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발자를 위한 인지 편향·심리 기술 완전정복 | 설득의 심리학 실무판
"이 기능, 얼마나 걸려요?"
엔지니어에게 가장 답하기 어려운 질문 가운데 하나입니다. 그리고 가장 빗나가기 쉬운 질문이죠. 견적이 어긋나는 것은 기술적 판단력의 문제가 아닙니다. 인간의 뇌가 시간과 비용을 예측할 때 구조적으로 비뚤어진 판단을 내리도록 설계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이 장에서는 견적을 어긋나게 하는 세 가지 인지 편향을 파고듭니다.
계획 오류는 카너먼과 트버스키가 1979년에 이름 붙인 개념입니다. 어떤 작업을 끝내는 데 드는 시간이나 비용을 체계적으로 과소평가하는 경향을 가리킵니다.
계획 오류가 까다로운 까닭은, 과거에 견적을 몇 번이고 빗나가게 한 경험이 있어도 다음 견적에서 또 같은 실수를 되풀이한다는 데 있습니다. "이번엔 지난번과 달리 제대로 견적을 냈다"고 느끼지만, 그 느낌 자체가 계획 오류의 일부입니다.
이런 일은 왜 일어날까요. 사람은 작업 견적을 낼 때 '잘 풀리는 시나리오'를 기준으로 생각합니다. PR 리뷰 반려, CI/CD 파이프라인 장애, 요구사항 변경, 팀원의 갑작스러운 휴가. 이런 '잘 안 풀리는 시나리오'는 하나하나의 확률은 낮지만, 그중 어느 하나는 높은 확률로 일어납니다. 그런데 뇌는 낮은 확률의 사건 여러 개를 합산해 직관적으로 가늠하는 데 서툽니다.
'코드 쓰는 시간'만 견적한다: 설계, 테스트 작성, 코드 리뷰 대응, 문서 갱신, 배포 작업을 빼놓는다.
'처음부터 동작하는 코드'를 전제한다: 디버깅 시간을 계상하지 않는다.
의존 작업의 지연을 고려하지 않는다: API 팀의 지연, 디자인 피드백 대기 같은 것.
인지 전환 비용을 무시한다: "오전 2시간, 오후 2시간으로 4시간어치 작업이 된다"는 전제. 실제로는 회의, 슬랙, 끼어드는 일 때문에 실효 시간은 절반 이하다.
계획 오류의 대바카라으로 카너먼 본인이 권하는 것이 '참조 클래스 예측(Reference Class Forecasting)'입니다.
개별 작업의 세부를 들여다보며 견적하는 대신, 과거의 비슷한 작업이 남긴 실적 데이터를 참조하는 방법입니다.
지난 6개월간 비슷한 작업의 실제 소요 시간을 목록으로 뽑는다.
중앙값을 기준으로 삼는다. 평균이 아니라 중앙값인데, 튀는 값의 영향을 줄이기 위해서다.
개별 사정에 따른 보정은 ±20% 안으로 묶는다.
티켓 관리 도구에 견적과 실적을 함께 기록해 두면, 참조 클래스 데이터가 차곡차곡 쌓입니다.
낙관 편향은 계획 오류와 겹치는 부분이 있지만, 영향을 미치는 범위가 더 넓습니다. 자신과 관련된 미래의 일을 실제보다 좋은 쪽으로 예측하는 경향입니다.
엔지니어의 낙관 편향은 견적 말고도 곳곳에서 모습을 드러냅니다.
"이 리팩터링은 기존 기능에 영향을 주지 않을 거야."
"이 라이브러리 업그레이드에는 파괴적 변경이 없을 거야."
"운영 환경에서도 스테이징과 똑같이 동작할 거야."
낙관 편향이 위험한 까닭은 리스크 평가 자체를 비틀기 때문입니다. '아마 괜찮겠지'가 의사결정의 전제로 들어가면 테스트 계획, 롤백 절차, 버퍼 확보가 헐거워집니다.
