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 삶의 고유한 저자는 누구인가

'맞춤 오늘'을 사양합니다

byItz토퍼
사유나라 사람.jpgReverian : 현실과 생각 사이를 떠도는 '사유나라 사람'

거대한 파도 속, 사각형의 망막이 비추는 것


매일 아침 복잡한 지하철역을 메우는 분주한 발걸음들은 마치 거대한 조류 같다. 썰물과 밀물이 소리 없이 교차하듯 수많은 이가 부딪침 없이 제 갈 길을 찾아 흘러간다. 마치 약속이라도 한 듯 발걸음이 멈추는 순간, 이 거대하고 유기적인 흐름 속에서 사람들의 시선을 단단히 붙들고 있는 것은 손 안의 작은 사각형, 스마트폰이다.


현대인은 깨어 있는 모든 순간 동안 스마트폰 속 알고리즘의 바다를 부유하고 있다.


사람들은 이 속에서 스스로가 보고 싶은 세상을 선택하여 보고 있다고 믿는다. 하지만 한 번쯤 자문해 보라. “나는 지금 내가 보고 싶은 세상을 보고 있는가, 아니면 머물게 만들기 위해 설계된 세상을 소비하고 있는가?”


알고리즘을 단순히 개인의 취향을 분석하는 연산 체계라고만 생각해서는 안 된다. 오늘날 알고리즘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 안에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의 가장 선명한 민낯과 욕망이 고스란히 투영되어 있음을 보게 된다.


세상을 읽고자 하는 이에게 가장 완벽한 존재가 탄생한 것이다. 바로 알고리즘이다. 이는 현대 슬롯를 정밀하게 비추는 가장 정교한 거울이 된 셈이다.



'실패 없는 슬롯'가 낳은 도파민의 권태



어젯밤 침대 위에서 0.5초 더 머물렀던 스크롤의 멈춤을 기억하고, 무의식이 흘린 취향의 부스러기를 주워 담아 정교한 타임라인을 차려내는 알고리즘의 집착은 가히 스토킹 범죄자에 가깝다.


'실패 없는 맛집', '후회 없는 직구템', '남들 다 하는 갓생 루틴'. 알고리즘이 떠먹여 주는 이 완전무결해 보이는 가이드라인은 우리에게 안락함만 제공할까? 아니다. 동시에 지독한 지루함도 선물한다.


알고리즘이 우리에게 추천하는 콘텐츠의 면면을 살펴보면, 이 시대가 품은 가장 큰 불안이 무엇인지 보인다. 그것은 바로 ‘실패에 대한 극단적인 공포’다. 현대 슬롯는 단 한 번의 기회비용 낭비도 용납하지 않으려는 초효율성의 슬롯로 진화하였다.


알고리즘이라는 존재는 바로 우리의 이 불안을 먹고 자란다.


시간과 자원의 낭비를 막아주겠다는 명목 아래 세상은 온통 검증된 정답으로만 채워진다. 리스크를 줄이기 위해 설렘의 가능성까지 함께 '구독 취소'해 버린 세상. 알고리즘이 추천하는 타임라인을 따라가다 보면, 모험과 우연이 거세된 거대하고 매끈한 ‘권태의 왕국’이 모습을 드러낸다.



'경로 이탈'을 허락하지 않는 효율성의 감옥


by ChatGPT

알고리즘의 세계관에서 가장 큰 죄악은 '비효율'이다. 지도 앱은 우리에게 늘 '최단 거리'와 '최소 시간'의 경로를 강요하며, 조금의 방황도 허용하지 않는다. 그러나 우리가 느끼는 가장 큰 기쁨은 언제나 효율성이 비껴간 틈바구니, 즉 ‘우연’이라는 마법 속에서 탄생한다.


스마트폰을 내려놓고 '비행기 모드'라는 고독한 주파수를 켤 때, 혹은 지도 앱을 끄고 GPS가 모르는 무명의 골목으로 무작정 걸어 들어갈 때, 우리는 비로소 내가 알지 못하는 새로운 세상을 마주한다.


