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가 사진을 바카라상 위에 던졌다.
FBI 신분증이 잠깐 눈에 들어왔다. 마이클 리드.
그는 내가 이름을 확인할 틈도 주지 않고 사진을 손가락으로 눌렀다.
“네가 숨긴 곳까지 뒤졌어. 그런데 없어.”
“그럼 수색이 늦었나 보지.”
그의 눈빛이 날카로워졌다.
“말장난하지 마. 누가 가져갔어?”
“문서 어디 있어?”
“내가 알면 여기 앉아 있겠냐?”
그가 나를 노려봤다.
“1953년 비밀 협정이 진짜라면 이 나라의 역사가 뒤집혀. 그런 문서를 혼자 조사한 이유가 뭐야?”
“진실을 알고 싶었으니까.”
“그 말을 믿으라고?”
“믿지 마. 나도 널 믿을 생각 없으니까.”
리드의 입꼬리가 잠깐 올라갔다.
그때 무전기가 울렸다.
“리드, 수사를 중단하고 용의자를 워싱턴으로 이송해.”
“문서가 사라졌어. 수색 전에 누군가 사무실에 들어갔고.”
“네가 신경 쓸 일이 아니야. 명령에 따라.”
통신이 끊겼다.
리드는 무전기를 내려놓았다.
“젠장.”
문이 열렸다. 정장 차림의 요원 두 명이 들어왔다.
“김도윤을 인계받겠다.”
리드가 손을 내밀었다.
“명령서.”
“그럼 승인한 사람 이름을 대.”
요원은 대답하지 않고 내 팔을 잡았다.
리드가 그의 손목을 비틀었다.
“내 조사 대상에게 손대지 마.”
“수사 중단 명령을 받았잖아.”
“수사 중단이지, 정체도 모르는 놈한테 용의자를 넘기라는 뜻이 아니야. 꺼져.”
요원들은 물러났다. “후회하게 될 거다.”
“그 말, 기억해 두지.”
문이 닫혔다.
“왜 날 넘기지 않은 거지?” 내가 물었다.
“널 믿어서가 아니야. 저놈들이 수상하니까.”
리드는 출입 기록을 펼쳤다. 중앙청에서 내 사무실을 공식 수색하기 전, 누군가 먼저 들어간 흔적이 있었다.
그의 손가락이 한 이름에서 멈췄다.
“이자는…….”
“누군데?”
“널 체포한 요원이야.”
리드는 즉시 무전기를 들었다.
“해당 요원 위치 추적해. 지금!”
잠시 뒤 돌아온 응답은 뜻밖이었다.
“해당 요원의 신원 기록이 삭제됐습니다. 인사 기록, 출입 기록, 임무 기록 모두 없습니다.”
“사람이 기록도 없이 사라졌다고? 장난해?”
통신이 끊겼다.
동시에 복도에서 경보음이 울렸다.
리드가 권총을 뽑았다.
“뒤로 물러나.”
문이 열리자 검은 옷을 입은 남자가 달려들었다. 리드는 공격을 피하며 남자의 팔을 벽에 내리쳤다. 권총이 바닥에 떨어졌다.
나는 발로 총을 멀리 밀어냈다.
남자가 리드를 밀치고 복도로 달아났다.
“거기 서!”
리드가 쫓아갔다. 나도 뒤따랐다.
비상문이 닫히기 직전, 남자의 주머니에서 출입증 하나가 떨어졌다.
리드가 주워 들었다.
출입증에는 내 사무실에 먼저 들어갔던 요원의 사진이 붙어 있었다. 뒷면에는 붉은 글씨가 적혀 있었다.
'김태문을 찾아라. 원본은 아직 살아 있다.'
나는 숨을 삼켰다.
“김태문은 내 할아버지야.”
리드가 나를 돌아봤다.
“그걸 왜 이제 말해?”
그는 내 얼굴을 살폈다.
“좋아. 아직 네 말을 믿는 건 아니야.”
“나도 네 말을 믿은 적 없어.”
리드는 출입증을 주머니에 넣었다.
“누군가 네 할아버지를 찾고 있어. FBI 내부 기록까지 지울 수 있는 놈들이야.”
“착각하지 마. 난 너랑 한편이 된 게 아니야.”
리드가 수갑을 꺼내 내 눈앞에 흔들었다.
“도망칠 생각이면 지금 말해. 다시 채워줄 테니까.”
“그 수갑부터 채우고 싶으면 해봐.”
잠깐, 리드가 나를 바라봤다. 이내 수갑을 집어넣었다.
“좋아. 따라와. 널 보호하려는 게 아니야. 나도 진실을 알아내려는 거지.”
우리는 비상계단으로 들어갔다.
그때 리드의 휴대전화가 울렸다.
“리드. 김도윤을 데리고 움직이지 마.”
“누구야?”
“이미 늦었어.”
통화가 끊겼다.
건물의 비상등이 꺼졌다.
어둠 속에서 계단 아래쪽 문이 열렸다.
리드가 권총을 겨눴다.
“내 뒤에 붙어. 소리 내지 마.”
“명령하지 마. 나도 상황은 알아.”
“그럼 입 다물고 살아남아.”
발소리가 가까워졌다.
그때 어둠 속에서 누군가 내 이름을 불렀다.
“김도윤.”
나는 얼어붙었다.
그 목소리를 알고 있었다.
중앙청에서 비밀 문서를 내게 건넨 뒤 사라졌던 바로 그 남자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