심리학자 게리 클라인이 제시한 '프리모템(Pre-mortem)'은 낙관 편향에 맞서는 실천적 기법입니다.
포스트모템(사후 검증)은 실패가 일어난 뒤에 하지만, 프리모템은 프로젝트를 시작하기 전에 합니다. 절차는 단순합니다.
"이 프로젝트는 크게 실패했다"고 가정한다.
팀 전원이 "왜 실패했는가"를 생각한다.
나온 실패 이유마다 예방바카라을 세운다.
'실패한 전제'에서 출발하면 낙관 편향의 굴레에서 풀려납니다. '잘 안 풀리는 경우'를 상상하는 일은 낙관 편향의 영향 아래에서는 어려운 작업입니다. 하지만 '이미 실패한 원인을 추측한다'는 틀로 바꾸면, 뇌는 놀라울 만큼 많은 리스크 요인을 끄집어냅니다.
앵커링 효과는 제1장에서 소개했지만, 견적이라는 맥락에서는 유난히 강하게 작용합니다.
스프린트 플래닝에서 맨 처음 말한 사람의 견적이 앵커가 됩니다. "이 기능, 3일쯤이려나요"라고 누군가 말한 순간, 다른 멤버의 견적은 3일 언저리로 수렴합니다. 본래 견적이 1주일이었던 사람조차 "그렇게까지 멀어지진 않겠지…… 5일쯤일까"라며 자기도 모르게 조정해 버립니다.
PM이나 고객의 기대치가 앵커가 된다. "이 기능, 한 달이면 낼 수 있어요?"라는 질문은 '한 달'을 앵커로 심어 둡니다. 엔지니어는 자기도 모르게 '한 달이면 되는 방법'을 궁리하기 시작합니다.
과거 작업의 공수가 앵커가 된다. "지난번 비슷한 기능은 2주였다"는 정보가 이번 견적을 2주 부근으로 끌어당깁니다. 기술 스택의 차이, 팀 구성의 변화, 요구사항의 복잡도 차이는 과소평가됩니다.
스토리 포인트의 숫자 자체가 앵커가 된다. 피보나치 수열(1, 2, 3, 5, 8, 13)에는 중간값이 없어, "5냐 8이냐"의 갈림길에서 망설일 때 바로 앞 스토리의 포인트에 끌려가는 경향이 있습니다.
플래닝 포커가 효과적인 까닭은 견적의 정확도가 올라가서가 아닙니다. 앵커링 효과를 줄이기 위해서입니다.
모두가 동시에 카드를 내는(동시 공개) 방식 덕분에, 맨 처음 말한 사람의 앵커에 끌려가는 일을 막습니다. 거꾸로 말하면, 플래닝 포커에서 "먼저 숫자를 보여 줘"라거나 "우선 ○○님 의견부터 들어 볼까"라고 해 버리면 앵커링 대바카라의 효과가 사라집니다.
현실의 견적에서는 세 가지 편향이 동시에 작용합니다.
PM에게서 "2주면 안 돼요?"라는 말을 듣는다 (앵커링)
"힘내면 2주에 될지도 몰라"라고 생각한다 (낙관 편향)
최선의 시나리오로 견적한다 (계획 오류)
그 결과, 2주짜리 견적에 실제로는 4주가 걸립니다. 이 구조를 알면 "2주라고 생각될 때는, 그 두 배인 4주를 잡아 둔다"는 휴리스틱을 쓸 수 있습니다. 거친 경험칙이긴 하지만, 계획 오류 연구에서 견적이 실적을 크게 밑도는 경향이 거듭 확인된 사실과 들어맞습니다.
견적은 예언이 아니라 불확실성의 관리입니다. 편향을 0으로 만들 수는 없지만, '내 견적은 어느 방향으로 비뚤어져 있는가'를 아는 것만으로도 대처하는 방식이 달라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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