 부탁했습니다. "더 감성적으로 다듬어 줘." AI는 문단 순서를 바꾸고 결말 문장을 새로 써 줬습니다. 지우 씨는 마음에 드는 문장만 골라 몇 군데 손본 뒤 자기 이름으로 냈습니다.


결과는 대상. 시상식에서 꽃다발도 받고 사진도 찍었습니다. 그런데 기쁨은 딱 일주일 갔습니다. 재단에서 전화가 온 거죠.


"응모 요강에 생성형 AI 활용작은 응모할 수 없다고 되어 있습니다. 이의 제기가 들어왔는데요, 혹시 AI 쓰셨나요?"


지우 씨는 억울했습니다. 뼈대도 내가 썼고 경험도 내 건데. 하필 수상작을 바카라으로 묶어 볼 생각에 저작권 등록까지 하려던 참이었습니다.


법은 이렇게 봅니다


지우 씨의 머릿속에 세 가지 질문이 떠오릅니다. 상은 어떻게 되나? AI를 썼다고 밝혀야 했나? 글은 누구의 것인가? 순서를 조금 바꿔서 마지막 질문부터 풀어 보겠습니다. 이게 풀려야 나머지도 풀리거든요.


① 내 글은 '내가 보탠 만큼'


먼저 저작권이 무엇인지부터 짚고 가겠습니다. 저작권은 내가 만든 글, 그림, 노래, 사진 같은 창작물을 남이 허락 없이 베끼거나 쓰지 못하게 하는 권리입니다. 따로 신청하지 않아도 창작한 순간 저절로 생깁니다(「저작권법」 제10조제2항). 그래서 공바카라에 쓴 시 한 편에도 저작권이 있습니다.


AI가 쓴 문장은 사정이 다릅니다. 「저작권법」 제2조제1호는 저작물을 "인간의 사상 또는 감정을 표현한 창작물"이라고 정의합니다. 열쇠는 '인간'이라는 두 글자입니다. 사람이 아닌 존재가 만든 것은 처음부터 저작물이 될 수 없다는 뜻이죠.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저작권위원회가 2025년 6월 펴낸 『생성형 인공지능 활용 저작물의 저작권 등록 안내서』(이하 등록 안내서)도 같은 말을 합니다. 사람의 창작적 기여가 있어야 저작권 등록이 되고 AI가 기계적으로 만든 결과물은 저작물이 아니라는 거죠. 한국저작권위원회 강석원 위원장도 2026년 4월 인터뷰에서 사람이 기여한 부분에는 저작권이 인정된다고 밝혔습니다.


정리하자면 이렇습니다. 지우 씨가 쓴 초안과 고른 경험과 손본 문장은 지우 씨 것. AI가 새로 써 준 결말 문장은 지우 씨 것이라고 하기 어렵습니다. 한 편의 글 안에 '지우 씨 몫'과 '아무의 것도 아닌 몫'이 섞여 있는 셈입니다.


저작권 등록할 때도 조심해야 합니다. 저작권은 등록하지 않아도 생기지만 등록해 두면 나중에 다툼이 생겼을 때 "이건 내 작품"이라고 증명하기가 쉬워집니다(「저작권법」 제53조). 그런데 등록 안내서에는 AI가 만든 부분과 사람이 만든 부분을 나눠 적으라고 되어있습니다. 이걸 숨기고 거짓으로 등록하면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3천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해질 수 있습니다(「저작권법」 제136조제3항제2호).


참고로 회사 일로 쓴 글이라면 또 다릅니다. 회사 이름으로 공표되는 업무상저작물은 계약이나 근무규칙에 따로 정한 게 없으면 회사가 저작자가 됩니다(「저작권법」 제9조). 회사 보도자료를 직원이 썼어도 그 글의 주인은 회사인 것처럼요.


② 공모전에서는 법보다 요강이 먼저


공모전은 법적으로 보면 「민법」 제675조의 '현상광고'에 가깝습니다. 이름은 어렵지만 우리가 자주 보는 것입니다. 전봇대에 붙은 "잃어버린 강아지를 찾아 주시면 사례하겠습니다" 전단지가 대표적이죠. "이 조건대로 해 오면 상금을 주겠다"라는 약속입니다.