햇살이 유난히 잘 드는 낯선 길목, 왠지 모르게 고소한 냄새가 나는 빵집, 그리고 우연히 들어선 낡은 독립서점의 바카라장 틈에서 발견한 문장 하나. 그것은 내 구매 이력과 검색 키워드를 아무리 분석해도 결코 추천되지 않았을, 지극히 아름답고 예측 불허한 순간들이다.


GPS가 "경로를 이탈하였습니다"라며 비명을 지를 때 비로소 진정한 나만의 여행이 시작된다. 효율성만을 숭배하는 현대 세상은 우리에게 끝없이 궤도 안에 머물 것을 명령하지만, 인간의 영혼이 숨을 쉬는 곳은 언제나 그 궤도의 바깥, 경로를 이탈한 자들의 영토에 있다.



카테고리를 거부하는 모순의 미학



세상은 자꾸만 우리를 몇 가지 상자 안에 가두려 한다. MBTI 네 글자로 복잡다단한 성격을 규정하고, 몇 장의 카드 전표와 소비 패턴으로 한 사람의 가치와 브랜드를 쉽게 정의 내린다. 예측 가능한 데이터의 묶음으로 우리를 환원해야만 시스템이 통제하기 쉽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라는 인간은 본래 모순투성이다. 그리고 그 모순이야말로 기계와 인간을 구분 짓는 가장 근사한 결함이 아닌가. 새벽에는 터프한 힙합 음악에 몸을 흔들다가도 낮에는 클래식의 선율에 눈물 흘릴 수 있고, 환경 보호를 외치면서도 예쁜 플라스틱 피규어 앞에서는 기어이 지갑을 여는 것이 우리다.


누군가를 지독히 사랑하면서도 동시에 징글징글하다고 느끼는 복합적인 감정의 스펙트럼을 인공지능의 이진법적 연산은 끝내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경험해 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언젠가 생성형 AI가 내 질문에 답할 때마다 동문서답을 한 적이 있다. 결국 무얼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 몰라 스스로 횡설수설하는 모습을 실험해 본 셈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알고리즘이 우리의 종잡을 수 없는 선택에 갈피를 잡지 못하고 "이 사용자의 취향을 알 수 없음"이라며 버퍼링을 일으킬 때, 우리는 비로소 가장 나다운 빛을 뿜어낸다.


그러므로 타인의 피드 속에 완벽하게 박제된 정답을 오답 노트 베끼듯 따라 하는 삶은 우리 스스로를 한 줄의 텍스트, 혹은 단순한 마케팅 데이터로 전락시킬 뿐이다.


37d68162-d74c-4d84-acfd-9a0a75d701ab.jpgby Gemini

에필로그: 예측 불허라는 인생 특권



내일이 오면 우리는 다시 바쁜 일상의 흐름 속으로 들어갈 것이고, 디지털 세계의 편리함과 타협하며 살아갈지도 모른다. 또한 알고리즘을 완벽하게 끊어내고 살기란 현대 슬롯에서 불가능에 가깝다는 것도 엄연한 사실이다.


그러나 무의식적으로 화면을 스크롤하던 손가락을 잠시 멈추고 묻는 힘을 길러야 한다.


“이것은 내가 정말 원한 선택인가, 유도된 소비인가?”


이 작은 질문 하나가 알고리즘의 촘촘한 그물망에 균열을 내는 첫걸음이 된다.


알고리즘을 들여다보면 세상이 강요하는 숨 가쁜 효율과 규격화된 정답이 보인다. 역설적으로 그렇기에 우리는 알고리즘의 궤도를 이탈하는 발칙한 반항을 감행해야 한다.


정답이 없는 길에서 기꺼이 길을 잃어보고, 스스로 모순적인 존재가 되기를 주저하지 않을 때, 우리는 알고리즘의 타깃 고객이 아닌 '자기 삶의 고유한 저자(著者)'가 된다. 일기장에 자신의 이야기를 기록하고, 글쓰기를 즐기는 이들이 자신만의 세계를 원고지에 옮기듯, 우리 삶에도 고유한 저자로서의 이름을 떳떳하게 적어 넣자.


오늘 하루, 우리 삶이 저 영리한 연산 체계의 예측을 멋지게 빗나가기를 소망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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