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 중앙청은 어두웠다.
김도윤은 휴대전화 손전등을 켜고 3층 복도를 걸었다. 문자에 적힌 방 앞에 도착하자 문이 반쯤 열려 있었다.
“계십니까?”
대답이 없었다.
방 안 바카라상 위에는 낡은 서류 봉투 하나가 놓여 있었다.
봉투에는 자신의 이름이 적혀 있었다.
- 김도윤 귀하 -
봉투를 열었다. 안에는 사진 한 장과 문서 사본이 들어 있었다.
사진 속에는 양복을 입은 남자 네 명이 서 있었고 뒷면에는 날짜가 적혀 있었다.
1953년 7월 27일. 판문점.
도윤은 사진을 가까이 들여다봤다.
맨 오른쪽 남자.
분명 할아버지 김태문이었다.
“말도 안 돼…….”
할아버지는 평생 평범한 공무원으로 살았다고 들었다. 그런데 왜 휴전협정이 체결된 날 판문점에 있었을까?
그때 등 뒤에서 목소리가 들렸다.
“사진을 알아보시겠습니까?”
도윤이 돌아섰다. 달빛을 등진 창가의 낯선 남자의 얼굴은 보이지 않았다.
“누구십니까?”
“그건 중요하지 않습니다. 지금 중요한 건 그 문서죠.”
'한국의 미국 연방 편입에 관한 비공개 협정안'
도윤은 빠르게 페이지를 넘겼다.
한국 측 서명란에 할아버지의 이름이 적혀 있었다.
김태문.
“할아버지는 이런 협정에 서명할 분이 아닙니다.”
“맞습니다.”
“그럼 이건 위조입니까?”
남자는 대답하지 않았다.
“공식 역사에는 한국이 미국의 51번째 주가 되기로 합의했다고 나옵니다. 그런데 당시 한국 측이 실제로 동의했다는 증거는 단 하나도 공개되지 않았습니다.”
“그럼 할아버지는…….”
“서명하지 않았습니다.”
도윤이 남자를 노려봤다.
“그걸 어떻게 확신합니까?”
남자는 잠시 망설이다가 말했다.
“그분이 서명을 거부한 순간부터, 모든 일이 시작됐으니까요.”
복도에서 여러명의 템포 빠른 발소리가 들렸다.
“누가 온 겁니까?”
“당신을 여기 오지 못하게 하려던 사람들입니다.”
남자는 도윤에게 작은 봉투를 건넸다.
“이건 할아버지가 남긴 편지입니다. 누구에게도 보여주지 마십시오.”
“잠깐, 아직 물어볼 게—”
남자는 뒷문으로 사라졌다.
도윤은 봉투를 뜯었다.
안에는 단 한 문장만 적혀 있었다.
"미국은 한국을 합병한 것이 아니다. 한국을 구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 그것뿐이라고 우리에게 믿게 만들었을 뿐이다"
문은 오래 버티질 못했다.
검은 양복을 입은 남자들이 방 안으로 들이닥쳤다.
“김도윤 씨, 동행하시죠.”
도윤은 몸뒤로 손을 뻗어 바카라상을 덮고 있는 고무판 아래로 편지를 재빨리 밀어넣었다.
“무슨 혐의로요?”
수사관이 대답했다.
“그건 워싱턴에 가시면 알게 될 겁니다.”
도윤은 희미하게 웃었다.
“그 말, 오늘 두 번째 듣는군요.”
그는 두 손을 내밀었다.
그리고 처음으로 깨달았다.
자신이 쫓고 있는 것은 단순한 역사적 비밀이 아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