이 약속에서 중요한 건 조건입니다. 강아지를 찾아 줘야 사례금을 받을 수 있듯이 공모전도 요강에 적힌 조건을 지켜야 상을 받을 수 있습니다. 요강이 AI 사용을 막았다면 지우 씨는 조건을 채우지 못한 셈입니다.


그러면 재단은 수상을 취소할 수 있고 이미 준 상금은 부당이득으로 돌려달라고 할 수 있습니다. 「민법」 제741조는 받을 이유가 없는데 받은 이익을 돌려주라고 정합니다. 글 일부가 지우 씨 저작물이라는 사실도 이 결론을 바꾸지는 못합니다. "내 글이냐"와 "낼 자격이 있냐"는 전혀 다른 질문이니까요.


③ AI 표시 의무는 '파는 쪽'의 몫


2026년 1월 22일 「인공지능 발전과 신뢰 기반 조성 등에 관한 기본법」(이하 AI 기본법)이 시행됐습니다. 우리나라에서 AI를 직접 다루는 첫 기본법입니다. 이 법 제31조제2항은 생성형 AI로 만든 결과물에 그 사실을 표시하도록 정합니다.


그런데 이 의무를 지는 건 AI 제품이나 서비스를 제공하는 '인공지능사업자'입니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 가이드라인도 의무 주체를 이용자에게 AI를 직접 제공하는 사업자로 못 박았습니다. 쉽게 말해 AI를 만들어 파는 회사가 지는 의무입니다. 지우 씨 같은 개인에게는 법으로 정한 표시 의무가 없습니다.


개인에게 "AI 썼다고 밝혀라"고 요구하는 건 법이 아니라 그 자리의 규칙입니다. 공모전 요강, 학교 학칙, 회사 규정 같은 것들이요. 법에 없다고 마음 놓을 일이 아니라는 뜻입니다. 오히려 법보다 그 자리의 규칙이 더 촘촘할 때가 많습니다.


이런 경우라면


요강에 AI 이야기가 아예 없었다면


금지 조항이 없으면 AI를 썼다는 이유만으로 수상을 취소하기는 어렵습니다. 조건을 어기지 않았으니까요. 다만 요강에 "본인이 직접 창작한 작품"이라는 문구가 있었다면 이야기가 달라질 수 있습니다. AI가 쓴 결말 문장은 지우 씨가 직접 창작했다고 보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결국 요강의 문장 하나하나가 기준이 됩니다.


맞춤법 검사만 AI로 했다면


띄어쓰기나 맞춤법을 고치는 정도라면 글의 표현을 새로 만든 게 아니라서 지우 씨의 창작이라는 점은 흔들리지 않습니다. 워드프로세서의 맞춤법 검사기를 쓴 것과 크게 다르지 않죠. 다만 "생성형 AI 사용 일체 금지"처럼 범위를 넓게 정한 요강도 있습니다. 애매하면 주최 측에 미리 물어보는 게 가장 안전합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AI가 썼다면


지우 씨가 주제만 던지고 AI가 처음부터 끝까지 썼다면 그 글에는 지우 씨의 저작권이 생기기 어렵습니다. 그 상태로 자기 작품이라며 상을 받았다면 단순히 요강을 어긴 수준을 넘어 주최 측을 속였다는 문제까지 생길 수 있습니다.


실제로 있었던 일


미국: "AI는 저작자가 될 수 없다"


미국의 컴퓨터 과학자 스티븐 탈러는 자신이 만든 AI가 그린 그림 「A Recent Entrance to Paradise」를 저작권청에 등록하려 했습니다. 저작자 칸에는 AI의 이름을 적었죠. 저작권청은 거절했고 탈러는 소송을 냈습니다. 2025년 3월 18일 미국 연방항소법원(D.C. 순회)은 저작권 등록에는 사람인 저작자가 필요하다며 탈러의 청구를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한국: AI 영화가 '편집저작물'로 등록되다


2023년 12월 한국저작권위원회는 AI로 만든 영화 「AI 수로부인」을 저작권 등록부에 올렸습니다. 다만 영상저작물이 아니라 편집저작물로였습니다. AI가 만든 이미지 하나하나에는 저작권을 인정하지 않고, 사람이 그 이미지들을 고르고 배열하고 구성한 창작성만 인정한 겁니다. 지우 씨의 경우와 같은 원리입니다. 사람이 보탠 만큼만 사람의 것이 됩니다.


