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도, 인간은 창작한다 [3부]

실행 노트 시리즈: 작가가 자기 자리에서 할 수 있는 다섯 가지

byItz토퍼
과정을 기록해 두는 습관
식당 메뉴판의 ‘원산지’에서 출발해 창작물의 원산지를 묻는다.

하나의 작품은 작가 혼자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라 기억과 경험, 타인의 문장, 문화와 시대, 그리고 AI와의 대화까지 수많은 영향이 뒤섞여 탄생한다.

그래서 창작자는 누구를 위해서가 아니라 자신을 위해서 작품이 어디에서 비롯되었는지를 기록할 필요가 있다. 완벽한 출처 목록이 아니라, 자신이 잊기 전에 작품에 스며든 흔적을 돌아보는 것.

그것이 창작자로서 자신의 뿌리를 기억하는 습관이 아닐까.
d872c71f-b9a0-40e1-a2e0-fdda80d8ffc7.pngby ChatGPT

식당에 들어가 메뉴판을 펼치면 유난히 눈에 들어오는 단어가 있다.


‘원산지’.


김치 옆에는 배추의 원산지가 적혀 있고, 돼지고기 옆에는 그 돼지고기가 어디에서 왔는지가 적혀 있다. 우리는 이제 습관처럼 그 글자를 한 번쯤 무심히 바라본다. 무엇을 먹을지 고르는 데 필요한 정보 가운데 하나쯤으로 생각하면서.


그런데 음식에 꼭 ‘원산지’를 밝혀야 할까?


물론 여기에는 시시콜콜해 보이지만 나름의 사연과 이유가 있다. 한때 먹는 것으로 장난친 사람들 때문이기도 하지만, 개인적으로 생각해 보면 그 이유는 음식이 단순히 눈앞에 놓인 물질에 그치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는 무엇을 먹는지 알고 싶어 한다. 이게 국내산인지 국외산인지, 국내 어디에서 왔는지, 누가 만들었는지, 어떤 과정을 거쳐 내 앞에 놓이게 되었는지를 알고 싶어 한다.


그런 의미에서 원산지는 음식에 붙어 있는 작은 출생증명서와 같다.

그것은 소비자에게 선택할 권리를 주는 동시에, 판매자에게 바카라임을 요구한다.


"이것은 여기에서 왔습니다."

그 짧은 문장 안에는 일종의 약속이 들어 있다.


그렇다면 문득 궁금해진다.

"창작물에도 원산지를 붙일 수 있을까?"


그림 한 점, 소설 한 편, 영화 한 편, 음악 한 곡에 ‘원산지’를 적는다면 무엇이라고 써야 할까.

‘대한민국’이라고 적는 것으로 충분할까. ‘서울’이라고 하면 될까.


‘대한민국, 서울, 김 아무개’라고.

아마 충분하지 않을 것이다.


창작물은 음식보다 훨씬 복잡한 경로를 거쳐 우리 앞에 도착하기 때문이다.


하나의 작품은 한 사람에게서만 태어나지 않는다. 작가는 자신이 살아온 시대에서 언어를 얻고, 가족에게서 기억을 얻고, 슬롯에서 이야기를 얻는다. 다른 작가의 작품을 읽고, 영화를 보고, 음악을 듣고, 누군가의 말을 기억한다.


그뿐만 아니라 어린 시절의 풍경과 우연히 들은 문장 하나, 오래 전의 상처와 지금의 욕망이 뒤섞인다. 그렇게 수많은 것들이 한 사람 안에서 섞이고 변형된 끝에 비로소 하나의 문장이 되고 작품으로 변해간다.


그러므로 창작물의 원산지를 묻는다는 것은 단순히 "누가 만들었는가?"를 묻는 질문이 아니다.


만일 작품의 원산지를 묻는다면, 그것은 작가의 이름 하나로 끝나지 않는다. 그것은 작품이 속해 있는 문화적 계보일 수도 있고, 특정한 시대의 경험일 수도 있으며, 오래된 전통이나 신화일 수도 있다. 때로는 다른 사람의 삶에서 빌려온 이야기일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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