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설명하느라 지친 마음에게
“사람들은 자신을 가장 사랑하면서도, 자신에 대한 다른 사람의 평가를 자기 자신의 평가보다 더 중요하게 여긴다.”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명상록』
“내가 왜 그런 말까지 들어야 하지?”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도 그 말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다. 이미 끝난 대화인데 마음속에서는 여전히 무언가를 설명하고 있다. 그 사람이 내 뜻을 알아주기를 바라면서, 한편으로는 그런 말에 흔들리는 나 자신이 못마땅하다.
상대방은 별생각 없이 한 말이었을 수도 있다. 하지만 내게는 그렇지 않았다. 그 말이 왜 불편했는지, 내가 얼마나 속상했는지, 왜 그런 식으로 말하면 안 되는지 하나하나 설명하고 싶어진다. 그러다 보면 정작 힘들어지는 사람은 나 자신이다.
우리는 때때로 상대방의 말보다 그 말을 바로잡으려는 마음 때문에 더 지친다.
나를 오해하지 않았으면 좋겠고, 내 진심을 알아주었으면 좋겠다. 내가 틀리지 않았다는 것을 인정받고 싶다. 그 마음이 나쁘다는 것은 아니다. 누구나 이해받고 싶고, 소중한 사람에게 함부로 취급받고 싶지 않으니까.
다만 모든 사람에게 내 마음을 설명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아무리 이야기해도 이해하려 하지 않는 사람이 있고, 아무리 진심을 전해도 자기 생각만으로 받아들이는 사람이 있다. 그런 사람 앞에서 설명을 거듭하다 보면 어느새 내 마음을 돌보는 일은 뒷전으로 밀려난다.
어쩌면 그때 필요한 것은 더 잘 설명하는 능력이 아니라, 여기까지만 해도 괜찮다고 멈출 수 있는 용기인지 모른다.
대화가 불편해질 때마다 반드시 대답할 필요도 없다. 상대방의 말을 반박하는 대신 질문을 건넬 수도 있다. 왜 그렇게 생각하는지 물어볼 수도 있고, 지금은 더 이야기하고 싶지 않다고 말할 수도 있다. 때로는 아무런 결론 없이 대화를 끝내는 것이 서로에게 나은 선택이 되기도 한다.
모든 대화에서 좋은 결론을 얻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 모든 관계에서 서로를 완벽하게 이해해야 하는 것도 아니다.
누군가를 돕고 싶을 때도 마찬가지다. 힘들어하는 사람을 보면 어떻게든 좋은 말을 해주고 싶어진다. 내가 알고 있는 방법을 알려주고, 잘못된 생각을 바로잡아 주고, 그 사람이 조금이라도 나아지기를 바란다. 하지만 아무리 좋은 말도 상대방이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지 않으면 마음에 닿기 어렵다.
가득 찬 잔에 물을 더 부을 수는 없다. 때로는 무언가를 더 채워주려 하기보다 그 사람이 스스로 생각할 시간을 기다려 주는 편이 낫다.
누군가를 진심으로 돕는다는 것은 내가 생각하는 정답을 알려주는 일만은 아닐 것이다. 그 사람이 자기 삶을 살아갈 힘을 찾도록 곁에서 기회를 건네는 일일 수도 있다. 내가 대신 살아줄 수 없듯, 그 사람의 마음까지 대신 바꿔줄 수는 없으니까.
그 사실을 받아들이면 관계에서 조금씩 힘을 뺄 수 있다. 상대방을 설득하는 데 쓰던 에너지를 내 삶으로 돌려놓을 수 있다.
우리는 삶이 힘들어지면 환경이 달라지기를 바란다. 나를 힘들게 하는 사람이 바뀌고, 해결되지 않는 문제가 사라지고, 모든 일이 조금만 수월해지기를 바란다. 물론 현실을 바꾸기 위해 노력해야 할 때가 있다. 견디기 어려운 관계에서 벗어나야 할 때도 있다.
그러나 모든 상황을 내 뜻대로 바꿀 수는 없다. 다른 사람의 생각도, 이미 지나간 일도, 아직 일어나지 않은 미래도 온전히 통제할 수 없다.
내가 바꿀 수 없는 것에 온 마음을 쏟다 보면 지금의 삶을 살아갈 힘마저 잃게 된다.
같은 하루를 보내도 마음에 따라 하루의 모습은 달라진다. 걱정에 사로잡혀 있으면 평범한 일상조차 버겁지만, 마음이 조금 가벼워지면 그동안 보이지 않던 여유가 눈에 들어온다. 해결되지 않은 문제가 있어도 밥을 먹고, 햇살을 바라보고, 잠시 웃을 수 있다.
현실이 완벽해져서 평온해지는 것이 아니라, 완벽하지 않은 현실 속에서도 잠시 평온할 수 있는 것이다.
그렇다고 모든 것을 마음먹기에 달렸다는 뜻은 아니다. 아픈 일은 아프고, 힘든 현실은 힘들다. 다만 그 어려움에 내 마음 전체를 내어주지 않을 수는 있다. 문제를 해결하면서도 나를 돌볼 수 있고, 누군가에게 상처받으면서도 나 자신까지 미워하지 않을 수 있다.
어쩌면 우리가 조금 덜 애쓰며 살아가기 위해 배워야 하는 것은 모든 것을 잘하는 방법이 아니라, 어디까지 애써야 하는지 아는 일인지도 모른다.
모든 사람에게 좋은 사람일 필요는 없다. 내 진심을 모두가 알아주어야 하는 것도 아니다. 어떤 관계에서는 최선을 다하는 것보다 적당한 거리를 두는 것이 나를 지키는 방법이 된다.
누군가에게 이해받지 못한 날에도 내 하루는 계속된다. 마음에 걸리는 말이 남아 있어도 맛있는 음식을 먹을 수 있고, 좋아하는 음악을 들으며 쉴 수도 있다. 그 사람의 생각이 달라지지 않았다고 해서 내 삶까지 멈출 이유는 없다.
오늘도 누군가에게 나를 설명하느라 지쳤다면, 이제는 그만 설명해도 괜찮다.
당신의 진심이 언제나 모든 사람에게 이해받아야 하는 것은 아니니까.
때로는 상대방을 설득하는 것보다 나를 이해하는 일이 먼저다. 세상 모든 사람의 마음을 얻으려 애쓰지 않아도, 내 마음 하나쯤은 편안하게 해 주며 살아도 괜찮다.
이 작가의 멤버십 구독자 전용 콘텐츠입니다.
작가의 명시적 동의 없이 저작물을 공유, 게재 시 법적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오직 멤버십 구독자만 볼 수 있는,
이 작가의 특별 연재 콘텐츠