영국: 1등을 받고 스스로 상을 거절한 작가


2023년 4월 소니 월드 포토그래피 어워드 크리에이티브 부문에서 독일 작가 보리스 엘다그센의 작품 「Pseudomnesia: The Electrician」이 1위에 올랐습니다. 그런데 엘다그센은 이 작품이 AI로 만든 것이라고 밝히며 "AI는 사진이 아니다"라는 말과 함께 수상을 거절했습니다. 공모전이 AI 작품을 받아들일 준비가 됐는지 시험해 보고 싶었다는 거죠. 그는 AI 작품을 위한 부문을 따로 만들어 달라고 요청했습니다. 공모전 주최 측이 규칙을 미리 정해 두지 않으면 어떤 혼란이 생기는지 보여 준 사건입니다.


용어 풀이


· 저작물: 사람의 생각이나 감정을 표현한 창작물. 글, 그림, 음악, 사진, 영상 등이 모두 해당합니다.

· 현상광고: "이 일을 해 오면 보상하겠다"고 널리 알리는 약속. 공모전, 사례금 전단지가 대표적입니다.

· 부당이득: 법적으로 받을 이유가 없는데 받은 돈이나 이익. 돌려줘야 합니다.

· 편집저작물: 자료를 고르고 배열하는 데 창작성이 있는 결과물. 사전, 앨범, 선집 같은 것들이 여기에 해당합니다.


지우 씨가 처음부터 알았더라면


· 응모 전에 요강에서 'AI', '생성형', '인공지능', '직접 창작'부터 검색해 봅니다.

· AI를 썼다면 어디에 썼는지 대화 기록과 수정 이력을 남겨 둡니다. 등록 안내서도 창작 과정을 기록해 두라고 권합니다.

· 규정이 애매하면 내기 전에 주최 측에 물어보고 답을 글로 받아 둡니다.

· 저작권 등록 때는 AI가 쓴 부분을 숨기지 말고 나눠 적습니다.


AI와 함께 쓴 글에서 '내 글'은 내가 보탠 만큼입니다. 그 글을 어디에 낼 수 있는지는 그곳의 규칙이 정합니다.


※ 이 글은 일반적인 법률 정보이며 법률 자문이 아닙니다. 실제 분쟁은 전문가와 상담하세요.


참고문헌

· 「인공지능 발전과 신뢰 기반 조성 등에 관한 기본법」[법률 제21311호, 2026. 1. 20., 일부개정, 2026. 7. 21. 시행] 제31조제2항.

· 「저작권법」[법률 제21336호, 2026. 2. 10., 일부개정, 2026. 8. 11. 시행] 제2조제1호, 제9조, 제10조제2항, 제53조, 제136조제3항제2호.

· 「민법」[법률 제21454호, 2026. 3. 17., 일부개정, 2026. 3. 17. 시행] 제675조, 제741조.

· 문화체육관광부·한국저작권위원회, 『생성형 인공지능 활용 저작물의 저작권 등록 안내서』, 2025. 6.

·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인공지능 투명성 확보 가이드라인」, 2026. 1. 22.

· 김소민, 「"AI로 만든 글·그림·음악, 인간이 기여한 부분은 저작권 인정"」, 『동아일보』, 2026. 4. 21.

· 이이슬, 「[대중문화 덮친 AI]④저작권 전쟁 시작됐지만 제도적 대응은 '아직'」, 『아시아경제』, 2024. 7. 7.

· Thaler v. Perlmutter, No. 23-5233 (D.C. Cir. Mar. 18, 2025).

· "Photographer Refuses Major Award For Image Created Using AI", Silicon UK, 2023. 4.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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